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 프리즘] 천덕꾸러기 된 ‘우렁각시’

최경호 2024. 8. 7.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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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호 광주총국장

“농약 대신 도입된 우렁이가 또 다른 농약 사용을 부르는 모순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윤명희 전남도의원이 지난달 26일 전남도의회 본회의를 통해 한 말이다. 그는 “겨울에 폐사해야 할 왕우렁이가 따뜻한 날씨 탓에 개체 수가 급증하면서 어린 모를 갉아먹고 있다”며 “일부에서는 벼농사를 포기할 정도”라고 했다. 친환경 농법의 대표 생물이던 왕우렁이가 기후변화 여파로 애물단지로 전락한 것을 지적한 말이다.

왕우렁이는 친환경 벼를 재배해온 농가들엔 ‘우렁각시’로 통했다. 논에 우렁이를 뿌리기만 해도 제초작업에 드는 노동력과 비용을 줄여주기 때문이다. 논에 모를 심은 후 10a당 우렁이를 1.2㎏가량 투입하면 잡초를 98%까지 제거할 수 있다고 한다.

왕우렁이 농법을 쓰는 농민이 우렁이를 들어보이고 있다. [뉴시스]

국내 지방자치단체들은 1992년부터 남미산 왕우렁이를 보조금 지원사업으로 추진해왔다. 전남에서는 올해 21개 시·군에 제초용 우렁이를 공급했다. 사업비는 도비 4억원, 시·군비 28억원 등 32억원이 투입됐다.

30년 이상 활용된 왕우렁이 농법은 4~5년 전부터 지역별·농가별로 호불호가 갈려 왔다. 지구 온난화 등 여파로 생태 양상이 바뀌면서 개체 수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생태교란종인 왕우렁이는 겨울을 나면 40㎜ 이상까지 성장해 왕성한 식욕을 드러낸다. 따뜻한 겨울 날씨 탓에 봄철까지 살아남은 우렁이들이 모까지 파먹는 피해가 속출하는 이유다.

전남도에 따르면 올해 들어 9개 시·군에서 왕우렁이 피해가 발생했다. 피해 면적은 축구장(7140㎡) 7050개 크기인 5034만㎡에 달한다. 이중 해남 등지에서는 우렁이 때문에 4차례나 모심기를 한 농가도 있다.

피해가 커지자 각 지자체는 왕우렁이 방제에 나섰다. 전남도는 친환경 살충제를 이용한 방제에 예비비 5억2400만원을 추가로 투입했다. 또 7월을 ‘왕우렁이 수거 기간’으로 정해 하천 등지로의 확산방지 활동을 벌였다. 논농사 효자 역할을 했던 왕우렁이가 천덕꾸러기가 되면서 공급과 퇴치에 이중으로 혈세를 투입하게 된 셈이다.

지난달 전남 함평군에서 불거진 보조금 부정수급 의혹은 왕우렁이 사업의 문제점을 여실히 드러냈다. 농가에서 신청하지도 않은 우렁이가 수년째 공급돼 보조금을 낭비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경찰은 “특정 인물이 농가와 상의 없이 왕우렁이를 신청했다”라는 고발장을 토대로 수사에 나섰다.

전문가들은 “당장 우렁이 공급과 수거를 위한 이중 지원을 끊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한다. 현재로선 우렁이를 능가할 친환경 제초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지자체들 또한 겨울철 논갈이 외에는 뾰족한 우렁이 퇴치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기후변화에 맞춰 우렁이 농법의 실효성과 보조금 지원 방식 등을 근본적으로 따져봐야 할 때다.

최경호 광주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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