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 뚝심과 맷집
한 광고회사의 젊은 리더들을 대상으로 이어 온 10주간의 교육이 끝나간다. 기획서 작성과 프레젠테이션에 대한 내용으로 지난해에 이어 세 번째다. 강의의 인연이 협업으로 발전돼 강사가 아닌 인생 선배로서 술자리도 해왔던 터라 석 달 동안 열심히 따라온 그들의 어깨를 펴 줄 마지막 강연의 주제가 은근히 고민이었다. 그럴 것이 지금 광고회사들은 악전고투 중이다. 소비자 접점의 중심이 디지털 미디어로 옮겨져 수익성이 악화한 데다 불황과 불확실성에 직면한 기업들이 마케팅 비용을 너나없이 줄이고 있기 때문이다. 벽이 문이라고, 이마로 대못을 박는 기세라면 못 이룰 것이 없다고 외쳐본들 ‘아생연후살타’라며 돈 쓰는 사람이 자기부터 살겠다고 지갑을 닫는 데야 별 재간이 없다. 긴 호흡으로 바라봐야 실마리가 보일 것이다.
문득 모소대나무의 성장에 대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모소대나무는 중국 극동지역에서 자라는데 처음 한동안은 3㎝ 정도밖에 자라지 않다가 5년이 지난 뒤부터 갑자기 쭉쭉 커 15m에 이른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모소대나무는 어린 묘목 시절, 충분한 양분을 머금으며 뿌리가 땅속에 깊고 단단하게 자리 잡기까지 때를 기다리며 기초 공사에 매달렸다는 이야기다. 달리기가 안 되는 축구선수에게 개인기는 큰 의미가 없을 것이다. 손흥민의 현란한 드리블과 탁월한 슈팅력도 기본적인 체력과 패스워크가 바탕이다. 그제야 수강자들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떠올랐다. 모소대나무의 뚝심이 그것이다. 그렇지, 한 뼘 땅의 씨앗에서 너른 숲이 시작된다. 성장의 발판은 바로 기본의 힘이다. 중간급 간부들에게 스무 시간에 걸쳐 강의, 토론, 실습을 한 의미도 그것이었다.
무섭도록 성장한 모소대나무의 숨은 공로자는 엄청나게 늘어난 무게를 지탱해주는 땅속의 뿌리였다. 모소대나무는 기본의 힘을 믿고 묵묵하게 뿌리를 키워 튼실해진 줄기로 온몸을 하늘로 밀어 올렸다. 더 큰 성장을 위해 작은 성장을 멈춰 세웠다. 긴 승부를 택한 것이다. 비즈니스맨의 인생도 전속력으로 내달려 승부를 내는 단거리 주자의 단판승부가 아니다. 오르막과 내리막을 교차하며 행운과 불행, 기쁨과 슬픔을 교대로 맛보며 결승점을 향해 달려가는 마라톤의 풀코스다. 현명한 마라토너는 보폭과 호흡을 조절하며 마지막 스퍼트를 대비한다. 에너지의 안배 때문이다. 난코스를 만나면 숨고르기로 다음을 준비한다. 2보 전진을 위해서다. 당신도 일의 비중과 자신의 여력에 맞춰 진도를 확인하고 자원을 배분하라. 전체를 조율하며 한 계단씩 풀어가고 한 계단씩 올라서라.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에서 거북이가 이긴 것도 속도가 아니었다. 과정의 충실함이 이뤄낸 결과였다. 한 걸음씩 전진하는 처리 방식엔 가외의 소득도 있다. 이쪽의 생각이 저쪽으로 옮겨붙고 뒤섞여서 이종 결합의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차창 밖을 바라보다 막혀 있던 해결책이 별안간 떠올랐다면 그런 순간이다.
어려울 때일수록 정중동의 맷집으로 버텨내라. 스티브 잡스가 남겼다는 ‘Stay hungry, Stay foolish(우직할 정도로 꾸준하게)’도 그런 뜻은 아니었을는지. 나만 해도 ‘말리면 시래기, 버리면 쓰레기’ ‘김밥인가, 金밥인가’ 등 이름 석자로 광고와 인연을 맺고 삼십년 넘게 광고밥을 먹었다. 지금도 내방역에서 광고 일을 하고 명륜동, 청파동, 흑석동에서 광고를 가르친다. 광고에 대한 칼럼을 쓰고 광고에 대한 책을 펴내고 있다. 대단한 족적은 아니지만 굴곡과 곡절이 없었으랴. 10주 간의 교육을 받은 광고회사 젊은 리더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힘든 업무를 병행하며 완주의 결실과 장족의 발전을 거둔 이들에게 전한다. 동트는 새벽이 어두운 법이다. 모소대나무에게 배우자. 기본으로 돌아가자. 우리의 인생은 길다.
김시래 성균관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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