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때문에 출산 거부? 그걸 대하는 시민들 태도가 핵심"
기후위기 시대, 우리는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 <오마이뉴스>가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정한 다섯 부부를 만났다. <편집자말>
[유지영 기자]
▲ 2023년 8월 4일 창원시청 사거리 쪽에서 열린 '60차 금요 기후위기 행동'의 현수막에 '집에 불이 난 것처럼 당장 행동하라'라고 적혀있다. |
ⓒ 창원기후위기비상행동 |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이나은 연구자(박사과정)는 '기후위기와 비출산주의, 그리고 미래시간감각'이라는 주제로 기후위기에 아이를 낳지 않는 여성들을 연구 대상으로 삼아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그는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아이를 낳고자 하는 사람'과 '기후위기의 심각성 때문에 아이를 낳지 않고자 하는 사람', 이렇게 21명 가량 인터뷰를 진행했다.
"21세기 생태적 주체들이 한국에 어떻게 등장했는가 탐구"
이나은 연구자는 <오마이뉴스>에 "학계에서는 '비출산'이라는 이름으로 환경 실천에서 '도피'하는 일을 두고 무기력한 실천이라거나 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지적한다. 그럼에도 비출산을 실천함으로써 자기 자신도 지구에 기여하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궁금해서 (연구 주제로 삼게 됐다)"라고 밝혔다.
그는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기후위기' 자체가 아니라 '기후위기를 대하는 다른 사람들의 태도'가 핵심이라는 걸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 연구자는 "사람들은 기후위기를 대하는 다른 사람들의 태도가 얼마나 자신을 무력하게 하는지를 설명하더라. 자신들이 목도한 현실을 개선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나 주변 사람들이 이를 외면할 때 깊은 무력감에 잠겼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인터뷰를 통해 "기후위기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태도가 기후위기에 대한 감수성을 만드는 게 아닐까"라고 전했다.
이 연구자는 "연구에 참여한 사람들은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을 때 아이를 낳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삶 앞에 도래한 객관적인 공포나 달라진 날씨 때문에 아이를 낳지 않게 되는 것이 아니라, 마주한 세계를 바꿀 수 없고, 그래서 이 세계에 더이상 희망이 없게 됐을 때 낳지 않게 되는 것이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환경실천을 죄를 닦아내는 일로 생각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이 연구자는 "이들에게 아이를 낳지 않는 것 외에 어떤 환경 실천을 하고 있고, 하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집요하게 물어보았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세상이) 바뀌지 않을 것을 알아도 실천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래서 앞으로 태어날 아이들을 책임지지 못하더라도 이들은 지금 여기 지구에서 소비하는 것을 죄스럽게 생각하면서 자기 자신을 바꾸고 있었다. (비출산을 선택한 이들이) 끊임없이 슬퍼하고 두려워하면서도 그걸 물려줄 수는 없다고 생각하면서 자기가 선 자리를 바꾸려고 하는 이들이라는 생각을 했다"라고 덧붙였다.
그의 연구를 지도하는 김홍중 교수(서울대 사회학과) 또한 "인류세의 도래로 상징되는 생태적 위기의 심화가 미래를 사고하고 느끼는 방식에 큰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우리 시대에, 청년들이 자신들이 살아갈 21세기의 미래를 어떻게 상상하고, 대처하고, 생산해가는지를 탐구하는 것이 사회학적으로 큰 의미를 띠는 시기라고 판단했다"라고 연구를 의미를 소개했다. 또한 "21세기적 생태적 주체들(생태 계급)이 한국 사회에 어떻게 등장했는가를 탐구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를 위해서 이 연구를 시도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 기후위기로 인해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정한 여성들. 왼쪽부터 김보연, 송도영, 김유리, 윤고은, 이혜인. |
ⓒ 유지영 |
아이를 낳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김유리씨의 "밝은 미래가 기대되는 사회여야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선언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 '밝은 미래가 기대되는 사회' 안에는 기후위기 대책을 적극적으로 수립하고, 노동시간을 줄이고, 아이와 여성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고, 경쟁적인 교육을 해결하는 것이 포함돼있다. 저출생 대책은 따라서 일방적이어서는 곤란하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청춘남녀들이 프러포즈를 할 수 있는 공간을 설치하겠다'면서 수상공원을 만들기도 하고, 어느 국책연구소는 남성의 발달 정도가 여성보다 느리니 여성들을 1년 조기 입학시켜 남녀가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기도 한다. 나아가 괄약근에 힘을 조이는 케겔운동을 통해 '출생장려'를 하겠다는 행사를 기획하는 시도도 있었다. 이 대책들은 모두 젊은 남녀로부터 "황당하다"는 비판을 낳았다.
<오마이뉴스>가 만난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여성들은 기후위기에 대한 대책과 더불어 종합적이고 장기적인 해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혜인씨는 노동시간 단축을 먼저 말했다. 그는 "부부가 오후 4시까지 일하고 퇴근해도 된다면 아이를 낳는 걸 긍정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일하면서 어린이집에 맡기고 나머지 시간에는 부모가 양육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는데, 그게 아니라면 맞벌이 부부가 아이를 낳기는 어렵다"라고 언급했다.
이씨는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인 초등 전일제 학교인 '늘봄학교'도 언급했다. 늘봄학교는 오후 8시까지 초등돌봄교실 운영 시간을 늘려 학교에서 다양한 유형의 돌봄을 제공하겠다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그는 "아이를 늦게까지 맡아줘서 부모가 야근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걸 누가 좋아하겠나. 애를 맡아 줄 테니 낳아보라니, 인간을 가축으로 아는 건가"라고 비판했다.
노동시간에 대한 언급은 윤고은씨 부부에게서도 나왔다. 윤씨 또한 "나는 과거 비혼주의자였지만 결혼했고, 지금 이렇게 딩크라고 말해도 언제든 생각이 바뀌어 애를 낳을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착취당하면 자연스럽게 출산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송도영씨 부부는 사회적인 측면의 문제를 언급했다. 송씨는 "사회 전체가 애를 낳지 말라는 메시지를 주는 것 같다. 사회에서 아동을, 그리고 여성을 대하는 분위기가 바뀌어야 한다. 여성으로 살면서 인간으로서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갖지 못했는데, 애를 낳으면 더 심화될 거라는 걸 느낀다"라고 말했다. 송씨는 "만일 노키즈존을 법적으로 규제하고 유모차가 어디든 다닐 수 있도록 도로와 생활 환경을 정비한다면 어떨까. 그런데 그 일이 한국에서 가능할까"라면서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 역시 이나은 연구자의 말처럼 주변의 반응에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김보연씨는 아이를 낳을 거라면 한국이 아닌 외국으로 가겠다고 말했다. 한국의 경쟁적인 '교육 제도' 때문이다. 김씨는 "경쟁적인 교육 시스템을 견딜 수 없어 한국에서 아이를 낳아 키울 자신이 없다"라고 토로했다. 아일랜드인인 남편과 결혼한 김유리씨 역시 "외국인이랑 결혼한 친구를 보면 애를 원하는 경우 한국 밖에서 애를 낳는 경우가 많다"라고 말했다. 김씨와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 8명 가운데 6명이 아이를 낳지 않았다.
인터뷰 말미에 송도영씨는 기자에게 다음과 같이 반문했다.
"이렇게 부부 동반으로 인터뷰에 응하는 사람들은 다들 부부 간에 사이도 좋고, 아이를 낳는 일에 대해 고민도 많이 하는 이들이다.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조금의 '희망'만 생기면 언제든지 저출생 극복을 위해서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부부들 아닌가?"
부부들은 인터뷰에서 '희망'이라는 단어를 자주 언급했다. 아이를 낳을지 말지, 그 고민의 기로에 선 여성들이 국가에 묻고 있다. 국가의 저출생 극복이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관련기사]
- "아이는 기후위기 희생양 될 것" 아이 낳지 않겠다는 여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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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후위기에 아이 안 낳아요" 이 결정이 패배적이라고요?
https://omn.kr/29c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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