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재호 칼럼] 경쟁 사회의 교육과 공존 사회의 교육

2024. 8. 7.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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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재호 태재대학교 총장·전 고려대 총장

학령인구가 지금의 세배나 되고, 대학 숫자도 지금의 4분의 1에 불과했던 1970년대 대학 진학률은 20%도 안 되었다. 먹고 살기 어려웠던 그 시절 일류대학을 나오면 대기업 취업과 사회 지도층의 길이 열렸다. 부모들은 논밭과 소를 팔아 자식을 대학에 보냈고, 그래서 대학이 우골탑이라는 별명까지 듣게 되었다.

일류대학 진학을 위해 일류 중학을 가려면 시험을 쳐야 했다. 입시는 공정성과 효율성을 위해 객관식 문제로 치러졌다. 객관식에서 정답은 하나밖에 없다. 1964년 서울시 중학교 공통입시 문제에서 ‘엿을 만드는데 엿기름 대신 넣을 수 있는 것’의 정답은 1번 디아스타아제였다. 하지만 4번 무즙을 갖고도 엿을 만들 수 있다는 학부모들의 항의로 경기중학교에 낙방한 학생이 교장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법원은 학생의 손을 들어주었고, 이 답을 쓴 학생들이 구제받았다. 소위 ‘무즙 파동’으로 문교부 차관, 서울시 교육감이 사퇴했다. 지금도 수능에서 정답이 두 개가 되면 온 나라가 시끄러워진다.

「 정답만 찾는 경쟁 사회 교육 한계
승패 넘어 서로 격려하는 올림픽
붕당 이익 앞세운 품격 없는 국회
‘예나 플랜’처럼 공존 가치 교육을

1986년 대입학력고사장 모습. 중앙일보

1955년에서 1963년 사이에 태어난 우리나라 1차 베이비부머 인구는 728만 명이고, 1964년부터 1974년 출생 2차 베이비부머의 수는 954만 명이다. 이들은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3분의 1이나 되고, 지금도 우리 사회의 주류 세력이다. 이 베이비부머들은 치열한 경쟁 사회의 교육을 받아 국가 주관 객관식 시험성적만으로 전국에서 자신의 등수가 매겨지는 사회를 살았다.

중고교가 평준화되면서 단 한 번의 국가시험만으로 대학진학이 결정된다. 시험 한번 잘못 보면 평생 억울한 마음을 갖고 산다. 운 좋게 일류대학에 들어가면 사회적 인정과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평생 초과 이익을 누리며 살지만, 그 운을 얻지 못한 사람들은 그 억울함을 기득권층에 탓을 돌리는 심리적 기인(attribution)에 쉽게 빠진다.

20세기는 대량생산 산업화 시대였다. 대학 출신과 전공지식 하나로 60세 전후 정년 때까지 먹고 살았기에 대학입시는 더더욱 중요했다. 하지만 21세기는 컴퓨터와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개인의 특성에 따라 다양한 물품 생산이 가능해졌고, 제조업이 아니라 서비스업이 생산의 주류가 되었다. 더 나아가 인류가 30년 한 세대를 두 번 아니라 세 번 살 수 있는 최초의 시대가 되어 스무살 전후의 시험성적만으로 평생이 결정되는 시대는 지났다. 대기업보다 스타트업이 혁신적 생산을 한다. 주어진 과업을 혼자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프로젝트 형식의 협업이 주를 이룬다. 이제 국가가 주관하는 수능시험처럼 정답이 하나만 있는 객관적 지식으로 경쟁하던 시대는 지났다.

6월 24일 서울 영등포구 FKI타워 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2024 ESG포럼'의 모습. 올해 첫 해를 맞는 이번 포럼은 변화하는 기업 가치에 따라 ESG 경영의 핵심 쟁점을 짚어보고 사회(S), 환경(E) 분야에서 국내외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기업들의 우수사례를 공유하기 위해 마련됐다. 연합뉴스

경쟁과 이윤만을 제일의 가치로 추구하던 기업도 공존의 시대에 ESG, 즉 환경, 사회, 거버넌스를 주된 가치로 빠르게 탈바꿈하고 있다. 공존 사회에서 자기 회사의 이기적 영업행위만으로 장기적 생존과 성장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일찍 간파했기 때문이다.

공존 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다양성에 대한 공감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독일 예나대학의 교육학과 페터젠(Peter Petersen)교수는 1923년 초중등 학생들을 대상으로 예나 플랜(Jena Plan)이라는 교육실험을 했다. 예나 플랜 학교에서는 서로 다른 나이와 특성의 아이들로 학급을 구성했다. 융합 교과와 학생 자율 선택을 강조하고 토론과 집단 활동을 중심으로 교육했다. 놀이와 스포츠를 강화하여 사회적 행동을 훈련시켰다. 예나 플랜 20개의 기본 원칙 중 몇 가지를 보면,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특성을 인정받아야 하고 품격을 지키며 사람을 대해야 한다. 공정하고, 평화롭고, 건설적으로 사회를 위해 일해야 한다. 학교는 자유롭고 협동적인 조직이 되어야 하고, 다양한 구성원으로 이루어져 서로 돌보면서 배워야 한다.

지난 3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에서 열린 2024파리올림픽 펜싱 여자 사브르 단체전 결승 한국과 우크라이나의 경기에서 윤지수, 최세빈, 전은혜, 전하영이 서로를 격려하고 있다. 한국은 우크라이나에 42-45로 패배하며 은메달을 획득했다.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요즘 올림픽과 국회의 모습은 매우 대조적이다. 올림픽 선수들은 승자도 패자도 결과에 승복하고 서로 축하하고 격려하며 스포츠 정신을 나눈다. 반면에 우리 국회를 보면 경쟁 사회의 교육만으로 지도자가 된 정치 리더들이 얼마나 공존 사회의 가치를 망각하고 행동하는가를 잘 보여준다.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품격을 지키지 못하고 사회와 국가의 미래보다 붕당의 이익을 위해 정쟁만 일삼는다. 모든 사안에는 정답 하나만 존재한다는 독선으로 정치의 기본 가치인 타협과 양보는 안중에도 없다. 타인을 무시하고 조롱하고 막무가내로 몰아세우는 것은 일반인도 가져서는 안 되는 저급한 인격이다. 저잣거리에서 싸우다가 한계에 이르면 법대로 하라고 소리치는 것처럼 지금 우리 국회에서는 법의 정신보다 법의 형식논리만 난무한다.

이제 형식지로 정답만 찾는 경쟁 사회 교육의 유산은 거두어야 한다. 이는 인공지능이나 디지털 교과서의 몫으로 남기고 미래의 교육은 예나 플랜처럼 자신의 주체적 인격을 함양하고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품격을 기르는 데 매진해야 한다. 이런 교육이 없으면 우리 사회는 공멸할 수밖에 없다.

염재호 태재대학교 총장·전 고려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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