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슈퍼 엔저’ 종말, 우리에게 도움 될까
2012년 무제한 양적완화로 대변되는 아베노믹스의 영향으로 10년 이상 약세를 거듭하던 엔화가 갑작스레 강세로 전환되면서 향후 엔화 환율의 향방에 관심이 뜨거워진 느낌이다.
1990년대 버블 붕괴 이후 일본은 디플레이션 늪에서 쉽게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닥쳐온 엔 강세는 수입 물가를 낮추면서 그나마도 부담스러운 디플레이션을 더욱 강화시켰는데, 2012년 총리로 등장한 아베 신조는 이를 해소하기 위해 일본의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이 2%로 올라오는 시점까지 무제한 엔화를 공급하는 정책을 천명한다. 이에 힘입어 100엔에 1500원을 상회하던 엔화 환율이 큰 폭으로 하락하면서 엔 약세가 극에 달했던 시점에는 100엔당 850원 수준까지 하락한 바 있다. 엔 약세가 과도하게 진행된 것이다.
그러나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여기서도 해당이 되는 듯하다. 엔 강세는 디플레이션을 강화시키지만 심각한 엔 약세는 도리어 인플레이션을 강화하는 쪽으로 작용했다. 엔 약세는 기본적으로 일본 수출기업의 가격경쟁력을 높이면서 기업들의 수익성에 상당히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반면 수입물가를 크게 끌어올리는 문제가 있다. 특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및 이스라엘·하마스로 대변되는 중동분쟁으로 인해 국제유가가 높아진 상황에서 진행되는 엔 약세는 일본의 인플레이션을 크게 자극하게 된다.
90년대 초반 버블 붕괴 이후 30여년간 디플레이션을 경험했기에 ‘물가 상승’을 전혀 겪어보지 못한 일본의 젊은 서민계층에게 갑작스레 닥쳐온 인플레이션은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한다. 오랜 기간 이어온 불경기로 임금 상승률은 높지 않은데 물가 상승률이 워낙 높다 보니 실질소득이 줄어들게 된 것이다. 이에 엔 약세를 선호하던 일본 당국 역시 올해 들어 과도한 엔저에 강한 경계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우선 엔저의 원인부터 살펴봐야 한다. 강한 성장세와 높은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미국의 금리는 높은 수준을 유지한다. 반면 일본은 오랜 기간 이어온 불경기에 대한 부담이 잔존하기에 지난 3월에야 마이너스 금리를 폐지한 바 있다. 5%를 넘는 미국의 기준금리와 이제 마이너스 금리에서 벗어난 일본의 기준금리 격차는 상당히 크다. 이 갭을 줄이기 위해서는 일본의 금리 인상이 필요하다. 오랜 침체 속에서 헤맸던 경험, 그리고 2000년과 2007년 섣불리 금리를 인상했다가 간신히 회복하던 일본 경제를 뒤흔들었던 뼈아픈 통화정책 정상화 실패 경험이 있었기에 일본 중앙은행은 점진적으로 금리 인상을 시도하고 있다. 다만 여기서 변수는 미국의 금리 인하다. 고금리 장기화 부담으로 미국 경기 둔화 우려가 확산되고 미국 금리 인하 기대가 커지자 일본의 점진적 금리 인상과 맞물리며 양국 간 금리 격차가 빠르게 줄어들 것이라는 예상이 힘을 얻게 된다. 그리고 그런 기대감은 최근의 뚜렷한 엔 강세로 나타난 것이다.
이런 엔 강세에 우리는 어떤 대응을 해야 할까. 이론적으로 엔 강세는 일본의 수출경쟁력 저하와 반대로 한국의 수출경쟁력 강화로 해석될 수 있다. 다만 최근 진행되는 미국의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진다면 한국 수출의 가격경쟁력이 높아져도 미국의 수요가 둔화될 수 있기에 효과가 희석될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반대로 엔 강세는 저금리와 엔 약세의 지속을 기대하며 일본에서 해외로 퍼져나온 엔 투자자금의 본국 회귀를 자극할 수 있다. 이 경우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유동성이 빠르게 줄어들면서 글로벌 실물경기의 둔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이는 대외 수요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는 도리어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
과거와 달리 실물경제 이상으로 금융경제가 커져 있다. 환율 변화에 따른 경상거래 관점에서 유불리를 판단하는 것만큼 자본 이동의 관점에서도 균형 있게 엔 강세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오건영 신한 프리미어 패스파인더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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