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돌아온다는 로다주, 내 덕질도 끝나지 않았다
[유정렬 기자]
▲ 데드풀과 울버린 |
ⓒ 월트디즈니 마블코리아 |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 '데드풀 3편: 데드풀과 울버린(이하 데드풀 3)'은 개봉 전부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예전 마블 히어로물의 인기에 비하면 별것 아니지만, 충성스러운 팬들조차 등을 돌리는 오욕의 세월을 보내온 터라 이 정도면 꽤 나쁘지 않은 신호였다.
'어벤져스: 엔드게임' 이후 줄곧 내리막길을 걸어왔던 디즈니 마블이기에 이번 영화는 그만큼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런데 막상 개봉 이후의 반응은 영 신통치가 않다. 이미 지난 주말부터 스크린 수가 현저히 떨어졌다. 더구나 조정석 배우를 전면에 내세운 한국 영화 '파일럿'이 개봉해 선전 중이라 앞으로의 흥행은 먹구름이다.
개봉하고 두 번의 주말을 보냈지만, 관객 수는 170만 명대에 머물고 있다(8월 6일 기준). 기적과 같은 뒷심이 발휘되지 않는 이상 데드풀 시리즈 1, 2편이 각각 기록한 300만 관객 수를 넘어서는 것조차 쉽지 않아 보인다. 그만큼 이번 영화는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린다.
문제는 이 호불호가 마블 찐팬들과 마블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 사이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기존의 마블 코어팬들 조차 데드풀 3편에 대한 시선이 극과 극으로 갈린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영화는 태생적으로 엑스맨 시리즈에 대한 향수를 등에 업고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엑스맨 시리즈 역시 마블 산하의 캐릭터다. 하지만 오랜 시간 마블 곁을 떠나 20세기 폭스사의 품에 있었다. 울버린 한 명에 대한 서사를 온전히 이해하려면 이전 폭스에 의해 만들어졌던 엑스맨 시리즈들을 전부 보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지금의 마블이 본격적인 인기를 끌었던 게 어벤져스 1편임을 감안할 때, 그보다 훨씬 이전에 개봉했던 심지어 마블이 무엇인지 잘 모르던 시절 영화의 줄거리까지 어느 정도는 알아야 한다.
데드풀 3 예고편에서 데드풀은 스스로를 '마블 지저스'라 칭했다. 그동안 마블 시리즈가 비판받은 부분에 대해 구세주 혹은 하다못해 해결사 노릇이라도 하겠다는 데드풀스러운 드립이었다. 멀티버스와 성의 없는 캐릭터 남발에 지쳐버린 팬들에게는 이 한마디가 속이 시원했으리라. 그동안 마블 영화들의 문제점을 이미 잘 알고 있고 '이번에는 분명 다를 것이다'라는 뜻으로 다가왔을 가능성이 높다.
▲ 영화 장면 갈무리 |
ⓒ 월트디즈니 마블코리아 |
개인적으로 이번 영화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주인공 데드풀도, 기어코 파묘까지 해가며 되살려낸 울버린도 둘 다 구세주라 하기에는 뭔가 애매했다. 여전히 대혼돈의 멀티버스에서 벗어나지 못하니 드립으로 인한 웃음 코드와 스릴 있는 액션이 꽤 준수했지만, 팬들의 마음을 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나마 과거 엑스맨 시리즈를 거의 빠짐없이 보아왔던 소수의 팬에게는 나름 선물 같은 영화이기는 했다. 누군가에게는 수많은 카메오의 등장이 무척 반가웠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옛 향수에 기대어 하는 추억팔이도 이제는 진부하다. 이미 2021년에 개봉했던 '스파이더맨 3편: 노웨이홈'에서 과거 스파이더맨을 총출동시킨 소위 '삼파이더맨' 전략이기 때문이다.
예전 마블 인기 캐릭터에 묻어가려는 얄팍한 전략을 팬들이 모를 리 없다. 영화 '로건'에서 울버린을 멋지고 감동스럽게 퇴장시키고 겨우 이러려고 다시 복귀시켰단 말인가. 이미 퇴장한 캐릭터를 굳이 무덤에서 파내어 등장시키는 건 정말 신중했어야만 했다.
결론적으로 데드풀은 마블을 구원해 내지 못했다. 구원은커녕 이 영화 역시 멀티버스라는 거대한 블랙홀 안에 구속되어 버렸다. 진입장벽을 낮추는 데 실패했을 뿐 아니라, 섣부른 추억팔이로 기존 인기 캐릭터였던 울버린의 명성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와중에 또 다른 파묘 소식이 들려왔으니. 지금의 마블을 있게 한 일등 공신,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알파와 오메가, 바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이하 로다주)의 마블 복귀 소식이었다.
▲ 닥터둠을 연기할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
ⓒ 월트디즈니 마블코리아 |
로다주의 복귀라니 믿을 수가 없다. 지난 7월 28일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2024 코믹콘 행사에서 그는 직접 무대에 등장했다. 그것도 다시 '아이언 마스크'를 쓴 채로 말이다.
원래 그가 연기했던 아이언맨의 마스크는 아니었다. 아이언맨의 상징과도 같은 붉은색 슈트 대신 녹색 가운을 뒤집어쓴 채 금속 마스크를 벗어 던지며 등장한 로다주의 모습에 사람들은 엄청나게 환호했다. 소문만 무성했던 그의 복귀 여부가 이렇게 현실이 되다니 소름이 돋았다.
원작 마블 코믹스에서 타노스 이상으로 인기 있는 빌런인 '닥터둠'의 역할을 가 맡게 된 것이다. 이번 데드풀 3에 만족하지 못해서 정말로 마블 팬을 그만할까 진지하게 고민했는데 어안이 벙벙해졌다.
낯선 코스튬을 입었지만, 두 손을 번쩍 든 로다주의 모습이 너무 반가웠다. 더구나 선역이 아니고 악역으로 복귀한다니 그가 보여주게 될 빌런 닥터둠의 모습이 어떤 매력을 보여줄지 은근히 궁금해지기도 했다. 이쯤 되니 자꾸 희망 고문하듯 포기 못 하도록 한 번 더 기대하게 만드는 마블이 원망스럽기도 하다.
무엇보다 출연 조건이 까다롭기로 유명한 그이기에 그냥 돌아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여러 복귀 조건 중 하나가 바로 '루소 형제' 감독과 함께 하는 것이었다. 로다주의 요청대로 루소 형제는 '어벤져스: 둠스데이'(2026년 개봉 예정)와 '어벤져스: 시크릿 워즈'(2027년 개봉 예정)의 연출을 맡았다.
사실 로다주의 복귀보다 루소 형제 감독이 돌아온다는 사실이 더 놀라웠다. 개인적으로 마블에 입덕하게 한 명작 '캡틴 아메리카: 윈터솔져'부터 인기는 물론 완성도 면에서 정점이었던 '어벤져스: 엔드게임'에 이르기까지. 마블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던 그들이기에 또다시 기대를 안 할 수 없게 된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니 데드풀 3편은 어쩌면 일종의 'CPR'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된다. 숨 넘어가는 마블이 단 한 편의 영화로 옛 부흥기를 다시 맞이하기란 불가능할 테니까. 일단 울버린까지 투입하는 강수를 써서 죽기 일보 직전의 마블 디즈니를 숨은 쉬게 만들어 놓은 듯하다. 진짜 구세주를 맞이하기 위한 본격적인 준비였던 것이 아닐까.
디즈니의 마블은 이로써 생명이 연장되었다. 자연스레 나의 마블 덕질도 조금 더 연장될 듯하다. 다른 팬들도 나와 같은 마음이 들었으리라 생각한다. 기대했다 실망하면서도 다시 기대하고 기다리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팬으로서의 숙명인가 보다.
▲ 어벤저스: 둠스데이가 2026년 개봉 예정이다. |
ⓒ 월트디즈니 마블코리아 |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박정희 장례식날, 모두를 놀래킨 김민기의 노래
- 비용 0원, 볼거리 가득한 '이곳'이 알짜 휴가지입니다
- '가짜 중산층'에 아첨하는 정치가 상속세를 흔든다
- '상품권깡' 부추긴 간편결제 업체들, 티메프 사태 피해 키웠다
- 배드민턴협회에 직격탄 날린 안세영, 이런 배경 있었다
- 손흥민 10대 때 보는 듯...'만능형 플레이어' 양민혁의 역대급 잠재력
- '윤석열 특활비' 둘러싼 의문... 대전지검서 드러난 구체적 '단서'
- [오마이포토2024] 언론노조, 공영방송 부적격 이사 선임 규탄
- [오마이포토2024] KBS·방문진 이사 선임 위법성 확인하기 위해 현장 검증 나선 과방위 야당 의원
- 우원식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 외교협상 전모 공개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