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전 김문수의 일침,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가
[이동철 기자]
▲ 김문수 신임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가 7월 3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인사브리핑에 참석해 소감을 말하고 있다. 2024.7.31 |
ⓒ 연합뉴스 |
윤석열 대통령이 7월 31일 김문수 전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위원장을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로 지명했다. 김 후보자는 1970년대 서울대 재학 시절부터 구로공단에 취업하여 노동운동에 투신했다. 그는 서울대 출신이라는 보장된 미래를 버리고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고통받는 노동자들의 편에 섰다. 1980년대에는 '도루코'라는 면도칼 브랜드로 잘 잘려진 한일공업의 노조 위원장으로 활동을 하던 중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노조가 해산되고 회사로부터 해고당하기도 했다.
1980년대 후반 민주화 운동의 물결과 함께 그는 심상정 전 정의당 대표 등과 서울지역에서 민주노동자 운동을 조직해 '구로동맹파업'을 펼쳤다. '구로동맹파업'은 당시 노동자들이 밀집한 구로공단에서 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로 현실을 알리고 군부 독재 정권의 노조탄압에 맞서기 위해 여러 기업의 노조가 연대했던 최초의 대규모 투쟁이다.
정권의 탄압으로 노조는 강제 해산하고 심상정 등 주동자들은 구속됐다. 2001년 정부는 구로동맹파업을 군사독재에 맞선 민주화 운동으로 인정했다. 노조탄압이 극심한 시절 고문과 구속을 각오하고 노동자들의 권리 신장을 위해 가시밭길을 걸었던 그의 이력은 노동계에서도 전설로 회고되었다.
이러한 김 후보자의 상징성은 윤석열 대통령이 김 후보자를 노동부 장관으로 선택한 가장 중요한 이유다. 윤석열 정권은 출범 시점부터 유독 노동계의 정치적 지지 기반이 취약했다. 대선 후보 시절부터 자유 시장경제를 내세워 기업할 자유를 강조하던 윤 대통령은 노동법이 정하고 있는 근로시간 한도 제한이나 최저임금 제도를 기업에 대한 불합리한 규제라고 인식하는 기업의 입장에 공감해 왔다.
이러한 윤 대통령의 인식은 장시간 근로 철폐와 최저임금 현실화를 주장하는 노동계와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상황을 타개하고자 윤석열 대통령은 한국노총 출신 이정식 장관을 자신의 첫 노동부 장관에 임명했다. 그러나 이 장관은 민주노총은커녕 친정인 한국노총 설득에도 실패했다.
이에 윤석열 정부는 양대 노총 소속 일부 노조의 회계부정을 앞세워 '노조부패'로 규정하고 이를 개혁하겠다며 노조개혁에 나섰다. 이와 함께 일부 공기업과 대기업에서 MZ세대가 중심이 되어 양대 노총 가입을 거부한 '새로고침 노조' 등을 활용해 윤석열 정부의 노동정책을 뒷받침할 개혁동력으로 삼고자 했다.
그러나 지난해 노동개혁의 일환으로 발표된 주 69시간까지 가능한 근로시간 개편정책으로 노동계는 물론 국민들의 반발에 직면했다. 윤 정부의 근로시간 개편 정책은 다수의 직장인들에게 '현대판 노예제'라며 조롱받았다. 심지어 양대 노총에 비판적인 '새로고침 노조'마저도 윤 정부의 근로시간 개편에 부정적 태도를 취하며 정권의 노동정책이 설 자리는 더 좁아졌다.
이처럼 윤석열 정부가 제3노총 세력을 포섭하여 정부에 정책에 비판적인 양대 노총을 고립시키고자 하는 전략은 과거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이미 실패로 판명됐다. 정부가 개입해 노조의 자주성을 뒤흔드는 행위로 그 정당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윤석열 대통령의 김 후보자의 지명은 이러한 상황에서 김 후보자의 상징성을 활용해 노동개혁의 지지기반을 만들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노동개혁이란 이름으로 노동계를 적대시하고 다수 노동자가 반대하는 친기업적 노동정책기조를 바꾸지 않고서는 윤석열 정부의 노동정책의 근본적 신뢰는 회복되기 어렵다.
김 후보자는 2022년 9월 사회적 대화 및 대통령에 대한 노동정책 자문기구인 경사노위 위원장에 취임한 이래 한국노총에는 유화적 태도를, 민주노총에는 법치주의를 강조하며 비판적 태도를 고수해 왔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갈라치기 노리나?
재임 기간 중 활동에서도 이런 경향은 잘 드러난다. 정부의 노동정책에 반대하는 양대 노총에 대해 김 후보자는 철저하게 차별적으로 대응했다. 경사노위 위원장 시절 간담회 등을 통해 한국노총을 접촉한 횟수는 수십 차례에 이른다. 경사노위 위원장 시절 김 후보자는 방송 인터뷰나 한국노총 지역 조직 행사에 참여하여 인사말을 통해 한국노총에 대해서는 "대한민국 건국의 주역이자 산업화와 경제 기적의 주역"이라며 치켜세웠다. 현 정부에 비판적인 한국노총 산하조직을 달래 경사노위 복귀 여론을 형성하기 위해서였다.
김 후보자의 이러한 노력은 경사노위 정상화를 위한 나름대로의 노력으로 인정할 수 있다. 이에 더해 김 후보자가 경사노위 위원장 시절 청년노동자와 대리기사와 여성 프리랜서 등 노동법의 사각지대에서 보호받지 못 하는 새로운 형태의 노동약자의 목소리에 관심을 갖고 그들의 목소리를 경청했던 노력도 평가받을 만하다.
그러나 1987년 민주화 이후 노조가 300만이 넘는 조합원의 표를 무기로 기득권을 누리며 정부를 좌지우지 한다며 유독 민주노총 소속 노조에 대해서는 차가운 시선을 보였다. 2022년 민주노총 소속 화물연대 운송 노동자들이 안전운임제 확대를 요구하며 벌인 파업을 '불법파업'으로 규정하며 비판한 것이 대표적이다.
김 후보자는 2022년 화물연대 파업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강경대응을 법치주의 확립이라 치켜세웠다. 그러나 당시 한국갤럽의 화물연대 파업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강경 대응에 대한 여론 조사를 통해 나타난 국민 여론은 과반수가 정부의 대응에 비판적이었다.
김 후보자의 한국노총에 대한 평가는 감사할 일이나 노동계에 대한 교묘한 갈라치기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한국의 노조가 전투적이 된 배경에는 노조를 적대시하며 경제위기의 책임을 온전히 노동자에게만 돌리는 기업의 탐욕과 노사갈등에서 기업에 더 편향적인 정부의 태도에도 그 책임이 크다.
지난해 5월 정부와의 사회적 대화를 고민하던 한국노총은 전남 광양의 포스코 하청 노동자들의 투쟁 과정에서 소속 노조 간부에 대한 경찰의 유혈진압에 항의하며 경사노위 참여를 불가피하게 중단했다. 당시 정부는 경찰을 동원해 포스코 하청 회사 노동자들을 대표해 고공농성을 진행하던 한국노총 금속노련의 간부를 피투성이로 만들었다.
김 후보자가 합리적이고 타협적이라고 칭찬하던 한국노총은 왜 비타협적으로 고공농성을 벌였을까. 한국노총 역시 다단계 하청 노동자들의 근로조건 개선이 불가능한 현행 법제도의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다. 하청 노조가 보기에는 사실상 도급비로 하청노동자의 근로조건을 결정하는 대기업 원청이 교섭에 나와야 근로조건 개선이 가능하다. 그러나 노조법상 자신들은 사용자가 아니라고 손 놓고 나몰라라 하기에 노조로서는 법제도의 한계를 국민들에게 알리고 원청을 압박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극한 투쟁을 전개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외환위기 이후 기업의 위기를 극복하겠다면서 정부가 우리 노동시장에 비정규직과 정리해고를 전면적으로 허용한 이래 이처럼 격렬한 노사대립은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가릴 것 없었다. 노조의 투쟁에 불법딱지를 붙이기 이전에 그 갈등의 발생 배경을 살펴보고 구조적 원인을 찾아 제도적 해결책을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 노란봉투법 개정 재추진 촉구!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지난 3월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노조법 제2, 3조 개정’ 재추진 촉구 기자회견'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폐기된 일명 노란봉투법인 노조법 제2?3조 개정안을 총선시 주요 정당의 핵심공약에 반영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
ⓒ 이정민 |
그런데 김 후보자는 2022년 자신이 운영하는 유튜브에 민주노총 하이트 진로 하청 운송 노동자들의 파업을 두고 "노조의 불법파업에는 손해배상 폭탄이 특효약"이라며 노동자 수십 명을 죽음으로 내몰고 가정을 파탄 낸 기업의 파업노동자에 대한 손배가압류를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뿐만 아니라 지난해 3월에는 경사노위 위원장 신분으로 광주의 한 자동차 공장을 방문한 후 개인 SNS에 회사의 무노조 경영과 낮은 임금을 감수한 노동자들을 칭찬하며 "감동적이었다"고 표현했다. 헌법과 법률이 보장한 노조의 근로조건 개선 활동은 기업의 경영활동에 마치 장애물 되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헌법과 법률이 보장하는 노동3권을 폭넓게 실현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할 노동부 장관으로 자질이 의심되는 대목이다. 김 후보자가 격찬한 해당 기업에서는 노동자들이 결국 스스로 노조를 결성했다. 노동자의 근로조건 개선을 기업의 선의에 맡겨 둘 수 없다는 점을 증명하는 사례다.
1999년 4월 당시 가장 큰 사회 이슈는 서울지하철 노조의 파업이었다. 국민의힘의 전신인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 서울지하철 노동조합의 파업을 두고 당의 노동정책을 둘러싸고 의견이 대립했다. 친 기업 보수정당인 한나라당의 전반적 분위기는 민주노총 소속 서울지하철 노조의 파업에 비판적이었다.
당시 의원총회 상황을 보도한 연합뉴스 기사에 따르면 노동운동가 출신 김문수 의원은 "구조조정은 노동자 입장에서는 목이 날아가는 문제"라며 "파업을 하면 직권면직에다 손해배상 청구까지 받는데 누가 즐겨서 파업을 하겠나"라며 구조조정에 맞서 파업을 하는 민주노총 소속 지하철 노조의 입장을 옹호했다.
25년이 지난 지금 김문수 노동부 장관 후보자에게 묻고 싶다. 노동자들의 자신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투쟁이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가?
덧붙이는 글 | 이동철 기자는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천노동교육상담소에서 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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