붙이고 새기고 뿌렸다… 한·중·일 칠기공예의 아름다움

손영옥 2024. 8. 7. 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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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삼국삼색’ 展
한·중·일 동아시아 3국이 각기 고유의 방식으로 발전시킨 옻칠 공예의 정수를 한 자리에 모은 ‘삼국삼색(三國三色)-동아시아의 칠기’전이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사진은 나전을 붙이는 방식의 조선 19세기 후반 ‘나전 칠 십장생무의 이층 농’(이건희 기증)으로 수입 안료인 주사를 써서 붉은 칠이 아주 화려하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우리는 옻칠 공예하면 나전칠기를 반사적으로 떠올리게 된다. 옻나무에서 채취한 수액을 바르고 또 바른 뒤 그 위에 전복, 조개 등의 껍데기로 무늬를 박아 넣는다. 그래서 칠흑 같은 밤의 별 자리처럼 단아하면서 귀족적인 품위가 있는 나전칠기 가구를 자랑스러운 전통으로 배워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일본과 중국의 문화는 어땠을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옻칠까지는 같았지만 그 다음의 가공방식은 각기 달랐다. 한·중·일 3국 옻칠 공예의 차이를 비교 감상할 수 있는 드문 자리가 마련돼 입소문이 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일본 도쿄국립박물관, 중국 국가박물관과 함께 기획해 서울 용산구의 박물관 특별전시실에서 하는 특별전 ‘삼국삼색(三國三色)-동아시아의 칠기’가 그것이다.

옻칠한 나무는 습기와 병충해에 강했고 쉽게 부패하지 않는다. 땅 속에 묻혀도 천년을 견딘다. 뿐인가. 투박한 나무에 깊고 아름다운 윤기를 입힌다. 서양의 바니시(varnish)보다 한결 우수한 옻칠은 단연 아시아를 대표하는 전통 도료인 셈이다. 동아시아 3국은 그런 옻칠을 가구에 적용해 독자적인 옻칠 공예를 발전시켰다.

요약하면 한국은 나전을 붙이고, 일본은 금가루를 뿌리고, 중국은 조각칼로 새겼다.

고려·조선시대를 이어가며 나전칠기를 독보적으로 발전시킨 한국 옻칠 공예의 정수는 2014년 국립중앙박물관을 후원하는 민간 조직인 ‘국립중앙박물관회’가 일본에서 환수해 기증한 13∼14세기 ‘나전칠 모란·넝쿨무늬 경전상자’(보물)가 그 예이다. 전 세계에 7점 정도만 남아 있는 귀한 유물로 모란·넝쿨무늬가 어우러져 독특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고려의 경우 문양의 크기가 작고 일렬 배치가 특징이다.

조선 18∼19세기 '나전 칠 봉황·꽃·새·소나무 무늬 빗접'.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조선시대로 넘어가면서 나전칠기의 용도는 서류 상자, 옷상자, 베갯모, 빗접(빗, 빗솔 등을 넣어두는 상자), 소반 등으로 다양해진다. 무늬는 큼지막해지며 화려해졌다. 줄음질(오려 붙이는 것), 끊음질(선처럼 잇는 것)에 이어 타찰법(휘어져 있는 상태의 자개를 무늬대로 오려낸 후 망치로 때려 물건 표면에 닿게 하는 기법)이 새롭게 사용된 덕분이다. 중인 부유층이 수요자로 가세하면서 복숭아, 학, 호랑이 등 세속적 욕망을 담은 길상적 무늬가 더해졌다. 전시품 중 고(故) 이건희 회장이 기증한 조선시대 19세기 후반 ‘나전칠 십장생무늬 이층농’은 불로초, 사슴, 쌍학 등 장수를 상징하는 동식물 무늬와 산수무늬가 빼곡한데 바탕칠이 검은색이 아니라 붉은색이서 이국적인 맛을 풍긴다. 붉은 색을 내는 수입 안료인 주사를 섞었기에 바탕이 붉다. 당시 주사는 워낙 고가라 왕실용 가구로 추정이 된다.

일본의 15세기 '마키에 칠 연못 무늬 경전 상자'.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전시장에서는 일본의 대표적인 칠공예 기법인 마키에(蒔繪)를 만날 수 있다. 8∼12세기 헤이안(平安) 시대를 거치며 발전한 마키에 기법은 옻칠한 기물 위에 금가루를 정교하게 가공해 뿌리는 방식으로 장식하는 점이 특징이다. 일본 무로마치(室町) 시대인 15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연못 무늬 경전 상자, 16세기 중반 포르투갈과 스페인에 수출하기 위해 만든 상자 등이 전시된다. 말을 탈 때 허리를 받치는 안장과 발걸이, 장신구를 보관하는 통에도 마키에 칠이 되는 등 마키에 칠은 신분을 과시하는 수단이었다.

고대로부터 명·청대에 이르기까지 수천 년 동안 옻칠기술을 발전시킨 중국의 경우 붉은색과 검은색을 번갈아 겹겹이 칠한 뒤 겉면을 깎거나 새기는 조칠기(彫漆器) 기법을 썼다. 구름무늬와 넝쿨무늬 사이로 검은색과 붉은색이 번갈아 보이는 명나라 시기 탁자, 검은 칠을 한 뒤 뒷면에 ‘중화’(中和) 글자를 새긴 현악기 등을 볼 수 있다. 특히 붉은 옻칠을 두껍게 칠한 뒤 다양한 무늬를 정교하게 새겨 넣은 상자는 청나라 건륭제(재위 1735∼1796) 시기에 만들어진 조칠 공예품 중에서도 정수로 꼽힌다. 천리(陳莉) 중국 국가박물관 부관장은 중국 칠기의 아름다움에 대해 “깊고 함축적이며, 차분하고 우아하며, 중후하면서도 감성적이다”라고 표현했다.

조칠기 기법을 적용한 중국 청나라 건륭제 시기의 '조칠 산수·인물 무늬 휴대용 상자'.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이번 전시는 동아시아 3국의 국립박물관이 2012년부터 3국의 문화를 소개하고 상호 이해를 증진하기 위해 공동특별전을 개최하는 것에 합의, 2년에 한 번씩 3국을 돌며 전시를 열기로 한 데 따른 것이다. 한국에서는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를 기념한 특별전 ‘동아시아의 호랑이 미술 - 한국·일본·중국’ 이후 약 6년 만에 열리게 됐다. 9월 22일까지.

손영옥 미술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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