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연 얼굴에 집중한 '리볼버'가 아쉽다

안치용 2024. 8. 6.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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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리볼버>

[안치용 기자]

* 영화의 전개와 결말을 알 수 있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문학이든 영화든 마지막 장면이 어렵다. 관객의 뇌리에 남은 마지막 장면이 적잖을 텐데, 그중엔 배우의 얼굴이 포함된 영화들이 있다. 주인공 야쿠쇼 코지(役所広司)가 운전하는 얼굴을 클로즈업한 <퍼펙트 데이즈>의 엔딩 장면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듯하다. <퍼펙트 데이즈>처럼 대사 없이 클로즈업한 얼굴로 영화를 끝내는 건 감독이나 배우에게 모두 큰 도전이다.

얼굴의 영화

오승욱 감독은 <리볼버>를 '얼굴의 영화'라고 규정했다. 얼굴의 미세한 선과 움직임을 놓치지 않으려고 카메라의 앵글과 빛에 신경을 썼기 때문이다. 예컨대 영화에서 하수영(전도연)의 정면 클로즈업은 중요 대목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나온다. 감정이 비집고 새어 나오는 장면은, 되도록 측면 클로즈업으로 배치해 마치 관객이 발견한 것과 같은 느낌을 주려고 했다는 게 제작진의 설명이다.
 영화 <리볼버> 스틸컷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오 감독이 "마지막의 하수영 얼굴을 위해 달려온 영화"라고 말한 만큼 <퍼펙트 데이즈>의 엔딩만큼이나 마지막의 전도연 얼굴은 중요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리볼버>의 핵심은 얼굴이 아니었다. 주인공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바닷가에서 구운 꽁치를 안주로 소주를 크게 들이켜는 동작과 분위기가 핵심이었다. 대사는 없지만 즉석구이 꽁치를 파는 가난한 어촌 아낙과 주인공 사이에 상호작용이 드러난 장면이다.

영화 <리볼버>는 익숙한 줄거리로 구성됐다.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감옥에 간 형사 하수영(전도연)이 출소 후 약속과 달리 보상을 받지 못하자, 보상을 약속한 범죄자들을 찾아가 힘으로 되찾는다는 내용이다. 그동안 이런 역할은 대체로 남성이 많이 했지만, <리볼버>는 여성이라는 게 다른 점일까. 게다가 전도연이 주연을 맡아 그런지 한을 품은 주인공의 복수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영화 내 등장인물은 하수영 대 하수영의 적대 진영으로 나뉜다. 보상을 약속한 앤디(지창욱)를 찾아가 약속한 보상을 받아내는 과정에 하수영을 돕는 사람과 앤디를 지키는 사람이 얽혀서 영화적 흐름을 만들어낸다. 이 대립에서 유일하게 애매한 입장을 견지하며 모호하게 처신한 인물은 윤선(임지연)이다. 이쪽도 아니고 저쪽도 아니면서 모두에게 협조하고 모두를 배신한다. 종국엔 사면초가인 같은 여자 하수영을 조력하기로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영화에 활력을 불어넣은 캐릭터

화류계에서 일하는 윤선은 영화의 시작과 끝을 하수영과 함께한다. 산전수전 다 겪었고 손해 보지 않고 자기 이익을 챙기는 데에 일가견이 있으며 톡톡 튀는 성격이다. 복잡하지 않은 캐릭터로 설정됐지만, 하수영을 돕는 이유와 과정의 심리를 미묘하고 복잡하게 표현했다.
  '리볼버'의 임지연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하수영과 윤선은 이 영화에서 사건의 발제자 역할을 하고 초반에 사망한 경찰(이정재)을 사랑한 여자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같은 남자를 사랑한 여자로서 느끼는 동질감에다, 극 중에서 윤선이 말하듯 남자에게는 강하지만 불쌍한 여자에겐 약한 윤선의 성정이 그를 하수영의 조력자가 되게 했을까. "딱 요만큼만 언니(하수영) 편이에요"'라는 말은 윤선의 양면적인 감정을 잘 드러낸다. 윤선이란 캐릭터가 없었다면 영화 <리볼버>의 재미는 반감했을 것이다. 매력과 현실감을 모두 잡아낸 연기였다.

하수영이 죄를 혼자 뒤집어쓰고 교도소에서 2년을 지낸 대가는 현금 7억 원과 아파트 한 채가 전부다. 수감 전에 자신이 입주하기로 이미 예정한 아파트여서 아파트가 통째로 '대가'에 포함되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범죄영화에서 취급하는 금액치고는 소박하다. 극중 본부장(김종수) 말대로 7억 원은 크지도 적지도 않은 돈이다. 일반인에겐 당연히 큰돈이고, <리볼버>가 다룬 범죄 세계에선 본부장 말처럼 양가적인 것이며, 보통의 영화적 설정에선 적은 돈이다. 다른 범죄영화에 등장한 숫자와 비교하면 너무 미약해 보인다.

하수영이 일확천금을 노리지 않고 주기로 약속한 '적은' 돈을 받아낼 뿐이란 절제된 설정이 나쁘지 않았다. 마지막 장면에서 하수영에게서 돈다발 하나를 받은 어촌 아낙이 거기서 5만 원짜리 한 장만 가져가고 돈다발을 그대로 내버려두는 장면과 맞닿는다.

이러한 개연성의 설정은 폭력을 과장하지 않는 전개와 연결된다. 여기에 전도연의 경륜이 느껴지는 차분하지만 웅숭깊은 연기가 어우러져 이 영화의 차별점을 만들어낸다. 다만 몇몇 개연성 설정에서 개연성이 부족해 보이는 게 아쉬웠다.

대미로 치닫는 산길 장면에서 등장인물이 총집결하는 것이 불가피했을 터이고 따라서 사태 해결을 위해서 앤디가 꼭 모습을 보여야 했을 텐데, 영화 내에서 다소 설득력이 떨어진다. 경찰관을 살해하고 자살로 꾸밀 역량과 배포가 있는 범죄 조직의 일 처리 방식에도 의문점이 남는다. 앤디의 개인적인 보복인지, 앤디가 소속된 범죄 조직의 대응인지도 불명확하다.
  '리볼버'의 지창욱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또 하수영과 폭력배들 사이의 산중 결투 장면은 다소 늘어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밖에 개연성을 확보하기 위해 도입한 장치와 설정이 정교하지 못하거나 다소 불필요한 구석이 있어서 부주의하지 않았나 싶다.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청되어 나름의 연출력을 인정받은 영화 <무뢰한>이 <리볼버>의 계기가 됐다고 알려졌다. <무뢰한>에 출연한 전도연이 오 감독의 작품이라면 또 출연하겠다고 한 말이 <리볼버>로 이어졌다는 후문이다.

안치용 영화평론가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르몽드디플로마티크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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