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후반의 진로 고민, 도와주세요. [이정민의 ‘내 마음의 건강검진’⑯]

데스크 2024. 8. 6.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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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어린 시절 ‘진로 고민’이란 취업하는 순간 다 끝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직업을 가진 이 순간에도 진로에 대한 고민은 끝나지 않는다. 심지어 은퇴하신 부모님도 진로 고민하신다. 안 그래도 고민할 게 많은 복잡한 세상에, 언제까지 진로 고민을 해야하는 걸까.

그런데 사실 이는 아주 자연스러운 수순이라고 볼 수 있다. 진로란, ‘앞으로 나아갈 길’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미래의 직업에 대한 고민 뿐만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무엇을 중요시하며,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면 좋을지에 대한 고민은 우리 자신을 위해 필요한 건강한 고민일 것이다.

그리고 심리검사는, 진로 고민을 하는 데 약간의 길잡이가 되어주기도 한다. 사례를 통해 알아보자.

www.canva.com

(아래는 가상의 사례입니다)

20대 후반인데 아직도 진로 고민을 하고 있어요. 답을 주세요.

20대 후반인 A씨 적당한 성적을 유지하며 학창 시절을 보냈고, 성적에 맞춰 대학에 갔다. 전공이 나에게 맞는지 안 맞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달리다 보니 졸업은 코앞으로 다가왔고, 오랜 기간의 도전 끝에 겨우 회사에 취업을 했다. 어찌 보면 큰 굴곡 없는 삶을 살아온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막상 회사에 취업해보니 너무 힘들다. 인문대 전공이다 보니 전공을 살려 취업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은 했지만, 안 맞아도 너무 안 맞는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다른 회사로 이직하거나 부서를 옮기자니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 또 친구들끼리 모이면 ‘다 같이 사업하자’, ‘장사하자’고 농담 삼아 말하기는 하지만 진지하게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뭘 해야할지 막막하다. 대학원을 가볼까도 생각해 봤지만 전공에 큰 뜻이 있지 않았고, 다른 전공을 하자니 뭘 해야할지 모르겠다. 어떻게 해야 할까.

A의 기질이나 성격, 전반적인 역량 등을 파악하고자 종합심리검사를 실시했다. 심리 검사 결과를 간단하게 정리해보자면 아래와 같다.

검사결과: 매우 안전지향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릴 수 있음. 책임감은 높지만 개인적인 의욕을 발휘하는 힘은 약해.

검사 결과, A는 지능이 ‘평균’ 수준으로 평가되어 문제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언어적 유창성을 발휘하는 ‘언어이해’ 영역은 ‘우수’ 수준으로 양호한 것으로 평가된다. 다만 기존의 정보를 분석하고 응용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지각추론’ 영역은 ‘평균’ 수준의 하단으로 펴악되어 상대적으로 저조하다. 종합했을 때, 깊은 고민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언어적 자원은 풍부하지만, 융통성을 발휘하여 문제를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것은 다소 어려운 것이다.

그리고 기질 및 성격검사(TCI) 상 피검자는 ‘위험회피’ 기질이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말 그대로 문제가 될 수 있는 위험 요인을 미리 피하려는 욕구가 큰 성향이다. 다른 말로는 안전지향적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이러한 성향의 사람들은 대체로 낯선 것을 싫어한다. 때문에 한 번 업무가 익숙해지면 유능하게 해낼 수 있지만, 낯선 업무를 처리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클 수 있고, 더욱 자신에게 안 맞는다고 여겨질 수 있다. 그리고 업무 자체가 익숙해지는 데 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고려된다.

또한 A는 성향 상 ‘실패를 감수하더라도 나만의 성취를 이루고 싶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조금 덜 성공하더라도 최대한 실패하지 않는 것이 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엿보인다. 때문에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망치지 않게끔 책임을 다할 수는 있겠으나, 자신만의 의욕을 발휘해 새로운 도전을 도모하는 일에는 망설임이 따를 수 있다.

검사자 제안: 안전지향적인 나를 이해하고, 내가 적응할 때까지 충분히 기다려주기. 기다려주는 기간 동안은 나에게 ‘업무 외의 소소한 성취’를 제공해주기.

추측컨대, A는 겉으로 보기에 큰 문제 없이 회사생활을 하고 있을 것이다. 단지 스스로가 ‘새로운 업무’에 적응하는데 너무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뿐이다. 선생님이나 교수님이 내주는 과제를 성실히 이행하기만 하면 문제 없었던 학창시절과 달리, 유연하고 빠른 대처를 요구하는 회사 생활은 안전지향적인 A에게 스트레스가 되었을 수 있다.

다만 A는 지능이 크게 문제 되지 않고, 전반적인 대처 역량도 잘 유지되는 것으로 시사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무리 없이 적응할 수 있을 것이다. 자녀의 첫 걸음마를 기다리는 부모의 마음으로 스스로를 우선 기다려주는 것이 필요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는 A 자신에게 소소한 성취감을 제공해주면 좋다. 취미활동을 통해 무언가를 완성하는 경험, 달리기를 완주하는 경험, 집안 일을 모두 마치는 경험 등 스스로에게 소소한 성취감을 제공하는 것이 필요할 수 있다.

아울러, 전반적인 성향을 종합했을 때 A는 환경의 변화가 있을 때마다 큰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 다만 이때 너무 전전긍긍하고 무언가를 이뤄내야 한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시간을 두고 스스로가 적응할 때까지 기다려주고 감정을 돌봐주는 과정이 도움 될 수 있다. ‘안전함을 유지하고 싶어하는 나’를 알아주면서 때로는 한 걸음씩 나아가고, 때로는 머무르며 스스로를 기다려주는 것이 앞으로도 필요한 것이다.

이정민 임상심리사 ljmin092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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