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민의 사이언스&테크놀로지] 화재 없는 고성능 전기차, 전고체 배터리 기술에 달렸다
분리막 없어 더 작은 설계도 가능
날씨 영향 없어 겨울에도 안정적
2027년 이후 실용화 가능할 듯
지난 1일 인천의 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화재는 ‘전기차가 과연 안전한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다시 한번 되뇌게 한다. 지하 1층 주차장에 주차한 수입 전기 승용차에서 폭발이 일어났는데, 연소가 확대돼 주위 차량 70여대가 피해를 봤다. 검은 연기가 아파트 단지를 뒤덮어 주민 수백명이 대피했으며, 일부는 병원 진료를 받았다.
화재 원인은 익히 알려진 대로 전기차 배터리에서 불이 났기 때문이다. 화재는 일반 자동차에서도 일어나지만 전기차는 소재 특성상 불이 쉽게 꺼지지 않아 규모가 훨씬 더 큰 특징이 있다. 인천 아파트 전기차는 완전 진화까지 8시간20분이 걸렸다.
지구 온난화가 가속되는 상황에 주행 중 일절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전기차는 대단히 매력적인 대안이다. 그러나 이런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전기차를 지금 사도 되나’라는 의구심이 생긴다. 이 문제를 원천적으로 해결할 과학적 방법은 있을까.
전기차는 왜 불이 나고, 또 꺼지지 않을까. 우선 배터리의 기본 성질을 알아야 한다. 배터리란 전해액과 두 종류의 금속판이 화학반응을 하며 전기를 만드는 장치다. 한쪽 금속판은 전자를 받아들이기에 양극, 다른 쪽은 전자를 보내주기에 음극이 된다. 현재 자동차에 쓰이는 배터리는 대부분이 리튬 계열이다. 리튬은 반응성이 대단히 크다. 공기나 물을 만나면 불이 붙을 수 있다. 배터리란 화학물질을 금속껍질로 밀봉한 것이다. 이 안에서 반응이 일어나니 폭발로 이어질 수 있다. 이 문제로 초기엔 전기차에 리튬 사용이 금기시됐다. 하지만 소형 전자장비 위주로 리튬 기술은 계속 발전했고, 마침내 자동차에도 쓰이게 됐다.
초창기엔 음극재에 리튬을 그대로 넣었다. 그러다 차츰 이온 형태로 만든 리튬을 다른 물질에 섞어 안정성을 높이는 방법이 고안됐다. 이른바 리튬이온 배터리다. 재료로 흑연을 꽤 오래 사용했는데 최근 실리콘을 활용한 연구가 활발하다. 과학기술자들은 리튬이온을 섞어 넣는 비율, 양극재와 음극재의 소재 등을 다양하게 변화시키며 안정성과 충전용량을 높이고 있다. 최근 전기차 운행거리가 400㎞를 훌쩍 넘어선 것은 리튬 배터리 기술의 발전 덕분이다.
최근 전기차 캐즘(판매 정체) 현상으로 관련 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전기차 판매가 주춤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편의성 면에서 휘발유 등 내연기관 자동차만 못한 점이 있다. 최신형 전기차도 운행거리는 400㎞, 많아야 500㎞인데 그마저 고속충전(보통 30분 내외)을 할 땐 전체의 80% 정도밖에 채우지 못한다. 반대로 내연기관차는 5분만 연료를 주입하면 600㎞ 이상, 길면 1000㎞까지 갈 수 있다.
이 문제로 당장 주목받는 건 양극재의 소재다. 최근 니켈·코발트·망간(NCM) 3가지 금속을 섞어 양극재를 만드는데 그중 니켈이 가장 주목받는다. NCM 배터리 중 니켈 함량을 가능한 한 높게 만든 것을 하이니켈 배터리라고 부르는데, 니켈 비율이 올라갈수록 성능과 용량이 크게 높아진다. 500㎞ 이상 주행거리를 달성한 전기차는 대부분 하이니켈 배터리를 채택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니켈은 리튬과 의도치 않은 화학반응을 일으킬 우려가 있다. 이를 최대한 제어하면서 니켈 함량을 높이는 것이 개발업체들의 최근 숙제다. NCM 배터리에 알루미늄을 더한 NCMA 배터리도 개발되고 있는데, 안전성이 크게 높아져 니켈 비율을 90% 이상으로 올릴 수 있다. 주행거리가 600㎞를 넘을 것으로 기대된다.
두 번째는 안전이다. 툭하면 전해 오는 화재 소식을 들으면 선뜻 전기차를 선택하기 꺼려진다. 급속충전 비율을 80% 정도에 맞춘 이유도 화재 위험 때문이다. 전압만 높이면 충전속도는 얼마든지 높일 수 있지만 안전문제로 끝까지 충전하지 않는 것이다. 리튬이온 배터리는 전해액이 액체 또는 점성이 있는 겔 상태인데 높은 전압을 받아 열이 발생하거나, 강한 충격을 받으면 배터리 구역을 나눈 분리막이 손상돼 양극재와 음극재, 전해액이 섞일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리튬에서 강한 열이 발생해 화재로 이어질 우려가 커진다.
최근 전기차 안전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수단으로 전고체 배터리 기술이 주목받는다. 말 그대로 전해액을 포함해 모든 것이 고체인 배터리다. 이렇게 되면 전해액이 섞여 들어갈 우려가 원천적으로 사라져 배터리가 부풀거나 불이 붙을 위험도 사실상 없어진다. 이는 충전속도 역시 크게 높일 수 있다는 뜻이다. 배터리 셀이 충격을 받아 화재가 일어나는 경우도 크게 줄어든다.
고체가 가진 장점은 이것뿐이 아니다. 배터리에 분리막을 설치할 필요가 사라지므로 내부 구조를 더 자유롭게 설계할 수 있다. 즉 더 작고 효율적인 배터리를 만들 수 있다. 날씨의 영향도 받지 않는다. 흔히 ‘전기차는 겨울에 충전량이 줄어든다’고 하는데 이는 추운 날씨에 전해액이 얼어붙기 때문이다. 전고체 배터리 전해액은 고체이므로 얼지 않아 겨울에도 안정적으로 쓸 수 있다.
전고체 배터리는 현시점에서 가장 설득력 있는 대안이다. 물론 실제로 적용하기엔 시간이 필요하다. 고체인 만큼 배터리 속 이온의 이동이 나쁠 수밖에 없는데, 이 단점은 출력 저하로 이어진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연구자들은 고체 전해액의 결정형태를 바꿔보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최적의 효율을 찾고 있다. 업계에선 실용화 시기를 2027~2028년으로 잡고 있다. 물론 이후에도 추가 기술개발이 필요하므로 완전히 시장에 자리 잡으려면 시간이 더 필요할 수 있다.
시대는 전기차를 요구한다. 다만 화재나 충전 편의성 등에서 아직 문제를 안고 있다. 그렇다면 해결방안은 과학기술에서 찾아야 한다. 다행히 기술은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고 있다. 한 번 충전으로 800~1000㎞를 달릴 수 있는 전기차, 5~10분이면 충전을 끝낼 수 있는 전기차, 화재 위험도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줄어든 전기차의 등장이 실제로 얼마 남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전승민 과학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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