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포커스]서방 제재 버티는 베네수 마두로…경제는 파탄 위기
3선 이후 사회적 갈등 극심
美, 경호·군사자금 압박 전망
민주-권위주의 갈등 새 전선
러시아·중국·이란 등은 지지
무고한 국민들 피해 극대화
경제제재 한계론도 떠올라
베네수엘라가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의 3선 확정 발표 이후 극심한 사회적 갈등을 겪고 있지만 마두로 정권은 미국 등 서방의 압박에도 끄떡없는 모양새다. 베네수엘라가 미국·유럽 등 자유주의 진영과 러시아·중국·이란 등 권위주의 진영 간 힘 대결의 전장으로 전락한 탓이다. 당장 서방은 마두로 정권 유지에 필요한 자금을 묶기 위한 경제제재를 강화할 태세다. 한때 남미 최고 부국이라는 평가를 받던 베네수엘라가 연이은 좌파 정권의 실정에 따른 초인플레이션 점화 등으로 국민 삶이 파탄에 이른 가운데 또 한 번 경제가 격랑에 휩싸일 전망이다.
미국, 또 다른 제재 카드 꺼내나5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미국은 마두로 정권의 부정선거에 대한 조치로 새로운 경제제재가 검토되고 있다. 구체적인 경제제재 조치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어찌 됐든 마두로 정권이 독재에 필요한 각종 경호·군사 자금을 압박하는 안으로 모아진다.
앞서 대선 투표 날인 지난달 29일 베네수엘라선거관리위원회는 개표 과정의 시민단체 참관을 불허하며 개표율 80%대에서 마두로 당선을 공식화했다. 이는 미국 여론조사기관의 자체 출구조사 결과와 정반대되는 것이어서 부정선거 의혹이 일파만파 커졌다. 마두로 대통령은 2018년 야당 주요 인사 출마를 막은 반쪽짜리 대선을 통해 재선했고 3연임을 통해 정권 수명을 6년 더 연장하려 하고 있다. 미국은 사실상 야권 후보인 에드문도 곤살레스의 당선을 확정하고 있는 분위기다.
현재 베네수엘라에서는 부정 선거를 규탄하는 대규모 집회가 이어지고 있고 야당 지도자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는 대중들의 시위를 독려하고 있다. 경찰이 강경 진압에 나서면서 유혈 사태가 잇따르고 야권 지도자 사무실에 괴한이 급습하는 사건도 일어나는 등 사회적 혼란은 가중되고 있다.
좌파 정권 실정으로 극심한 경제 파탄 맞은 베네수엘라세계 석유 매장량 1위국이던 베네수엘라의 경제는 20년 넘게 이어진 차베스·마두로 좌파 정권을 거치며 극심한 파탄을 겪었다. 석유산업에 이은 철강, 시멘트 등 기간산업 국유화에 따른 외국인 투자 자본이 급감했고, 화폐 찍어내기 등 각종 포퓰리즘 정책으로 인플레이션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베네수엘라의 경제는 2012년부터 2020년까지 약 71% 위축됐는데 이는 전쟁 중이 아닌 나라로 현대 역사상 가장 큰 하락률이라고 워싱턴포스트(WP)는 전했다. 연평균 800%가 넘는 인플레이션과 만성적인 식품 부족을 겪었고 유아 사망률은 급증했다.
미국은 지난 7년간 베네수엘라에 350건 이상 제재를 부과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베네수엘라에 가장 가혹한 제재를 가했다고 평가를 받는다. 2017년 트럼프 행정부는 베네수엘라 정부와 석유 회사가 국제 신용 시장에 접근하는 것을 차단하는 제재를 부과했다. 이후 3년간 제재를 확대해 베네수엘라의 '경제 생명선'인 석유 수출을 사실상 제한했다.
마두로 대통령, 버티기 나서는 이유이번 부정선거 논란에 미국, 유럽연합(EU) 등 서방이 규탄하며 마두로 대통령의 국제 고립이 강화되고 있는 가운데 그럼에도 마두로 대통령은 퇴임하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베네수엘라에서는 좌파와 우파 간 진영 갈등을 넘어 민주주의와 권위주의 사이 이념 갈등의 새 전선이 되고 있어서다. 러시아, 중국, 이란, 쿠바 등 서방 반대 진영은 마두로 대통령의 3선을 축하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서방에 대척하는 세계 진영의 지지는 외교적 고립, 경제제재를 통해 마두로 정권 퇴진을 압박하려는 것을 퇴색시켰다는 평가다. 브라질의 게툴리오 바르가스 재단의 올리버 스투엔켈 정치 분석가는 "마두로는 서방의 압력에서 거의 자유롭다"며 "그는 서방과의 우호적인 관계에 크게 의존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중국은 오랫동안 베네수엘라의 경제적 후원자, 주요 채권자, 최대 석유 구매국으로서 역할을 해왔다. 미국외교협회에 따르면 베네수엘라는 남미에서 가장 많은 중국 차관을 받은 국가로 규모만 약 600억달러에 이른다. 미국 주도의 제재가 석유에 의존하는 베네수엘라 경제를 위협하자 중국은 제3자를 통한 거래로 제재를 회피했다.
러시아는 마두로 정권 때 베네수엘라 정유 공장을 개선하기 위해 50억달러, 금광산업에 10억달러 등 지원을 약속했다. 남미의 대표 반미국가인 쿠바는 2019년 베네수엘라 군대의 쿠바화를 촉진하기 위한 여러 협정을 베네수엘라와 맺었다.
일각에서는 러시아, 중국 등이 그들의 적대국으로 꼽히는 우크라이나, 대만을 지원한 미국에 대한 보복 차원에서 베네수엘라에 대한 정치적 호혜를 베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콜롬비아 라사바나대학의 울프 토에네 정치학자는 이 같은 관점에 따라 "마두로 대통령이 권력을 계속 유지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미국 경제제재 한계론?…국민 고통은 계속WP는 마두로 정권을 처벌하기 위한 미국의 경제 제재 조치가 무고한 민간인들의 피해를 극대화했다는 점에서 경제 제재 한계론마저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 10년 새 베네수엘라 인구의 3분의 1인 800만명이 나라를 떠났고 일부는 미국행을 택했는데 이 같은 미국 내 불법 난민 폭증은 미국 대선의 화약고로 떠오른 상태다.
베네수엘라 대선 결과가 세계 진영 간 대결로 변질되는 사이 베네수엘라 경제난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베네수엘라 산업 구조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석유 산업의 경우 유전과 정유소 정비가 시급한데, 미국의 제재가 길어지면서 생산력이 갈수록 줄어드는 상황이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베네수엘라 국영 석유 기업 PDVSA는 올해 하루 65만4000배럴의 석유를 수출하고 있다. 이는 2019년 미국이 베네수엘라 석유 부문에 제재를 가하기 전 수출한 양의 절반에 불과한 수준이다. 사회 불안이 이어지면서 베네수엘라의 2026년, 2027년 만기 국채 가격도 하락세를 보인다고 블룸버그는 밝혔다.
변선진 기자 s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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