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로봇들의 ‘심쿵’ 로맨스…브로드웨이도 사로잡을까

나원정 2024. 8. 7.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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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에서 두 주인공은 올리버의 옛 주인 제임스를 찾아 제주도로 여행을 떠난다. 시즌5에 합류한 배우 윤은오(왼쪽)와 박진주. [사진 CJ ENM]

“착한 우리 올리버/ 말 잘 듣는 올리버”라는 옛 주인 제임스의 칭찬이 세상 전부처럼 좋았던 가사도우미 ‘헬퍼봇5’ 올리버, 인간에 더 가깝게 업그레이드된 대신 내구성이 떨어진 ‘헬퍼봇6’ 클레어. 이들은 은퇴한 고물 로봇들의 아파트에 산다. 충전기가 고장난 어느 날, 클레어는 이웃의 올리버를 만나면서 낯선 감정에 눈 뜬다. 인간들의 전유물인 줄 알았던, 사랑의 설렘 말이다.

지난 6월부터 다섯 번째 시즌 공연을 무대에 올리고 있는 한국 창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내용이다. 2016년 초연 이후 한국뮤지컬어워즈 6관왕(2018)을 차지하는 등 중소극장 창작 뮤지컬의 성공 신화로 자리매김한 이 뮤지컬이 올 가을 미국 브로드웨이에 상륙한다. 뉴욕 1000석 규모 대극장 ‘벨라스코씨어터’에서 10월 16일부터 프리뷰를 거쳐 11월 본 공연을 개막한다.

지난 4월 브로드웨이에 진출해 토니상 의상디자인상을 수상한 ‘위대한 개츠비’, 지난 6~7월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공연한 ‘마리 퀴리’에 이어 뮤지컬 본고장에서 또 한번 한국 뮤지컬의 날개를 펴게 됐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순수 창작 이야기로 해외 공연계에서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받고 있다. 지난 6월 ‘2024 K-뮤지컬 국제마켓’에 강연자로 참석한 미국의 공연 저널리스트 고든 콕스는 “한국어를 거의 모르지만 ‘어쩌면 해피엔딩’(한국판)을 보고 울었다”면서 “‘위대한 개츠비’가 한국 공연 산업의 위상을 많이 올려놨는데, ‘어쩌면 해피엔딩’까지 (브로드웨이에서) 성공하면 한국 작품·아티스트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번지점프를 하다’ ‘일 테노레’ 등 창작 뮤지컬을 잇따라 성공시킨 ‘윌휴 콤비’, 작곡가 윌 애런슨과 박천휴 작가의 작품이다. 재즈·클래식을 녹여낸 어쿠스틱 사운드에 특유의 서정적 감성을 실어냈다. 영국 록밴드 ‘블러’ 멤버 데이먼 알반의 솔로곡 ‘에브리데이 로봇’에서 모티브를 얻은 이 작품은 2015년 트라이아웃(시험 공연)부터 전회 매진을 기록했다. 이듬해 한국 초연과 함께 영어 대본을 완성해 2020년 미국 애틀랜타에서 영어 버전 트라이아웃을 올렸다. 영어 버전도 안드로이드 로봇이 일상화한 21세기 후반, 서울 외곽 고물 로봇들의 아파트가 배경이다.

클레어를 만나기 전 올리버는 제임스가 남긴 LP플레이어로 재즈를 듣고 음악잡지를 보는 낙으로 살아간다. [사진 CJ ENM]

한국판 공연을 기획·제작한 CJ ENM에 따르면 다음달 8일까지 서울 대학로 예스24스테이지에서 공연하는 다섯 번째 시즌도 94.1%의 유료 객석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인터파크 예매관객 평점도 9.9점(10점 만점)에 달한다.

부품 단종으로 남은 수명이 정해진 로봇들의 애틋한 설렘이 사춘기 풋사랑 같다가도, 예고된 이별이란 점에서 치매 부부의 황혼 로맨스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피아노·바이올린·비올라·첼로·드럼으로 구성한 6인조 밴드의 선율에 맞춰 제임스·재즈싱어·모텔 주인 등 1인 다역을 맡는 멀티맨도 이런 사랑의 감흥을 거든다.

박천휴 작가는 전화 인터뷰에서 “친한 친구가 암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 것을 계기로 삶은 유한하고, 상실은 나이의 문제가 아니란 생각을 하며 이 작품을 쓰게 됐다”며 “로봇을 주인공으로 삼은 건 점점 시니컬해지는 사람들이 잊고 사는 단순하고 순수한 감정을 일깨우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브로드웨이 공연은 한국보다 스케일을 키운 대극장 규모다. 실화 토대 시대극 ‘퍼레이드’로 지난해 토니상 베스트 리바이벌 뮤지컬상을 받은 연출가 마이클 아덴과 ‘윌휴’ 콤비가 8년간 개발 작업에 매달렸다. 한국에선 멀티맨 배우 한 명이 맡은 역할들을 분리해 제임스 역할은 동양계 배우가 맡게 된다. 한국 공연에 없던 제임스의 아들, 클레어의 주인도 등장시켜 주인공들의 전사를 보강했다.

박 작가는 “현지 관객의 이해를 돕기 위한 각색을 가미했다. 한국어판에서 미학성을 고려한 가사를 썼다면, 영어 가사는 라임이나 언어유희, 직접적인 설명이 도드라진다”면서 “메시지나 정서는 똑같이 유지하려고 애썼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어쩌면 해피엔딩’의 넘버는 조곤조곤 섬세하게 노래하는 게 특징인데, 뮤지컬의 전달 방식이 다양하다는 걸 브로드웨이에 전할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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