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한·일 관계에도 필요하다, ‘메타 인지’
지난달 31일 일본 도쿄의 한 공연장. ‘한국어 안내’라고 쓰여 있어야 할 곳에 ‘조선어’ 세 글자가 선명했다. 세계 발레계를 호령하는 무용수 33인을 불러모은 큰 무대답게 현해탄을 건너온 관객도 배려한다는 취지는 훌륭했다. 그러나 번역기를 돌린 탓인지 한국어가 북한의 조선어로 둔갑했다. 다음날 바로 수정돼 있었다. 기민한 대처엔 박수를 보내지만, 처음부터 고칠 필요가 없었으면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자신 있게 ‘조선어’라고 써 붙였던 사실 자체가 한·일 관계의 현주소 아닐까. 서로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잘못 알고 있는 게 많다.
모른다는 걸 아는 것이야말로 아는 것의 첫걸음이다. 말장난 같지만, ‘메타 인지’의 핵심을 쉽게 풀면 그렇다. 메타 인지란 발달심리학자 존 플라벨이 1976년 만든 용어로, ‘인지 활동에 대한 반성적이고 비판적 사고’를 의미한다. 내가 뭔가를 아는 것이 진짜로 아는 것인지, 아니면 안다고 착각하는 것인지 비판적으로 통찰하는 과정이다. 실제는 모르는데 안다고 착각하는 것, 그 착각에 근거해 타자를 정의하고 판단하는 것은 수많은 오해와 불행의 시작이다. 한·일 관계도 마찬가지다.
그 맥락에서 지난달 초 동북아역사재단이 개최한 비공개 한·일 관계 세미나에서 나온 말은 인상적이었다. “한국과 일본의 가장 큰 문제는 서로가 서로를 너무 잘 안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어느 원로 학자의 말이다. 서로를 잘 안다는 착각에서 양국 관계의 단추는 잘못 끼워지기 일쑤다.
한국과 일본 사이 메타 인지까지 논하는 이유는 단 하나, 우리의 국익이다. 내년 1월 백악관 새 주인이 카멀라 해리스든, 도널드 트럼프든 현재의 불안한 외교 지형에서 한국과 일본은 각자 국익을 위해 서로 필요한 상대다. 일본 핵심 고위 외교관이 최근 익명을 전제로 “미국이 외교에서 ‘와가마마(わがまま, 몽니)’를 부릴 경우에 대비해 한국과 실무협의를 적극적으로 진행 중”이라고 했다는 전언은 그래서 더 반갑다.
지난주 도쿄에선 40도 폭염에도 한국어가 곳곳에서 들려왔다. 일본정부관광국(JNTO) 통계에 따르면 올 상반기에만 444만 명의 한국인이 일본을 방문했다. 일각에선 올해 방일 한국인 숫자가 1000만 명을 넘길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 정권 성향에 따라 냉온탕을 오간 한·일 관계. 그 진자 운동의 피로도를 줄이는 건 지금이 적기일 수 있다. 상호 교류와 호감이 높아지는 지금, 서로서로 진정 잘 이해하고 있는지 돌아볼 수 있다. 내년은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의 해다.
전수진 투데이·피플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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