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질문 받지 않겠다" 했지만...김원호-정나은 "스마트·체계적인 中 배웠으면" [2024 파리]
뜻깊은 복식 은메달을 따고도 김원호(삼성생명)와 정나은(화순군청)은 웃을 수 없었다. 배드민턴 대표팀에 휘몰아친 '폭풍' 때문이다.
김원호와 정나은은 5일(한국시간) 프랑스 파리의 코리아하우스에서 진행된 메달리스트 기자회견에 참석해 전날 뜨거운 감자가 된 안세영 및 대한배드민턴협회의 상황에 대해 " 분위기가 좋다고는 말씀 드리기 어렵다"며 말을 아꼈다.
안세영은 지난 5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배드민턴 여자단식 결승전에서 허빙자오(중국)를 게임 스코어 2-0으로 완파하고 금메달을 따냈다. 좋은 기운이 발산될 것으로 예상된 시상식과 기자회견 자리. 하지만 안세영은 그동안 대표팀 생활을 통해 느낀 어려움을 토로했다.
지난해 10월 항저우 아시안게임(AG)에서 오른쪽 무릎 슬개건 부상을 입은 뒤 이를 관리하고, 재활 치료와 정상 궤도 진입을 도모하는 과정에서 큰 실망감을 느꼈다고 했다. 안세영은 결국 "이 순간을 끝으로 대표팀이랑은 조금 계속 가기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라며 대표팀과의 결별을 예고했다.
당초 배드민턴 대표팀은 출국 전 파리 코리아 하우스에서 메달리스트 기자 회견을 진행하려 했다. 하지만 안세영이 금메달 수상 후 협회를 비판하고, 기자회견 불참을 선언하면서 기자회견 분위기도 상당히 달라졌다.
안세영의 불참과 별개로 '황금 세대'라는 평가에 비해 아쉬운 기자 회견이었다.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2개, 은메달 2개, 동메달 3개를 수상하며 기대를 모았다. 은, 동메달을 수상한 종목조차 대등한 경기력을 보여주면서 향후 올림픽에서 호성적을 기대케 했다. 하지만 혼합복식 세계랭킹 2위 서승재-채유정 조는 서승재가 남자복식을 병행하는 일정 속에 결국 준결승과 동메달 결정전에서 모두 패했다.
안세영과 협회가 인터뷰를 자제하는 가운데 공식석상에 처음 등장한 김원호와 정나은은 부담감이 드리운 얼굴로 회견장에 나타났다.
안세영에 대한 대표팀 분위기에 묻자 김원호는 "아무래도 파트가 나눠져 있기 때문에 저희는 그런 분위기는 느끼지 못했다"며 "아무래도 기사들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분위기가 좋다고는 말씀 드리기 어렵다"고 말을 아꼈다. 정나은 역시 잠시 머뭇거렸지만 "세영이와 관련된 질문은 받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다.
안세영이 지적한 선수 관리 문제에 대해 묻자 정나은은 "우리가 선수촌에서 훈련했을 때는 올림픽 나가기 전 실력보다는 몸이, 컨디션이 더 중요하다고 다들 생각했다. 몸이 안 좋을 때는 휴식을 취한다거나 처치를 하며 준비했다"고 돌아보며 컨디션 관리에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안세영은 이번 대회 성적 역시 협회의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랭킹 1위 안세영이 금메달을 따긴 했으나 대표팀 전반적으로는 다소 부진한 마무리다. 남자 복식과 혼성 복식에 모두 나섰던 서승재는 힘겨운 일정을 소화하다가 메달을 따지 못하고 돌아오기도 했다. 안세영은 "우리 배드민턴이 많은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은데 금메달이 1개밖에 안 나왔다는 것은 돌아봐야 할 시점이지 않나 싶다"고 지적했다.
김원호는 "사실 대표팀에서 우리 조가 메달권에 가장 못 미치는 기량이라고 생각했다"며 "대표팀 누나, 형들 누구보다 열심히 훈련한 걸 옆에서 지켜봤기에 더 아쉬운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실력으로 보면 다들 금메달을 딸 수 있는 실력인데, 올림픽 무대에서 이변이라는 게 많이 생긴다는 걸 또 한 번 느끼게 됐다"고 했다. 또 "형, 누나들이 누구보다 열심히 했는데 결과가 이래 아쉽다. 그래도 다음엔 더 좋은 결과가 나올 거라 믿고 있다"고 응원했다.
정나은은 "이번 배드민턴 올림픽은 끝이 났지만, 함께 훈련한 대한민국 여자복식, 남자복식, 모든 종목 선수들과 옆에서 함께 훈련했다. 그들이 어떻게 훈련해왔고, 얼마나 간절히 임했는지 우리는 옆에서 잘 지켜봤다. 그래서 그런지 내겐 더 슬프고 아쉬운 결과"라고 답했다. 또 "이번 올림픽이 끝이 아니고 다음 올림픽도 있으니 저희 대한민국 대표팀 많이 응원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김원호는 "저희가 이 자리까지 온 건 저희 혼자 힘으로 온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력해주신 분들이 있기 때문에 이 자리에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며 "올림픽 전에 대비한 훈련도 지원해주셨다고 들었다. 제가 알지 못하는 많은 부분들이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나은도 "저희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힘을 많이 써주신 것 같다. 저희는 훈련에만 많이 집중했다"고 전했다.
김원호-정나은 조의 은메달 수상은 '이변'에 가까웠지만, 선수들 스스로에겐 투지를 다지고 성장을 꿈꾸게 하는 동기로 작용한 모양이다.
정나은은 "결승전에 올라가게 됐을 때는 정말 금메달을 따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며 "못 딴 거에 대해 많이 아쉽다. 중국 선수들이 정말 스마트하고 체계적으로 훈련했다고 들었다. 우리도 다음 올림픽에서 만나게 된다면 중국 선수들처럼 체계적으로 한 번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다짐했다.
그는 "자세히 어떤 훈련을 했는지 들은 건 아니다. 중국 선수들이 결승전 끝나고 그렇게 말씀해주셨다. 그렇게 저희 나름대로 한 번 해보고 싶다고 말씀드리고 싶다"고 밝혔다.
김원호는 이에 대해 "영상으로 중국 선수들 훈련하는 걸 봤다. 모래 사장에서 한다든지. 선수마다 필요한 특성이 다른데 그 선수에게 필요한 훈련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상대의 '체계'를 배우고 싶다고 한 김원호와 정나은은 한국 배드민턴의 힘으로 "정신력"을 꼽았다. 김원호는 "우리 선수들이 다른 누구보다도 끈기나 인내에서 위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준결승전에서 투혼을 발휘한 끝에 기적을 써낸 주인공다운 말이었다.
파리(프랑스)=차승윤 기자 chasy99@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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