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년만의 포효, 그건 분노였다…안세영의 폭탄선언 전말
“(올림픽 제패라는) 목표를 정하고 그 꿈을 이루기까지의 원동력은 분노였습니다. (올림픽 금메달을 통해) 목소리를 높이고 싶었습니다.”
28년 만에 한국 배드민턴에 올림픽 여자 단식 금메달을 안긴 ‘셔틀콕 여제’ 안세영(22·삼성생명)의 첫 감정은 기쁨과 후련함이 아닌 아쉬움과 분노였다. 지난 5일 열린 결승전에서 허빙자오(중국)를 꺾고 우승한 직후 그는 “제 부상을 너무 안일하게 생각한 대표팀에 실망했다. 이 순간을 끝으로 대표팀과 계속 가긴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금메달리스트의 예상치 못한 언급과 함께 잔칫날이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안세영은 이후에도 공식 기자회견과 여러 인터뷰를 통해 작심 발언을 이어갔다. 대표팀 운영 시스템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진 시점을 묻는 질문에 “2018년에 처음 태극마크를 달았던 그 순간부터”라 답한 그는 “단식과 복식에 따라 코칭스태프 구성과 훈련 방식이 달라야 한다. 체력 운동 프로그램도 보다 효율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현재의 낡은 시스템 아래에선 오히려 부상 위험이 크다. 협회의 일방적인 의사 결정 방식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가대표 은퇴를 시사한 자신의 발언이 화제가 되자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구체적인 설명도 내놓았다. 그는 “배드민턴협회나 (김학균) 감독님이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에 또 한 번 상처를 받는다”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은퇴가 아니라 선수 보호 및 관리에 대한 것”이라고 언급했다.
안세영이 언급한 ‘선수 보호’의 핵심은 결국 낡은 시스템의 개선 필요성이다. 그는 “타이쯔잉(대만)은 국제대회에 전담 트레이너 2명과 코치 1명을 대동한다. 천위페이(중국)도 이번 대회에 트레이너 2명을 데려왔다”면서 “이제껏 우리 대표팀 운영은 국제대회 성적이 상대적으로 좋은 복식 위주였다. 경기력 관리를 위해 개인 트레이너를 쓰고 싶다는 의견을 여러 차례 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배드민턴협회 관계자는 “(안세영이 느끼는 불만에 대해) 어느 정도는 인지를 하고 있었다”면서도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문제제기가 이뤄져 당황스럽다. 현장에 있는 대표팀 관계자들과 소통하며 상황을 정확히 파악한 뒤 합리적인 해결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세영의 폭탄 발언은 올림픽을 ‘결과 중심’ 대신 ‘과정 중심’으로 접근하는 신세대 운동선수들의 사고방식과 맥이 닿아 있다는 분석이다. 오직 메달 색깔에 연연했던 과거 선배들과 달리 2000년대 이후 태어난 ‘영 코리안’들은 올림픽이라는 무대에 도전하는 과정 자체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한다. 과정이 합리적이라고 여기면 결과에 대해서도 빠르게 인정하고 주어진 상황을 즐긴다. 안세영의 경우 금메달을 목에 걸고도 과정이 공정하지 않다고 느껴 아쉬움을 드러낸 케이스로 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안세영은 “배드민턴도 양궁처럼 체계적이었으면 좋겠다. 어느 선수가 나가도 올림픽에서 메달을 딸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면서 “협회와 체육계 관계자들 모두 회피하고 미루기보단 책임져 달라“고 주문했다.
배드민턴 관계자는 “안세영이 대표팀을 나와 개인 자격으로 국제대회에 출전하는 방안까지 고려 중인 것으로 안다. 이를 위해 법적 조치도 불사한다는 생각”이라면서 “협회가 어떻게 대응할 지에 따라 향후 다양한 경우의 수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배드민턴의 경우 세계 랭킹이 높은 선수들은 자동 출전권이 주어져 국가대표로 선발 되지 않더라도 각종 국제대회에 나설 수 있다. 실제로 과거 이용대 등 여러 선수들이 대표팀 은퇴 이후 개인 자격으로 국제대회에 출전한 사례가 있다. 다만, 대한배드민턴협회가 개인 자격 출전에 ‘만 27세 이상’으로 나이 제한 규정을 적용 중인 상황이라 안세영이 대표팀을 벗어날 경우 현재로선 국제대회 출전이 불가능하다. 안세영이 법적 조치를 고려하는 건 개인 자격 출전과 관련해 나이 제한 규정을 없애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송지훈 기자 song.ji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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