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1만원 시대에 수술 필요한 최저임금제도

2024. 8. 6.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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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식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전 최저임금위원장

2025년에 적용할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1.7% 인상된 1만30원으로 결정됐다. ‘최저임금 1만원 시대’ 진입을 계기로 최저임금도 ‘절대적 최저임금’에서 ‘상대적 최저임금’으로 성격이 바뀌었다. 정책 의제의 맥락과 상태가 변했으면, 이를 다루는 제도도 변해야 한다.

한국의 최저임금은 장기간에 걸쳐 경제 성장률과 물가상승률을 더한 수준 이상으로 인상돼 중위임금의 60%대까지 올라왔다. 최저임금 수준이 일본을 앞질렀다. 이제 최저임금은 저임금과 일자리 문제를 넘어 산업 전환, 국가 재정, 국제적 노동 이동에도 민감한 영향을 주는 중요한 정책 변수가 됐다.

「 최저임금의 성격은 달라졌는데
위원회는 ‘과거의 옷’에 머물러
상설적 전문가 합의체로 바꿔야

이인재 최저임금위원장이 7월 12일 새벽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제11차 전원회의가 끝난 뒤 내년 최저임금이 시간당 1만30원으로 결정된 최종안 표결 현황판을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1만원 시대 진입의 영향은 긍정적 측면이 크다. 최저임금 제도를 통해 경제와 일자리에 부작용을 초래하지 않으면서 저임금 국가 수준을 빠르게 벗어나 선진국 대열에 합류할 수 있었다. 이 제도는 일하는 사람의 생활을 안정시키고,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고, 노동 빈곤 해소와 임금 격차를 완화하는 핵심 동력원이었다.

하지만 현행 제도는 중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최저임금의 성격이 질적으로 전환됐지만, 이를 다루는 방법과 논리는 과거의 방식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이 미래에도 긍정적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제도 개혁을 모색할 시점이 됐다.

우리 최저임금 제도는 노동자·사용자·공익 3자의 사회적 교섭 공간을 제공해 왔다. 최저임금 결정에서 객관적 경제사회 지표를 중시하면서 사회적 목표를 추구하는 유연한 협치가 가능한 것이 큰 특징이다. 이런 방식은 노동 빈곤 극복이 중요했던 시기에 저임금을 해소하고, 경제적 과실을 공정하게 나누는 효과적 수단이었다.

그러나 최저임금 수준이 높아지면서 저임금 노동자들과 저소득 사업자들의 긴장도 고조되고, 충돌도 잦았다. 최저임금의 영향과 파급 효과도 절대적 저임금 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과거에는 저임금 해소라는 단일 목표를 향해 매진하면 됐지만, 오늘날에는 노동시장과 국민경제 전반에 끼치는 복합적 영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6월 27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최저임금위원회 제6차 전원회의서 최저임금 확대 적용을 주장하는 근로자 위원 맞은편에서 사용자 위원들이 PC방과 일반음식점의 월평균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이 적힌 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다. 뉴시스

최저임금 심의 과정에서 이익 집단과 사회 세력의 긴장과 갈등이 커지면서 제도의 안정성도 흔들리고 있다. 임금과 소득의 격차가 벌어지고, 저소득 계층이 누적되는 상황에서 최저임금 결정의 공간은 좁아졌고 갈등은 첨예화했다. 기존 법제의 틀로 포괄하기 힘들어진 비표준적 고용 방식의 급속한 확산도 최저임금 제도의 새로운 의제가 됐다. 최저임금의 위상과 맥락이 질적으로 바뀌었지만, 이를 다룰 위원회는 과거의 옷을 입고 있다.

1만원 시대 진입에 발맞춰 최저임금 제도를 높아진 위상과 영향에 맞게 개혁해야 한다. 목소리만 높이는 대결적 회의체를 지양하고, 책임을 위임받은 전문가와 대표자들의 심도 있는 논의를 통해 합의에 이르는 방식으로 제도를 손질해야 한다.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 공정한 결정 규칙을 다듬어야 한다. 그 영향을 다면적으로 평가하면서, 증거 기반 심의가 이뤄질 수 있도록 위원회의 전문성과 책임성을 강화하자. 이를 위해 그 위상을 상설적 기구로 격상해야 한다.

좋은 집도 세월이 흐르면 고쳐 사용해야 한다. 최저임금 제도 개혁도 더는 미룰 수 없다. 상대적 최저임금 시대에 노동 선진국의 길을 가기 위해서는 위원회의 논의 구조를 ‘대결과 각축’에서 ‘협치와 대화’의 구도로 전환해야 한다. 위원회의 안정성과 전문성을 강화하고, 합리적 근거에 기초해 합의를 촉진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혁신해야 한다. 1만원 이후의 최저임금은 경제 주체들이 충분히 적응할 수 있고, 예측 가능한 범위에서 운영해야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다.

복잡한 이익이 격렬하게 충돌할수록 이익 갈등을 조율하고, 합리적으로 타협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최저임금이라는 사회적 계약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안정적인 결정 규칙을 도출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상충하는 이익집단들의 거리를 좁히고, 충돌을 완화하면서, 균형점을 찾는 공익위원들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이익집단들을 위한 최저임금이 아닌 국민을 위한 최저임금이 되도록 경제사회 주체들의 지혜를 모아 제도 개선에 착수해야 할 때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박준식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전 최저임금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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