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섬情談] 상대의 바람을 같이 바라는 일
큰 꿈 품고 최선 다한 선수들
결과 어떻든 응원하는 마음
이번 파리올림픽은 예전만큼 뜨거운 관심을 받지 못한다지만 그래도 나처럼 매일 일정을 확인하며 경기를 챙겨 보는 사람도 많을 듯하다. 평소엔 밤 11시 전에 잠들어 아침 7시 전에 일어나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올림픽 같은 빅이벤트 앞에선 일상의 흐름도 쉽게 무너지고 만다. 자정 넘어서까지 경기를 보고, 잠들기 전엔 새벽 알람까지 맞춰놓는다. 새벽에 깨어나 비몽사몽으로 경기를 보면서는 이게 이렇게까지 해야 할 일인가 싶지만, 다음 날 또 비몽사몽으로 경기를 본다.
그렇다고 모든 경기를 챙겨 볼 순 없어 기사를 통해 결과를 알게 되기도 한다. 이럴 땐 ‘1등만 알아주는 더러운 세상’의 한 자리를 나도 차지하게 된다. 메달권에 오르지 못한 선수의 기사엔 “얼마나 낙담했을까, 좌절했을까”라며 내 멋대로 그들의 마음을 단정짓고, 금이 아닌 메달 색을 볼 땐 축하하는 마음에 앞서 “아, 아쉬웠겠다, 아쉽다” 하는 마음이 쉽게 돼버린다. 금메달을 땄다고 해야 마음껏 “와, 최고”라며 기쁘게 축하하는 마음이 되는 것이다. 마치 올림픽에 참가한 모든 선수가 금메달을 따야 한다는 듯이.
그런데 이런 속물적인 마음이 사라질 때가 있다. 기사를 통해 결과를 알게 되는 게 아니라 예선부터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는 선수의 경기를 다 봤을 때. 32강에서 16강으로, 16강에서 8강으로, 8강에서 4강으로. 무대에 올라온 선수가 사력을 다해 경기를 치르는 모습을 보고 나면 결과가 어떻든 “와, 잘했다, 정말 수고했다” 하는 마음이 절로 된다. 미세한 차이로 동메달을 따는 걸 봤을 땐 정말이지 메달 색은 무의미해지고 환호성은 더 커진다. 이럴 땐 동메달을 딴 게 기적이고 행운 같다. 물론 엄청난 노력 뒤에 찾아온 기적, 행운일 테다.
나의 이런 변덕스러운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선수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들이 경기 결과를 바라보는 시선은 얼마나 다를까 싶다. 짧은 기사 한 토막을 본 것과 경기를 다 본 것의 차이가 이럴진대 그 선수의 4년을, 8년을 함께한 사람들은 분명 다른 시선으로 결과를 보겠지. 그들의 눈엔 선수가 밟아온 단계가 더 세밀하게 눈앞에 펼쳐질 테고, 그 단계의 끝에 서 있는 선수가 그저 벅차게 장하고 자랑스럽지 않을까. 물론 열심히 훈련한 선수가 원하던 결과를 손에 쥐면 더없이 기쁠 테지만, 그래도 그 선수를 다양한 차원에서 축하해 줄 말은 충분할 것 같다. 개인 최고 기록을 달성했다는 차원, 숱한 포기의 순간을 극복하고 여기까지 왔다는 차원 같은 것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선수가 자신의 경기를 어떻게 바라보는지가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결과가 어떻든 선수의 얼굴이 환히 밝아지는 걸 볼 때가 있다. 누가 뭐라 하든 자신은 결과에 만족한다는 표정으로도, 모든 걸 다 쏟아부은 후의 후련함이 담긴 표정으로도 읽힌다. 지나간 시간과 맞이한 결과를 자신만의 기준으로 해석해 낸 이 표정을 보는 게 좋아 몇 번씩 돌려 본 적도 있다. 저 표정이야말로 기적도 행운도 가져다줄 수 없는, 오로지 한 사람이 거쳐온 시간의 밀도만으로만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사격 김예지 선수의 인터뷰도 한 번 더 봤다. 25m 권총 속사에서 한 발이 0점 처리돼 결선에 못 오른 선수는 말했다. 0점이 나왔다고 세상이 무너지는 것도 아니고, 올림픽은 중요하고 큰 무대지만 그렇다고 올림픽이 내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고. 물론 슬프고 속상하겠지만, 자신의 실수에 너무 큰 무게를 지우지 않는 모습이 좋았다. 나를 가장 가까이에서 봐온 건 나라는 의미에서, 자기 자신을 너그러운 시선으로 바라봐주는 것 같아서도 좋았다.
올림픽의 존재 의의에 의문을 품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도 난 큰 꿈을 가슴에 품고 그 꿈을 향해 달려온 사람들을 응원하기 위해 밤잠을 설쳐가며 경기를 본다. 누군가의 바람이 이루어지길 같이 바라는 것. 올림픽을 보는 이유 아닐까.
황보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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