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은 삶을 유지하게 하는 힘이에요"

김찬휘 2024. 8. 6.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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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 운동은 계속되고 있다 - 기본소득 사례 살펴보기 ①

[김찬휘 기자]

 돈
ⓒ unsplash
 
"기본소득은 무급 노동과 다른 형태의 사회적 기여의 가치를 인식하게 해 주며, 전통적인 노동 시장이나 '공식 경제' 참여자가 아니더라도 경제적 시민권을 가지도록 돕는다. 무엇보다 기본소득은 어떤 자본주의 사회보다 훨씬 더 민주적이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 이는 많은 탈성장 지지자들이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이유이다." (<탈성장 개념어 사전>, 자코모 달리사 외)

"기본소득은 '고용된 노동'이라는 허구상품 배후에 있는 다양한 정동노동의 실존에 기반하여, 보다 적극적으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요구한다는 점에서 중요성을 갖는다. 고용된 노동의 이면에서 다양한 비물질적인 노동, 정동노동, 욕망노동, 정상화노동, 돌봄노동 등이 있기 때문이다. 기본소득이 이러한 정동의 가치를 주장한다는 것은 결국 삶과 실존, 자유, 사랑, 욕망의 거대한 지평과의 접속을 의미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삶과 사랑의 변화를 전망해 볼 수 있다." (<우리의 욕망을 공유합니다>, 신승철 외 저)

"확실하고 무조건적인 기초소득은 개별 노동자들에게 퇴장의 자유를 증가시켜줄 뿐만 아니라 조직된 노동의 집합적 권력도 증가시켜 줄 것이며, 따라서 민중적 사회세력의 사회권력 강화라는 더 넓은 의제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리얼유토피아>, 에릭 올린 라이트)

"제가 쓰는 표현이 있는데요, '소유에서 관계로'입니다. 소유에 집착하지 말고 관계를 재정립하는 것이죠. 인간관계도 그렇고 인간과 자연의 관계도 그렇고 동물과의 관계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성장이 아니라 성숙으로.' 소유에 매몰되어 있으니까 계속 성장, 성장, 성장 그러는데 관계는 성장하는 게 아니라 성숙하는 거니까. 그런 면에서 그럴 수 있는 물적 토대를 기본소득이 제공해줄 수 있다고 보는 것이죠." (<기본소득, 2022 겨울>, 홍세화)

2009년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창립 이후 15년이 흘렀다. 2014년 기본소득공동행동(김종철, 홍세화, 강남훈)을 함께 만든 대표 중 두 분이 돌아가셨다. 그동안 기본소득은 다양한 방향에서, 다양한 관점에서 논의되고 실험되었다. 기본소득은 '낙인효과'와 배제를 동반하는 여러 복지수당을 대체할 수 있는 대안으로, 탈성장 및 노동시간 단축과 매개되는 기획으로, 기후위기 배후에 있는 불평등을 완화할 사회적⋅생태적 전환의 수단으로 고려되었다. 최근에는 '우리 모두가 공동으로 누리고 있는 일체의 공적인 부'(commons)에 대한 모든 사회구성원의 권리에 기초한 몫으로 규정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공유지commons가 공동의 것으로 기능하려면 공유지와 관련한 공유자commoner의 집합적 활동, 즉 공유화commoning가 필수적이다. 공유자는 공유지와 관련된 권리를 자각하고 주장하며 이를 유지 보존하기 위한 활동하는 자이다. 국가가 세금을 걷어서 현금을 지급할 것이라는 수동적 기대만으로 세상이 바뀔 수 없다. 나무에서 떨어질 과일처럼 기본소득을 기다리는 것은 시혜를 바라는 것이지 권리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다. 기본소득을 의미 있는 탈성장과 시민의 힘의 강화 과정으로 만들어 가기 위한 진지 구축이 필요하다. 그 진지는 지역으로부터 나온다.

기본소득은 한편에서 축소되고 왜곡되어 왔다. "증세 없이 세출 조정으로 가능한" 기본소득, 기존의 복지를 축소하면서 이루어지는 기본소득, 모든 이슈에 대한 '만병통치약'의 위치에 놓이는 기본소득, 여러 종류의 수당 합치기/재원 합치기로 액수만 늘려 보이려는 기본소득은 우리가 바라는 '생태적⋅사회적 전환'과 거리가 멀다.

"기본소득이 정책 목표가 아니며 수단이라는 것, 그리하여 공공서비스, 적극적 일자리 창출, 재생에너지 기금 형성과도 연결될 수 있어야 한다"는 애니 밀러 Annie Miller의 말이 절실한 때이다. 하지만 그런 흔들림 속에서도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지난 몇 년간 기본소득 운동은 '공유자의 공유화'와 관련해서 의미 있는 사례들을 만들어 왔다. 이 글은 그 사례들을 검토하기 위한 것이다.

1. 판동초등학교 '어린이기본소득'

(고학년이나, 공부나 체육을 더 잘하는 친구에게 더 많은 기본소득을 주면 어떨까요?)

"그렇게 만드는 사람이 나쁜 사람이죠. 우리도 열심히 했는데, 왜 걔만 많이 줘요?" (판동초 학생들)

판동초는 1965년에 개교한 충북 보은군 삼승면에 위치한 초등학교로서 전교생이 36명에 불과하다. 지역 주민이 떠나면서 문구점, 슈퍼 하나 없게 된 상황에서 소멸 위기에 놓인 교육공동체를 지키려는 공유자들의 노력이 시작되었다. 강환욱 선생님을 시작으로 학생, 교장, 학부모, 지역주민, 동문들이 힘을 합쳐 충북교육청의 지원을 받아 교내에 매점 협동조합인 '팔판동 사회적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이 매점이 1차 공유화이다.

하지만 이것으로 충분치 못했다. 매점이 생겼는데도 용돈이 없어서 매점에 올 수 없는 학생들이 있었다. 협동조합으로 들어온 기부금 100만 원을 어떻게 쓸 것인지 머리를 맞대었다. 안이하게 생각했다면 어려운 학생을 지원하자는 뻔한 방안이 나왔을 것이다. 그 대신 공유자들은 전교생이 똑같이 기본소득으로 나누자고 결정했다. 매주 월요일 전교생에게 2천 원(2021년 12월, 3천 원으로 상향)의 '매점화폐'를 무조건적으로 지급하기 시작했다. 2020년 가을, 판동초 어린이기본소득이라는 2차 공유화가 시작된 것이다.

공유자들이 공유지를 인식, 이용, 유지, 관리, 재생산하는 일체의 행위를 1차 공유화라 한다면, 공유지 특유의 분배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분배를 2차 공유화라 규정할 수 있겠다. 이런 2차 공유화가 1차 공유지(매점)를 더욱 활성화시키게 된다. 공부를 잘 한 학생에게 주는 장학금도 아니고, 저소득층 학생에게 '낙인'을 찍는 선별 지원도 아닌 기본소득으로 나눌 결심이, 공유자의 하나인 학생들을 변화시켰다. 부모로부터 자립적인 결정을 하며 대등한 친구관계를 몸소 느끼며 평등을 내면화하고 연대의식이 생겨났다. 학교에 대한 자부심과 함께 공유지를 지키고자 하는 의지와 책임감이 피어올랐다.

판동초 기본소득은 나비효과를 낳았다. 후원금이 소진되자 사비를 터는 사람이 나타나고, 전국의 후원이 답지했다. 교장 선생님이 더 큰 학교 교장으로 발령받을 기회를 반납하고, 강환욱 선생님도 전근을 포기하고 판동초에 남기로 결정한다.

공유자들의 주체적 활동을 그 중심에 둘 때 공유지는 활성화되고, 그 과정에 기본소득이 중요한 매개 역할을 한 것이다.

2. '너의 존재를 응원해', 십시일반기본소득

"공동의 집이라고 얘기되는 지구의 상황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이제 더 많이 소비하고, 더 많이 생산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기에 그것을 멈추고, 우리가 가진 것을 잘 나누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되거든요. 기본소득을 얘기할 때도 더 많은 가용 자원이 아니라, 우리가 기본적인 삶의 안전망을 가지고 어떻게 하면 살아가고자 하는 삶을 더 힘있게 살아내는지에 초점이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김소연(자우))

대안학교 볍씨학교의 교사이자 멸종반란한국 활동가인 자우는, 하나의 아름다움이 아닌 각자의 색으로 빛나는 사람들을 보며 경이로움을 느꼈다. 존재하는 것만으로 아름다운 그 존재들을 응원하고 싶었다. 그래서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누군가에게 선물하는 '십시일반기본소득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한 프로젝트는 한 사람에게 1년 동안 매월 50만 원을 선물하는 것으로 구성되고, 각 프로젝트당 십여 명 내외의 분들이 형편에 맞게 참여했다.

선물을 받은 사람들은 자신의 삶이 '무조건적으로' 응원받을 가치가 있는 삶임을 확인하게 된다. '기꺼이 사랑을 받기'와 '나를 이미 온전한 존재로 마주하기' 연습을 하며 경계 짓거나 분리하지 않으면서 생명은 서로에 기대어 살아가는 것을 느낀다. '주고받는 감각'을 느끼며 살아있는 대기와 춤을 추듯, 일상의 위로와 기쁨이 함께 하는 날을 만난다. 차곡차곡 이어진 '호혜의 관계망'에 연결되면서 십시일반기본소득으로 심어진 씨앗이 언제가 싹을 띄워 누군가에게 열매와 그늘을 나누어 줄 날을 꿈꾼다. 그러면서 '공-산' '공-작'의 세계를 향해 나아간다. 이것이 기본소득의 철학이다.

프로젝트에는 선물과 이야기가 흐른다. 자우가 시작한 프로젝트는 60+기후행동 사회적 상속위원회를 만나 '십시일반 프로젝트 : 선물'로 이어지고 있다.

3. 청년농어민기본소득 사회실험

"유일한 활로는 공생의 원리를 익히고, 공생을 가능케 하는 유일한 삶의 양식인 '순환경제'를 실천하는 길밖에 없다. 그러자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오늘날 사멸 직전에 있는 농업, 농촌, 농민을 살리는 일이다. 농사일을 하는 사람 모두에게 기본소득으로 매월 정액을 일률적으로 평생 지급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믿는다." (김종철)

2020년 2월 공식 출범한 '농어민기본소득전국운동본부'는 농어촌 청년들의 지속가능한 삶과 소농⋅ 생태농 중심의 농촌 공동체 재건, 그리고 농어민기본소득 법안의 법제화를 위해 2023년 4월부터 청년농어민기본소득 사회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1년 이상 농어업에 종사하고 있는 39세 이하의 청년 10명을 선발하여 36개월간 매월 30만 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프로젝트로서, 3년간 1억 원 이상이 소요된다. 전국운동본부는 소셜펀딩으로 기금을 마련하고, 한살림생산자연합회, 전국귀농운동본부, 두레생산자연합, 평창가농영농조합, 농어민기본소득 경남본부/강원본부가 펀딩을 지원했다.

농어업경영체 등록 여부와 무관하게 실거주 및 농어업에 종사하고 있는 청년이면 자격이 있도록 하여, '공익직불금'과 철학을 달리 했다. 전국민 기본소득 위치에서 보면 농민기본소득은 '참여소득'으로 보이지만, 농민이 처한 위치에서 공익직불금과 비교해 보면 까다로운 '자격요건'과 복잡한 '준수사항'이 없고 단지 '농민'이면 된다는 점에서 분명 '기본소득'으로 볼 수 있다. 농민기본소득은 지자체별 '농민수당'과도 다르다. 월 5만 원 내외이고, 대개 개인별 지급이 아니라 가구별 지급인 현재의 농민수당은 소농의 삶과 영농의 최소 기초를 지탱할 수 없다.

사회실험에 참여하는 청년농어민 선발은 펀딩에 참여한 단체와 지역본부의 추천을 받아 진행했다. 농어촌의 사회적⋅생태적 전환을 이끌 새로운 지역 주체 형성을 도우려 하는 것이다. 사회실험 1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 청년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기본소득이 나에게 줄 수 있는 게 뭘까 생각해 보면, 유지하게 하는 힘인 것 같아요. 청창농 자금을 받을 때 농사 짓다가 자금 끊기면 그만두는 친구들이 많거든요. 나도 이걸 더 유지할까 고민할 때, 기본소득이 있으니까 한 번 쭉 가보자 이런 맘이 드는 거죠."

"기본소득은 내가 바라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끔,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울타리를 열어주는 제도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소득이 있음으로 인해서 사람들이 자기 고유성을 찾아가고, 삶의 방향을 고민할 수 있는 조건이 주어지면 보통 알고 있는 그런 길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들, 다른 길을 걷고자 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처럼 조금은 다르게 삶을 일구려고 하는 사람들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질 것 같고요."

청년농어민기본소득의 3년 뒤가 더 궁금해진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김찬휘씨는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운영위원, 농어민기본소득전국운동본부 교육홍보위원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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