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고교생도 4개 중 겨우 1개 맞혔다…수능 초유의 '용암 영어' [변별력 덫에 갇힌 영어시험]
대학수학능력시험을 99일 앞둔 수험생들은 올해 수능 영어 시험에 대한 걱정이 다른 어느 해보다 크다. 수험생 커뮤니티에는 관련 글이 꾸준히 올라온다. 한 수험생은 “6모(6월 모의평가)에서 영어 3등급 맞고 ‘현타’(현실 자각 타임)가 세게 왔다. 방학 때 ‘빡세게’ 공부하려는데, 어떤 강사님이 잘 가르치나요”라는 글을 올렸다.
수험생들이 ‘6모 현타’를 얘기하는 건 지난 6월 모의평가에서 절대평가인 영어의 1등급(90점 이상) 비율이 1.47%(5764명)로 급락했기 때문이다. ‘역대급 불영어’ ‘용암 영어’라는 별명이 붙은 어려운 영어 시험이 9월 모평과 수능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불안감에 휩싸인 것이다. 1등급 비율은 통상 4% 안팎이며 1%대 1등급 비율은 영어가 절대평가로 전환된 2017년 이후 평가원이 출제한 22번의 시험(6·9월 모의평가 포함) 중 처음이었다.
이후 서울 대치동 등 학원가는 불영어에 대비한 수업이 개설되는 등 급박하게 돌아갔다. 과도한 사교육을 막기 위해 절대평가로 전환된 영어가 다시 수험생을 혼란과 고민에 빠트리자 전문가들 사이에선 “변별력에 치중해 오던 수능 영어가 지향점을 잃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출제 당국은 “수험생들이 킬러 문항 배제 방침이 적용된 수능에 대한 연습이 안 돼 있었다. 9월 모평 때는 학생 수준과 과목 특성을 고려해 출제하겠다”(김미영 평가원 수능본부장)는 입장이다. 그러나 수험생들은 “작년 이후 평가원 말은 아무것도 안 믿음”이라는 댓글로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수능 고난도 영어 문제, 원어민도 절반 이상 틀려
20여 년을 미국과 싱가포르 등 해외에서 거주한 뒤 현재 한국에 사는 A씨(28)는 두 문제를, 미국 고교 2학년에 재학 중인 B군은 한 문제를 맞혔다. 이들은 “선지가 헷갈리게 출제돼 답을 찾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A씨는 “이 문제를 다 맞힌 사람이 대학에 가면 영어로 말하거나 원서를 잘 읽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어법이 틀리게 쓰인 단어를 고르는 29번 문제는 ‘시험만을 위한 문제’라는 지적을 받았다. B군은 “어법에 틀렸다는 정답도 맥락상 뜻이 통했고 실제 말할 땐 크게 문제없는 수준”이라고 했다. C강사는 “굵직한 문장 구조 판단이 중요했던 최근 수능 경향이 아니라 특정 동사의 세부 기능을 묻는 과거 유형 문제”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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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점자가 영어 잘 하나” “변별에만 치중” 지적
‘매력적인 선지’로 오답을 유도하는 사례도 늘었다. 김수연 한국외대 영미문학‧문화학과 교수는 “예를 들어 미국의 객관식 시험은 오답은 확연히 티가 나고 정답이 상식에 부합하는 식이다. 그러나, 수능은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 부분적으로만 틀린 보기가 많다”고 했다.
신동일 중앙대 영어영문학과 교수는 “현 수능 영어 시험은 흔히 ‘준거 지향 평가’라고 하는 절대평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 절대평가는 상대적인 위치가 아니라 평가 준거를 명확히 제시한 뒤 이를 충분히 학습했는지를 확인하는 정도의 시험이어야 하는데, 다양한 내외부적 압박으로 인해 출제진이 변별력에 강약을 주려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최민지·서지원 기자 choi.minji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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