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병주의 시선] 약속 대련 틀에 갇혀버린 검찰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의혹 수사와 관련한 이원석 검찰총장의 입장은 한결같았다. “법 앞에 예외도 특혜도 성역도 없다”고 수차례 말했다. 검찰청 밖 비공개 조사 과정에서 패싱 당한 것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국민에게 사과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은 대면 조사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며 이 총장이 지시한 진상조사를 거부했고, 수사팀 검사는 “열심히 수사했는데 회의감이 든다”고 사표까지 내면서 반발했다. 대통령실과 여권 일부에서는 "총장이 자기 정치를 한다"고 비판하고, 박성재 법무부 장관까지 김 여사 조사 방식에 대해 “제반 규정에 따라 진행한 것이고 특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검찰 조직과 수사의 신뢰성을 흔드는 중대한 사안이라는 일반 여론과 달리 검찰 내부통신망을 통한 검사들 간의 의견 교환이나 평검사 회의 같은 공개적 소통의 시도도 없다. 이 총장을 제외하고 모종의 ‘약속 대련’을 한 듯한 모습이다.
이렇듯 소외당한 이 총장이 임기 종료(9월 15일) 전에 사임할 것이란 예측도 있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하는 이재명 전 대표 수사 참여 검사들에 대한 탄핵소추 대응 등을 소화하고 있다. 파국에 이를 것 같던 총장과 서울중앙지검 간 대립은 오해가 있었다는 식으로 마무리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하지만 명확한 전후 사정을 알고 싶어하는 이들이 많다.
서울중앙지검이 내놓은 설명대로라면 도이치모터스 사건에 대한 결론 역시 자체적으로 내고, 발표해야 한다. 윤석열 총장 시절 그의 가족 수사라는 이유로 박탈당했던 총장 수사지휘권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총장이 바뀌고 정권이 바뀌었지만 회복되지 않고 있다. 서울중앙지검은 김 여사 조사를 이 총장에게 보고하지 않은 이유가 이 때문이라고 했다.
그나마 지휘권을 가진 김 여사의 명품백 수수와 관련한 수사를 ‘통상 절차’로 진행하려던 이 총장의 의지는 계속 견제받았다. 조사 방식에 대해 이 총장처럼 검찰청 내 대면조사를 주장해 온 송경호 전 서울중앙지검장은 지난 5월 부산고검장으로 발령 났다. 지난 2월에 이 총장의 반발로 무산됐던 인사 조처였다.
■
「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사 내홍
중앙지검도 장관도 총장과 이견
수사심의위로 보완 논의 가능
」
그럼에도 특혜 없는 조사를 주문하며 수사팀을 독려했던 이 총장이 받아든 건 검찰청 밖 제3의 장소에서 김 여사 대면조사를 마쳤다는 사후 보고였다. 도이치모터스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조율된 시간이었는데, 검사들이 설득해 명품백 수수 의혹 사건에 대한 조사까지 진행했다는 내용이었다. “경호상의 이유로 휴대전화를 소지하지 못해 제때 보고를 못 했다”는 해명과 “조사를 받게 한 것만으로도 큰 성과”라는 자화자찬이 나왔다. 이런저런 경위 설명이 더해졌지만, 수사하는 부서가 다른 사건인데 함께 갔다는 점만으로도 총장 패싱 가능성은 열려 있었다. 이 총장이 알면 틀어지는 약속 대련이 있었을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조사 방식 문제로 도이치모터스 사건은 물론 명품백 의혹 사건의 결론에 대한 예상은 한쪽으로 기울어진 듯하다. 명품백 실물 확인조차 안 하고 문제없다고 결론 낸 국민권익위원회는 대통령실과 김 여사의 입장에 치우쳤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검찰 역시 김 여사에게 유리하게 수사 결과를 발표할 경우 총장 패싱 사태까지 다시 거론되는 큰 진통이 예상된다. 조사라도 이 총장이 강조해온 것처럼 검찰청사에서 이뤄졌다면 절차상 특혜는 없었다는 평가가 나올 만하지만 그 가능성도 사라졌다. 명품백 실물까지 확인하는 등 조사 내용이 방대하고 법률에 따라 판단했다고 한들 요즘 자주 거론되는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는 말을 피해갈 수 없게 됐다.
결론에 정당성을 보탤 길이 아예 사라진 건 아니다. 검찰 외부 인사들로 꾸려지는 수사심의위원회의 판단을 구해보는 방법이 있다. 최근 서울의소리 측이 수심위를 열어달라고 요청해서 서울중앙지검에서 검토하겠지만, 이 총장이 직권으로 소집해도 된다. 사회 각계 인사가 참여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합리적 판단을 기대할 수 있다. 이 총장은 지난 1월 이태원 참사 수사와 관련해 수심위를 소집한 바 있다. 경찰이 무혐의 결론을 내린 김광호 당시 서울경찰청장에 대해 수심위는 기소를 권고했고, 검찰은 이를 받아들였다.
이 총장은 패싱 사태 직후 자리에 여한이 없다고 강조했다. “제가 할 일을 최선을 다해 하고 그것이 부족하다면 그때 거취에 대해 판단하겠다”고 했다. 명품백 수사 결과 발표 때까지, 혹은 결론 없이 임기가 종료될 때까지 그가 쓸 카드는 거의 소진됐다. 머뭇거리다 자칫 큰 틀의 약속 대련에 그마저도 갇혀버렸다는 평가가 나올지 모른다.
문병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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