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 미국 대선, 우리는 준비돼 있는가
바이든행정부 정책 이어갈지
3개월 후 역사적 전환점 맞아
냉혹한 국제사회 현실 속에
탄핵·특검 매몰된 우리 정치
스스로 물어보고 답해야 한다
‘유력한 대선 후보의 암살 미수, 경선에서 승리한 현직 대통령의 대선 후보 사퇴, 부통령의 대선 후보 공식지명.’
미국 역사에 남을 만한 거대한 이벤트가 불과 지난 3주 만에 모두 일어났다. 펜실베이니아에서 발생한 암살 미수 직후 도널드 트럼프의 승리가 당연한 수순으로 여겨졌던 미 대선 구도는 다시 원위치가 됐다. 민주당 대선 후보로 공식 지명된 카멀라 해리스는 오차범위 내이긴 하지만 트럼프에 우세를 보이는 여론조사 결과도 속속 나오고 있다. 미 대선은 이제 완전히 새로운 게임이 됐다. 사실 선거 국면에서 돌발적인 이벤트가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크지 않다. 특히 두 정당의 지지층이 고정적이고 양극화돼 있으며, 부동층이 적을수록 그렇다.
3개월 남은 미국 대통령 선거는 미국 정치사에서 중대한 전환점이다. 미국 우선주의와 고립주의 시대의 귀환을 맞을 것인지, 미 역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탄생시킬 것인지 갈림길에 서 있다. 두 사람은 나이와 인종, 성별, 경력, 이념, 정책 등 거의 모든 측면에서 극명한 반대편에 있다. 78세와 59세, 보수적인 백인 남성과 진보적인 흑인 여성 간의 첫 맞대결이기도 하다. 민주당은 검사 출신인 해리스와 민형사상 피고인인 트럼프의 차이도 부각시킨다.
남은 3개월간 트럼프와 공화당은 바이든 행정부의 2인자 해리스를 겨냥해 불법입국, 인플레이션 등 바이든 대통령을 비판했던 소재들을 그대로 재활용해 공격할 것이다. 지난달 초 공화당이 발표한 새로운 정강정책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공화당은 사실상 트럼프의 대선 공약집인 정강정책을 통해 ‘미국 우선주의’를 거듭 천명한 상태다. 해리스가 승리할 경우 정책 면에서는 바이든 행정부 기조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내부적으로는 부자 증세 및 중산층 강화, 친노조, 대외적으로 동맹 중시 등의 정책이 지속될 전망이다.
중요한 것은 미국 대선 결과가 대외적으로 미치는 영향이다. 우리가 미 대선 레이스를 주목하는 이유는 우리 정치·외교, 경제·산업 등 많은 분야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트럼프 1기 행정부가 추가관세 부여 압박,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까지 언급하며 방위비분담금 인상을 압박한 것을 이미 경험했다. 또 바이든 행정부가 미국 경제의 인플레이션 해소를 위해 추진했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른 영향도 경험했다.
트럼프가 승리한다면 그는 1기 때 완성하지 못했던 미국 우선 대외정책을 더욱 빠르게 실현할 것이다. 고관세와 제조업의 국내 회귀로 대표되는 보호주의로 전환한다면 우리나라는 수출 감소, 금리 상승, 환율 불안이라는 악재를 만날 수 있다. 외교안보 면에서는 대외 군사개입을 최소화하는 신고립주의로 나아가면서 트럼프 1기처럼 동맹을 거래(deal)하는 식으로 미국 이익을 극대화할 것으로 보인다.
많은 전문가들은 해리스 역시 강력한 보호무역주의를 추진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관세·비관세 장벽을 높여 반도체 등 중국의 첨단산업 기술 접근을 제한하고, 동맹국과 함께 미국 내 산업과 공급망 육성에 집중하는 식이다. 미국 내 반도체와 전기차, 친환경 에너지 관련 투자에 보조금을 주는 반도체지원법과 IRA 등을 유지할 가능성 역시 크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트럼프와 해리스 모두 경쟁자인 중국의 첨단기술 산업 발전을 계속 견제하려 한다면 중국과의 교역 규모가 큰 우리나라 역시 자유로울 수 없다.
결국 누가 미국의 차기 대통령이 되든 미국의 보호무역주의는 강화될 전망이다. 국제사회가 국익 최우선주의로 흐르는 것은 이미 대세가 된 지 오래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명분을 확보하는 동시에 전략적인 거래를 통해 안보 이익과 경제적 실익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무역수지 악화를 막기 위해 정치·외교적으로 우리 입장을 적극 개진하면서도, 궁극적으로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 미국과 중국 이외의 수출선을 다변화하면서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익을 지키려는 우리 정부, 여야 정치권의 준비와 자세다. 국제사회의 현실은 냉혹한데 우리 정치는 탄핵, 특검, 권력싸움 등 소모적 정쟁에만 매몰돼 있다. 미국뿐 아니라 모든 국제사회가 자신들의 국익 추구를 최우선 가치로 삼는 상황에서 우리는 얼마나 준비돼 있는가. 지금 우리 정치는 분명히 스스로 물어보고 답해야 한다.
남혁상 편집국 부국장 hs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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