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달보다 과정이 더 중요한 MZ…안세영 ‘낡은 시스템’에 분노했다
“목표(올림픽 금메달)를 정하고 그 꿈을 이루기까지의 원동력은 분노였습니다.”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건 ‘셔틀콕 여제’ 안세영(22·삼성생명)은 기쁨과 후련함 대신 분노와 아쉬움을 토로했다. 지난 5일(한국시간) 2024 파리 올림픽 배드민턴 여자단식 결승전에서 허빙자오(중국)를 꺾고 우승한 직후 그는 “부상을 너무 안일하게 생각한 대표팀에 실망했다. 이 순간을 끝으로 대표팀과 계속 가긴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작심 발언은 이어졌다. 문제의식을 갖게 된 시점을 “2018년에 처음 태극마크를 달았던 그 순간부터”라고 밝힌 그는 “단식과 복식에 따라 코칭스태프 구성과 훈련 방식이 달라야 한다. 체력 운동 프로그램도 보다 효율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현재의 낡은 시스템 아래에선 오히려 부상 위험이 크다. 협회의 일방적인 의사 결정 방식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발언이 국가대표 은퇴로 여겨지자 6일에는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그는 “배드민턴협회나 (김학균 대표팀) 감독님이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에 또 한번 상처를 받는다”며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은퇴가 아니라 선수 보호 및 관리에 대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국제대회에 전담 코치를 동행하는 외국 선수 사례를 소개하며 “경기력 관리를 위해 개인 트레이너를 쓰고 싶다는 의견을 여러 차례 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의 문제 제기는 ‘결과’만큼, 어쩌면 그 이상 ‘과정’을 중시하는 ‘영 코리안’ 운동선수들의 달라진 세계관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메달에만 연연했던 과거와 달리 2000년대 이후 태어난 이들은 도전 자체를 중시한다. 과정이 공정하고 합리적이면 그 자체를 즐기고 어떤 결과라도 받아들인다. 이번 일은 결과로 과정의 문제를 덮고 넘어가던 관행에 선수가 직접 제동을 건 경우다. “배드민턴도 양궁처럼 체계적이었으면 좋겠다. 어느 선수가 나가도 올림픽에서 메달을 딸 수 있을 정도가 돼야 한다”고 변화의 방향성까지 제시했다.
한 배드민턴계 인사는 “안세영이 개인 자격으로 국제대회에 출전하는 방안까지 고려 중인 것으로 안다. 이를 위해 법적 조치도 불사한다는 생각”이라고 전했다. 배드민턴의 경우 세계랭킹 상위권 선수는 국제대회 자동출전권이 주어져 국가대표로 선발되지 않아도 출전할 수 있다. 이용대 등이 개인 자격으로 출전한 사례가 있다. 다만 협회 규정상 ‘만 27세 이상’이라는 나이 제한 규정이 있다. ‘법적 조치도 불사’라고 말한 배경으로 보인다. 대한배드민턴협회 관계자는 “(안세영의 불만을) 어느 정도는 인지하고 있었다”면서도 “상황을 정확히 파악한 뒤 합리적인 해결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일과 관련해 대통령실은 이날 “문화체육관광부 차원에서 진상조사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강 건너 불 보듯 할 수는 없는 일로 안세영 선수와 협회의 입장을 듣고 공정히 처리할 것”이라며 “안 선수의 폭로는 윤석열 대통령도 인지하고 있는 사안”이라고 전했다.
송지훈·박태인 기자, 파리=피주영 기자 song.ji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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