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세영의 분노… 낡은 시스템에 날린 MZ세대의 ‘스매싱’
수년째 안바뀐 훈련방식 비판도
협회 “선수보호 소홀하지 않았다”
‘셔틀콕 여왕’ 안세영(22·삼성생명·사진)은 올림픽 금메달이라는 인생의 목표를 이룬 순간 대한배드민턴협회를 향해 쌓인 분노를 쏟아냈다. 이전 선배들한테는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달라진 MZ세대 태극전사의 단면이다. 금메달이라는 목표가 중요하지만 거기까지 도달하는 과정 역시 중요하다. 불합리하다고 느끼는 게 있으면 참지 않는다. 필요한 게 있으면 적극적으로 요구한다. 기성세대의 눈에는 ‘특별대우’를 바라는 것으로 비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반문한다. 더 나은 길이 있는데 낡은 방식에 갇혀 있어야 하느냐고.
안세영은 6일 SNS에 “선수들이 보호되고 관리돼야 하는 부분, 권력보단 소통에 대해서 언젠가는 이야기드리고 싶었다”며 “제가 하고픈 이야기들에 대해 한 번은 고민하고 해결해 주시는 어른이 계시기를 빌어본다”는 글을 올렸다. 그는 전날 대표팀 은퇴를 시사한 ‘폭탄발언’의 진의가 선수 관리와 관련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안세영은 올림픽 준비 과정에서 부상 관리, 트레이너 합류, 대표팀 훈련 방식 등 문제를 두고 협회와 갈등을 빚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발단은 지난해 항저우 아시안게임 결승전에서 당한 무릎 부상이었다. 귀국 후 첫 검진에서 2~6주 재활 진단을 받았던 그는 재검진에서 한동안 통증을 안고 뛰어야 할 정도로 부상이 심각하다는 걸 알았다. 이 과정에서 대표팀 선수 관리체계에 대한 신뢰가 떨어졌다.
올해 국제대회 출전 과정에서 크고 작은 부상이 겹쳤던 안세영은 자신을 전담하던 한수정 트레이너를 많이 의지했다고 한다. 금메달 소감에서도 ‘수정쌤’을 언급하며 고마움을 표했다. 그러나 한 트레이너는 지난 6월 계약이 종료돼 올림픽에 동행하지 못했다. 이 또한 협회와 각을 세우게 된 원인으로 꼽힌다.
부상 회복을 가장 중요시했던 안세영은 개인 트레이너 고용, 신속한 치료 등을 원했다. 지난 1월 협회에 의견서를 제출해 몇몇 요구사항을 전했으나 잘 반영되지 않았다고 한다. 전담 트레이너를 대동한 해외 경쟁자들을 보고 아쉬움을 느끼기도 했다.
훈련 방식에 대한 불만도 거론됐다. 단·복식이 다른 종목임에도 같은 방식의 훈련, 그간 국제대회 성적이 좋았던 복식 중심의 대표팀 운영이 이뤄진 점을 꼬집었다. 수년째 바뀌지 않는 훈련 방식도 비판했다.
불만이 누적된 안세영은 일부 국제대회 때 자신의 출전 의사까지 제대로 반영되지 않자 대표팀 하차를 마음먹은 것으로 전해졌다. 협회가 별다른 설명이나 소통 없이 엔트리 제외를 결정했다는 것이다. 협회는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지만 ‘선수 보호’를 소홀히 하진 않았다는 입장이다.
협회 관계자는 국민일보에 “안세영이 올림픽 직전 훈련 중 발목 부상을 당해 선수 요청에 따라 한국에 있는 한의사를 파견했다”고 밝혔다. “선수 회복을 돕는 트레이너 고용도 요청에 따라 이뤄졌다”고 전했다.
안세영의 이번 발언은 돌출행동이 아니었다. 개인의 발전을 더 중요시하는 젊은 운동선수는 기존의 틀에 맞춰 움직이는 국가대표 운영 시스템에 답답함을 느꼈다. 합리적인 과정을 우선시하는 젊은 세대와 결과·규칙을 앞세운 기존의 시스템 사이에서 충돌이 빚어졌다.
정용철 서강대 스포츠심리학과 교수는 “금메달 딴 좋은 순간에 어떤 선수가 나쁜 얘길 하고 싶겠나. 엘리트 스포츠가 가지고 있었던 오래된 구조적 문제를 파악하고 적절한 대처를 해줘야 한다”며 “선수가 딱 집어서 양궁협회를 거론했다.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고 최대한 선수가 마음 편하게 운동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협회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안세영은 대표팀에서 나와 개인 자격으로 국제대회에 출전하는 방안까지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협회 규정상 만 27세 이상이어야 개인 자격으로 국제대회에 나설 수 있다. 안세영은 이 같은 나이 제한 규정을 바꾸는 방안을 협회에 요청할 것으로 예상된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경위 파악에 나설 방침이다. 대통령실은 “올림픽이 끝나면 문화체육관광부가 진상 파악에 나설 것”이라며 “결과에 따라 책임을 물을 것이 있다면 묻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올림픽이 끝나는 즉시 신속하고 정확하게 안세영이 이야기한 사정을 들여다보고 그에 따라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구인 정신영 이경원 기자 capta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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