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들 집단 우울감 빠졌다" 입법독주 거야, 협상론 나온 이유
입법 독주를 이어오던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 최근 협상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협상론이 나온 배경엔 민주당내 팽배한 무력감이 자리잡고 있다. 22대 국회 개원 후 지난 한 달여 간 7개 법안(순직해병특검법ㆍ방송4법ㆍ25만원지원법ㆍ노랑봉투법)을 민주당 주도로 본회의에서 처리했으나, 이들 법안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했거나 행사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어서다. 한 초선 의원은 “때가 되면 의총장과 본회의장에 가서 앉아있다가 표결하지만 어차피 용산에서 거부권을 행사할 게 뻔하지 않나. 무기력하다”고 말했다. 다른 재선 의원도 “의원들이 집단 우울감에 빠져 있다”고 말했다.
당 지도부가 연일 당론 채택을 통해 중점 추진 법안을 제시하고 있으나 당내 관심도도 다소 떨어지는 분위기다. 민주당 관계자는 “실제 법안이 실현되는지가 중요한데 ‘우리 당이 이런 법안을 통과시켰다’는 걸 지지자들에게 보여주는 데 그친다”고 토로했다. 170석 거대 의석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확보해 법안 처리 속도전을 강조하고 있지만 줄줄이 거부권에 가로막혀 “전투에서 이기고 전쟁에서 지는 ‘피로스의 승리’의 함정에 빠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때문에 당내 중진을 중심으로 “여야 협의를 회복할 때”라는 주문이 나온다. 지난달 30일 열린 의원총회에선 원내대표를 지낸 박홍근 의원이 “강력한 대응을 그동안 잘 해왔지만 지혜롭게 접근해서 실질적 성과를 내는 것도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다른 중진 의원도 통화에서 “특히 채상병 특검법의 경우 다소 양보하더라도 실제 특검을 실현시키는 게 중요한데, 그걸 관철시킬 원내 전략이 그동안 부재했다”고 지적했다.
5일 의총에서도 “여야가 최대한 합의해서 처리할 수 있는 건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고 한다. 한 지도부 관계자는 “법안 처리와 거부권 행사 도돌이표를 보고 ‘민주당의 방식도 문제가 있다’는 여론이 있다. 의원들이 최근 합의처리 필요성을 많이 주문한다”고 전했다. 5일 의총에서도 당론으로 재추진하기로 한 양곡관리법에 대해 “최대한 협의해달라”는 주문이 나오자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간사 이원택 의원이 “(여당과) 타협점을 찾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지난달 23일 출범한 국민의힘 ‘한동훈호’에 발 맞춰 “이재명 2기 지도부도 전략 수정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한 지도부 관계자는 “한동훈 대표가 전당대회 과정에서 제3자 추천 방식의 채상병 특검법을 얘기한 걸 보면 윤 대통령과 거리를 어떻게 가져갈지 이미 판단이 선 것 같은데, 그럼 우리도 그를 압박해서 특검법을 실제로 합의할 수 있는 방법을 구사해야한다는 의견이 있다”고 말했다. 한 중진 의원은 “우리가 선제적으로 여당의 균열을 노리는 타협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기류를 반영하듯 여야 원내지도부는 최근 앞다퉈 “민생법안부터 8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6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정쟁 법안은 당분간 미뤄두고 여야 간 이견이 없거나 크지 않은 민생법안을 8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자”고 제안했다.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도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시급한 민생입법의 물꼬를 트기 위한 정책위의장 간 논의 테이블을 구성하고 여야 협의를 시작하자”고 말했다.
국민의힘 김상훈 정책위의장과 진 의장은 7일 오전 상견례를 갖고 민생법안 처리에 대한 논의를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치권에선 간호법 제정안과 전세사기특별법, 고준위방사성폐기물관리특별법 등이 의견 접근이 가능한 법안으로 꼽힌다. 국토위 민주당 관계자는 “전세사기특별법은 여야 이견이 많이 좁혀졌다. 21일 열리는 국토위 전체회의에서 합의 처리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다만 민주당 친명계 등 일부 강경파는 “타협하면 안 된다”는 주장을 내고 있다. 국회 법사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이번주 중 순직해병특검법을 재발의할 방침인데, 해당 법안은 쟁점인 특검 추천 방식을 변경하는 대신 수사범위를 이른바 ‘구명로비 의혹’ 등으로 확대하는 내용이라고 한다. 민주당 원내지도부 관계자는 “답답하다고 하는 의원이 있지만 여기서 물러설 거면 지도부 존재 의미도 없다. 순직해병특검법은 결국 국민의힘이 여론의 압박을 받고 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성지원 기자 sung.ji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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