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다는데, 굳이 '북한'을 고집할 필요가 있을까

정욱식 2024. 8. 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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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의 진짜안보] '북한'과 답변 거부... 폭망한 남북관계와 언론의 역할

[정욱식 기자]

 7월 23일 파리 생드니에 위치한 2024 파리 올림픽 선수촌 내 북한 선수단 숙소 외부에 인공기가 내걸려 있다.
ⓒ 연합뉴스
개인적으로 '북한'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조선)'으로 부르기로 한 지 4개월 정도 지났다. '제 이름 부르기'가 갈수록 꼬이고 있는 남북 관계의 실타래를 푸는데 작은 실마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본 연재를 통해서도 독자들의 이해를 구한 바 있다.

호칭을 둘러싼 혼란과 어색함은 파리 올림픽에서도 거듭 확인할 수 있다. 황당한 실수는 개막식부터 나왔다. 한국 선수단이 입장할 때 장내 아나운서가 프랑스어로 'Republique populaire democratique de coree'라고 말했고, 이어 영어로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로 표현했다. 그러자 국내 언론은 대한민국을 '북한'으로 잘못 불렀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그런데 엄밀히 말해 이러한 보도도 정확한 것은 아니다. 주최 측이 큰 실수를 한 것은 분명하지만, 잘못 호명된 국호는 '북한'이 아니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었기 때문이다.

지난 2월의 일이 떠올랐다. 한국이 쿠바와 수교하면서 대다수 언론은 '유엔 회원국 가운데 한국의 미수교국은 시리아만 남았다'고 보도했다. 이게 맞는 것일까? 대화형 인공지능 챗봇인 '챗지피티'에 물어봤다. 시리아와 함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도 대한민국의 미수교국"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북한'과 답변 거부의 반복

현장에 있는 한국 언론인들은 잘 알겠지만, 한국 기자가 조선 선수단을 '북한'이나 '북측'으로 표현하면 조선 관계자들이 질문을 무시하거나 표현에 항의하는 일이 일상사가 되었다. 비난 이번 뿐만이 아니다.

작년 9월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여자축구 한국과의 8강전 이후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한국 기자가 '북측'이라고 표현하자 리유일 감독은 "북측이 아니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 시정해달라. 그렇지 않으면 답하지 않겠다"고 말한 바 있다.

지난 2월에도 파리 올림픽 여자축구 아시아 최종예선 일본과의 경기를 앞두고 열린 기자회견에서 리 감독은 "북한 여자축구대표팀의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하다"는 한국 기자의 질문을 받았다. 그러자 그는 "아니다. 미안한데, 국호를 정확히 부르지 않으면 질문을 받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러한 조선의 태도는 작년 7월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남조선' 대신 '대한민국'이라고 부를 때부터 분명해졌다. 대한민국이나 한국이라고 부를 테니 자신을 향해서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조선)이라고 불러 달라는 입장을 명확히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제 우리 언론도 호칭 문제를 차분히 검토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상대가 싫다는데 굳이 '북한'을 고집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북한'이라고 부르는 순간 의도와 내용을 떠나 상대가 반감부터 갖게 되는 상황이 무한 반복되고 있기에 하는 말이다.

1995년엔 제 이름을 부르기로 했건만
 동메달을 딴 임종훈-신유빈과 은메달을 딴 북한 리정식-김금용이 7월 30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사우스 파리 아레나4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탁구 혼합복식 시상식에서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조선의 요구 때문만은 아니다. 선구적인 입장 표명은 한국 언론에서 나왔다. 1995년 한국기자협회,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PD연합회가 '평화통일과 남북화해 협력을 위한 보도제작 준칙'을 제정하면서 1항에 "상대방의 국명과 호칭을 있는 그대로 사용함을 원칙으로 한다"고 규정한 것이다. 당시의 남북관계도 오늘날 못지않게 좋지 않았고 김영삼 정부는 노골적으로 흡수통일을 추구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언론이 정명(正名)을 사용하자고 뜻을 모은 데에는 위기에 처한 남북 관계를 회복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판단이 깔려 있었다. 그러나 이 규정은 30년 가까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이번 파리 올림픽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한국과 조선의 만남이 완전히 사라질 수는 없다. 코로나19 대유행이 지나면서 조선도 국제대회 출전 빈도를 높여나가고 있다. 하지만 한국 언론이 '북한'이나 '북측'이라는 표현을 고수하면, 모처럼의 만남은 냉기만 내뿜는 자리가 되고 말 것이다.

반면 한국 언론이 '조선'이라고 표현하면 적어도 대화의 끈은 이어갈 수 있다. 조선 선수단이 답변을 거부할 명분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 기자가 조선 선수단에 궁금한 것을 물어볼 수 있고 언론을 통해 우리 국민도 답변을 들을 수 있게 된다. 기자회견장에서 냉기가 사라지면 선수단 사이의 만남도 부드러워질 수 있다.

냉정하게 보면, 스포츠 무대를 제외하곤 한국과 조선이 만날 수 있는 기회는 당분간 기대하기 힘들다. 또 우의와 화해를 도모하는 것이 중요한 스포츠 정신이고 여러 국제대회에서도 이를 확인한 바 있다. 한국 언론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는 뜻이다. 그 출발점은 '조선'이라고 부르는 데 있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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