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아이돌 팬이 사랑에 빠진 순간

이마루 2024. 8. 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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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어린 남자가 좋은 저희는요? 저희는 초파리처럼 자연발생한 건가요?
이희주
임창정도 아닌데 또다시 사랑에 빠져버린 소설가. 〈환상통〉 〈나의 천사〉 등 이상한 소설을 쓰지만 늘 최애의 소원이 이뤄지길 바라는 순애 100% 오타쿠.

인간을 천사로 만들기 위해서

나의 은밀한 취미는 미소년을 보는 것…이 아닌, 그들을 사랑하는 여자들의 댓글을 읽는 것이다. 직접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 (성인 여자와 미성년 남자의 안타까운 이별 뒤남자 주인공이 성인이 돼 재회하는 만화를 보고) 결말에서 주인공이 자라서 슬펐습니다.

- (청량 컨셉트의 남자 아이돌이 검고, 칙칙하고, 통풍도 나쁜 가죽 옷을 입고 소년에서 남자로 돌아왔을 때) XX끼들아, 남자가 싫어서 얘네 좋아하는 건데 장난하냐?

- (젖살이 빠진 최애를 보고) 우리 아기 돼지의 통통 무릎에서 1g도 앗아가지 마!

- (성인이 되면 운전해 보고 싶다는 최애의 말에) 응, 너 면허 따는 날 누나 죽는 날이니까 그런 줄 알아. ^^‘

뻥’이고 전부 내가 썼다. 그런데 나는 똑같이 말하는 어떤 여자들을 안다. ‘읽기의 기쁨’을 내가 알고 있지만 표현하지 못했던 것을 다른 누군가를 통해 듣는, 즉 발화의 책임은 떠넘기는 행위라고 한다면, 스크롤을 내릴 때마다 뇌에서 폭죽이 터지는 짜릿한 기쁨을 주는 익명들을 안다. 결코 바깥으로 나오지 않을 사람들. 그들이 남긴 진심에서 비롯한 천재적인 명문을 보며 나는 말없이 스크린 샷 버튼을 누른다. 캡처된 화면을 살짝 기울인 뒤 세피아 톤의 먹먹한 필터를 씌워 인스타그램의 친한 친구 스토리로 올린다. #공감 #명언 #좋은글귀 #좋은말씀.

이따금 어릴 때 너무 ‘빻은’ 창작물을 많이 읽어 늙은 남자를 좋아하게 됐다며 너희는 그러지 말라고 다음 세대의 여자들을 준엄하게 꾸짖는 분들에게 묻고 싶다. 그럼 어린 남자가 좋은 여자들은요? 저(희)는 초파리처럼 자연 발생한 건가요? 이 욕망은 정부정책이나 사회 분위기, 프로파간다처럼 전파되는 대중문화의 영향을 받았다고 변명할 수도 없다.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미소년을 졸업한다던데. 흔히 말하는 정상적인 루트를 밟지 못한 탓인가? 또래들이 애나 개나 조카에게 그러듯, 돌봄의 자리에 자처해 기어가 화면 속 소년들에게 애정을 쏟아붓는 걸 멈출 수 없다. 이 기침과 같은 사랑을 숨길 수가 없다.

최근 몇 년 만에 진심으로 좋아하게 된 아이돌 그룹은 최연장자가 나와 열 살 차이가 난다. 이전처럼 딱 한 명의 ‘최애’가 남자로 보이는 게 아님에도 나는 이 감정에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냥 그 애들이 너무 좋거든. 진짜 당황스러울 정도로 순수하게 좋거든. 강아지처럼 뒤엉켜 저들끼리 장난을 치는 게, 그 애들이 먹고 웃고 떠들고 존재한다는 걸 생각만 해도 행복했다. 바라는 게 없는 마음. 더하고 뺄 것 없는 마음. 갈증도, 불쾌한 포만감도 없는 절대 평화가 내게도 찾아왔다는 게 놀라웠다. 이렇게 완전한데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어 놀라웠다.

그래서 어느 날 화면을 붙들고 마음으로 울게 된 것이다. 도대체 왜 아이돌이 된 거야? 꿈과 희망의 별사탕 같은 그 애들은 몰라도 오래 누군가의 팬이었던 나는 안다. 멋진 집과 차, 부와 아름다움, 인류의 극소수만 가질 수 있는 기쁨을 그들은 누릴 것이다. 그때가 되면 계급 문제로 인해 마음이 멀어질지 몰라도 거기까지 가는 길엔 검고 무겁고 끈적한 그림자가 필연적으로 따라붙을 것이다. 난 나의 천사들을 지켜주고 싶었다. 아직 아기들이니까. 정말이지 보호하고 싶었다.

무엇으로부터?

미성년자 아이돌을 좋아한다고 하면 흔히 ‘할미’를 자칭하는 등의 방어적 태도를 기대하거나 ‘빻음’에 대한 자발적 고백을 하길 희망한다. 그러나 그 애들이 ‘남자’로서 발견되는 날이 오더라도 난 이 사랑에 한 점 후회 없다. 어떤 방식이든 안 사랑하는 게 더 이상한 사랑스러운 애들이니까. 더구나 욕망은 타자의 이해 영역도 아닐뿐더러 옳고 그름으로 표현하기 어렵다. 이를테면 아이돌의 성장을 응원하며 열혈 ‘스밍’을 돌리는 ‘순덕’이 과잉보호 양육자의 성격을 띠기도 하며(성인인 멤버에게 술과 담배를 하지 말라고 조언을 한다든지), 멤버들의 관계성을 동성애적으로 재해석함으로써 대상화 논쟁의 중점이 되곤 하는 ‘RPS’를 하는 이들이 멤버의 인기를 견인하기도 한다(갑자기 인기가 치솟은 멤버의 뒤에는 든든한 ‘존잘님’이 있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건 어떤 욕망이든 돈이 되게끔 구조화하는 방식으로 산업이 점점 교묘해지고 있다는 거다.

가끔 활동이 끝나도 끝나지 않는 앨범 발매 기념 팬 사인회를 보면 무섭다. 누적되지 않는 관계의 바위를 굴리고 또 굴리며 멤버들도, 팬도 소진되는 게 염려스럽다. 나는 쉽게 비난의 대상이 되는 RPS 논쟁 따위보다 일종의 접대로 변질된 팬 사인회가 훨씬 문제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노동은 매우 구조적이기 때문이다. 더 많은 수익, 더 많은 매출을 올려야 한다는 이유로 거의 매일 올라오는 팬 사인회 영상을 보면 마음이 편치 않다. 너는 언제까지 웃을 수 있니? 언제까지 이 일에서 순수한 기쁨과 사랑을 느낄 수 있니? 그런 질문을 나 혼자 던지며 아파한다.

이런 얘기를 하는 건 내가 잘나거나 깨끗해서가 아니다. 지금 내가 소년들에게 원하는 게 환상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아이들이 과잉 노동에서 비롯한 인간의 지리멸렬한 고통을 모르고 나의 천사로서 오래 살아주길 바란다. 그러니까 삶이 너무나 지루하고 나아질 구석이 보이지 않아서, 적어도 아홉 시부터 여섯 시까지는 분노도 사랑도 다 내 안에 가둬버리고 한국 사회라는 ‘연극적 공간’에서 멀쩡한 시민을 연기하기 위한 동력이 필요해서, ‘지금, 여기’는 전부 쓰레기고 나의 ‘진짜’ 삶은 거기 있다고 말할 절대적 환상이 필요해서 내가 사랑하는 소년들이 천사 역할을 수행하길 원한다. 마치 미시마 유키오가 165cm의 인간을 천황이라는 이름의 살아 있는 신으로 만들기 위해 자기 배를 갈라버린 것처럼 인간을 천사로 만들려는 우스꽝스러운 촌극이 내 내면에서 지속 반복된다.

가끔 소년들의 애교를 보면서 생각한다. 내가 진짜 원하는 ‘밤양갱’은 수십 번씩 반복되는 고양이 흉내가 아닌, 기꺼이 그걸 해주는 ‘순응의 자세’라고. 사과가 땅으로 떨어지듯, 돌을 던진 연못에 파장이 일 듯 팬들의 요구를 과학적 진리처럼 실천하는 소년들. 나는 그들이 우리를 ‘사랑’한다며 보여주는 태도가 진심이길 바란다. 노동의 밖에서도 지속되길 희망한다. 그리고 그들이 이런 내 폭력적인 마음을, 불합리함을 다 알고서 아이돌이라는 직업을 선택했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그 애들이 행복해야 내가 행복하니까. 나를 위해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으니까.

오늘도 나는 출근길 지하철에서 사랑하는 소년들을 본다. 그들이 노래하는 모습과 움직이는 모습, 망막에 아로새기고 싶은 아름다운 ‘지금’을 보면 내가 위에서 긁어 토해낸 끈적한 마음들이 전부 투명해질 정도로 영혼이 맑아지는 느낌을 받는다. 화면 속에서 소년들은 삶이 견딜 수 없게 아름답다는 듯 웃는다. 반짝반짝 빛나는 거짓말을 한다. 인간의 몸으로 영원한 환상의 전당에 거주하겠다는 선언. 나는 그들이 사랑의 신을 흉내 내기로 마음먹었다고 믿으며, 그들의 용기와 각오, 다짐과 허영, 야심과 욕망, 조급함과 떨림, 연약함과 기쁨, 회의와 두려움, 공포와 가슴이 터질 것 같은 짜릿함과 그 밖의 모든 것을 응원하기로 다짐한다. 그들이 소년으로 남아주기만 한다면 나 역시 소녀의 마음을 선물해 주겠다고 약속한다.

그러나 나의 천사들은 언젠가 어른이 될 것이다. 영국의 시인 테니슨의 말처럼 인간이라면 누구나 ‘체험이라는 추접한 보모’로 인해 더럽혀지는 순간이 오기 때문이다. 그걸 알지만, 알면서도 나는 원한다. 외모의 유지보다 더욱 불가능한 마음의 순수가 유지되기를. 그들이 영원히 ‘초심을 잃지 않고’ 신인(神/新人) 상태에 머무르기를. 그리하여 나는 불가능한 희망을 주술처럼 중얼거리며, 선무당처럼 실패를 예감하며, 결국엔 내 몸에 상처를 내고 피를 죽죽 흐르게 할 칼날 위에 두 발로 선다. 지금을 놓치지 않기 위해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중얼거린다.

너는 자라날 것이다.

자라나지 마.

너는 자라날 것이다.

*마지막 세 문장은 심보선의 ‘새’를 변형해 인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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