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홍의 시선] 국가 뒤흔드는 정보 참사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최고 정치지도자 이스마엘 하니야 암살은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의 역량이 드러난 사건이었다. 이스라엘이 이란에서 요인을 암살해 이란 주권을 훼손하고 이란의 보복 가능성으로 중동 정세를 불안하게 만들었지만, 모사드는 주어진 임무를 수행했다고 할 수 있다. 외신에 따르면 하니야는 지난달 30일 이란 테헤란에서 열린 마수드 페제시키안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뒤 귀빈용 숙소에 돌아갔다가 다음날 새벽 2시쯤 방에 설치된 AI(인공지능) 폭탄이 원격 조종으로 터지며 경호원 1명과 함께 숨졌다. 폭탄은 2개월 전 하니야의 방에 설치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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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미 테리, 블랙 요원 명단 누출
모사드 정보 역량과 크게 대조
정권 영향 줄이고 전문성 키워야
」
이란 정예 공화국수비대가 지키는 귀빈용 숙소에 미리 폭탄을 설치하고 하니야의 동선을 파악할 수 있었던 건 모사드가 적성국 이란에 심어놓은 휴민트(인적정보)·시긴트(신호정보)·이민트(영상정보) 역량이 뛰어났다는 증거다. 모사드의 다비드 바르네아 국장은 올해 1월 “지난해 10월 7일 이스라엘을 공격한 하마스 지도자를 추적하는 건 모사드의 사명”이라고 말했다. 이란은 폭탄이 어떻게 공화국수비대가 지키는 숙소에 반입돼 폭발할 때까지 발각되지 않았는지 파악하지 못해 충격에 빠졌다.
지난달 30일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 수장의 최측근 푸아드 슈크르 암살도 모사드가 주도했다.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남부의 혼잡한 거주 지역 내 아파트에 슈크르가 머물고 있는 사실을 확인한 모사드는 미사일을 발사해 그를 제거했다.
모사드는 과거에도 뛰어난 성과를 보였다. 2차 대전 후 아르헨티나로 도망간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 체포 작전(1960년),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에 납치돼 우간다 엔테베 공항에 착륙한 에어프랑스 여객기 인질 구출 작전(76년), 프랑스와의 협력으로 이스라엘 디모나 핵 시설에 필요한 자재·기술 밀반입(50년대 후반~60년대 초반) 등이 대표적이다.
모사드와 달리 한국의 정보기관은 아마추어 행태가 잇따르고 있다. 한국계 미국인 수미 테리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이 미국 법무부에 등록하지 않고 한국 정부를 위해 일한 혐의로 지난달 15일 미 연방법원에 기소된 사건이 대표적이다. 테리에게 접근한 국가정보원 요원들은 미 국무부 비공개회의 내용을 넘겨받는 과정에서 국무부 앞에 한국 외교관 번호판이 노출된 차량을 주차했다. 이들이 대낮에 테리와 함께 명품 매장에서 쇼핑하고 도심을 활보하는 장면은 폐쇄회로 TV에 그대로 찍혔다. 정보요원의 기본인 보안과 은밀성은 찾아볼 수 없었다.
지난달 30일에는 해외에서 신분을 감춘 채 활동하는 ‘블랙 요원’ 명단 등을 유출한 혐의로 국군정보사령부 소속 군무원이 구속됐다. 이 군무원은 중국 국적자 등에게 ‘블랙 요원’과 ‘화이트 요원’(합법적 신분의 요원) 명단 등을 넘긴 혐의를 받고 있다. 비밀 요원 정보가 통째로 유출된 정황이 나오자 중국·러시아·동남아시아 비밀 요원들이 급거 귀국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신변 위협 때문에 기밀 서류만 소각하고 현지의 집과 차는 물론 운영하던 업체까지 그대로 놔둔 채 3국을 통해 급히 귀국했다고 한다. 현재 정보사는 사령관과 대북 공작 담당 여단장이 정면충돌하며 하극상 조사와 고소가 이어지는 등 기강 해이가 심각한 상황이다.
지난해 11월 2030 부산엑스포 유치 실패도 뼈 아픈 정보전 실패 사례다. 당시 윤석열 대통령 등 정부와 민간이 모두 나서 엑스포 유치에 나섰으나 부산은 29개국의 지지를 얻어 119개국의 지지를 얻은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 대패했다. 애초에 오일머니를 앞세운 사우디가 지지국을 상당수 확보했는데도 한국 정보기관 등은 이를 파악하지 못했거나 윤 대통령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아 한국이 뒤늦게 유치전에 뛰어들며 어이없는 대패를 당했다.
한국의 잇따른 정보 참사는 그만큼 정보 역량이 부족하고 보안 의식이 허술하기 때문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치적 이유 등으로 고위직을 포함해 국정원 직원 수백명이 물갈이된다. 정권 입맛에 맞는 코드 인사가 많다 보니 정보요원들의 전문성이 떨어지고 자질이 부족한 경우가 적지 않다. 미국 등 주요국에서는 정보요원들이 24시간 감시될 수 있음에도 기본이 안 된 사람들이 정보 최전선에서 근무하며 어설프게 노출되고 있다.
정보 참사를 더는 방치해서는 안 된다. 미·중 전략 경쟁의 세계 격변기에 잘못된 정보는 국가 생존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국정원 등이 경쟁력 있는 정보기관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정권 영향을 최소화해 전문가들이 존중받도록 해야 한다. 옛 국정원 원훈처럼 ‘정보는 국력이다’.
정재홍 국제외교안보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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