변별력의 덫에 걸린 영어…“한국사 수준으로 쉽게 나와야” [변별력 덫에 갇힌 영어시험]
수능 출제 기관인 한국교육평가원이 영어 절대평가 도입 이후 난이도 조절에 실패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교육계에서는 “상위권 변별에 치중하다 보니 생긴 문제”라고 지적하며 “근본적으로는 소통 능력 향상에 초점을 두는 방식으로 시험의 성격이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출제 과정 매끄럽지 못했을 것”
영어 난이도 논란은 꾸준히 제기됐지만, 1등급 비율이 1%대로 급감한 올해 6월 모의평가가 결정적이었다. 수능 출제·검토에 관여했던 관계자들은 모의평가 시험의 검증 과정이 매끄럽게 진행되지 않았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검토위원 참여 경험이 있는 한 영어 교사는 “수능 문제가 출제되면 검토 단계에서 각 문제 오답률이 어느 정도일지 예측하는 일종의 ‘영점 조준’ 과정이 있는데, 이 작업이 킬러문항 정의에 대한 혼선 등으로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평가원은 수능 출제 과정에서 문제 오류를 걸러내는 검토위원단을 운영하고 있으며 지난해 9월부터는 킬러문항 여부를 판단하는 ‘공정 수능 출제 점검단’까지 구성했다. 이런 이중 검토 체계가 제 기능을 못 했다는 의미다.
매년 수험생과 출제진이 바뀌는 수능 특성상 안정적인 난이도를 맞추기가 힘들다는 점도 지적됐다. 김수연 한국외대 영미문학‧문화학과 교수는 “토익이나 토플의 경우 각 시험이 전 회차보다 어려운지를 판별하기 위해 일부러 기존 문제 몇 개를 그대로 내는 ‘동등화 과정’을 거치는데, 수능은 이런 과정도 없는 데다 매해 새로운 학생들이 시험을 보기 때문에 난이도를 균등하게 내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영어로 상위권 변별하려는 방향 설정 잘못”
2017년 영어 절대평가 도입 시작부터 약 3년간 평가원장 맡았던 성기선 가톨릭대 교수도 “기존에는 영어 1등급 목표 비율을 8~10%로 정하고 출제했다”며 “이번에는 킬러문항 배제 등 대내외적 이유로 그 원칙을 제대로 못 지켰는데,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게 맞다”고 했다. 최철규 대전동방고 영어 교사도 “지금은 EBS 교재 지문조차 너무 어려워서 학생들이 겁먹고 포기한다”며 “이제는 또 다른 수능 절대평가 과목인 한국사 수준으로 영어 역시 굉장히 쉽게 출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출제 목적에 따라 시험 형태도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신동일 중앙대 영어영문학과 교수는 “영어가 일종의 암기과목이었던 과거와 달리, 현재는 세계시민으로서 영어를 사용하는 정체성이나 방식을 배우는 게 중요하다”며 “수능 영어도 이에 맞춰 학생 수준을 확인하는 정도의 시험으로 성격이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채관 인천대 영어영문학과 교수(한국중등영어교육학회장)는 “수능 영어는 학생들이 대학에서 학문적 활동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영어 능력을 평가하기 위해 설계돼야 한다”며 “말하기와 쓰기 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문항을 추가해야 하거나 디지털 시대에 맞게 컴퓨터 기반 시험(CBT)을 도입해 동영상, 오디오 클립 등 다양한 매체에서의 영어 이해 능력을 평가하는 등 ‘실용 영어’를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민지·서지원 기자 choi.minji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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