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그림을 찢었다
텔레비전을 보며 졸다가 스쳐 가는 광고 속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깬 적이 있다.
“찢었다”라는 세 글자였다. 찾아보니 훌륭하다는 의미의 신조어라 했다. 그 소리가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고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그러다 어김없이 또 여름이 와서 목이 터지라고 울어대는 매미의 합창이 들렸다. 숨이 막히게 더운 여름날 아침 매미 울음소리를 들으니 살아있는 기분이 들었다. 문득 합창을 같이하러 가자는 친구가 떠올랐다. 퇴직하고 취미로 합창하는 친구들이 여럿 있다. 노래하면서 기분이 좋아지고 살아있는 기분이 든다고 한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중고등학교 시절 내내 합창 시간이 즐거웠던 적이 한 번도 없는 나는 입만 움직이며 노래하는 척만 하곤 했다. 어쩌면 누군가에게 살아있는 기분이 들게 하는 일이 사람마다 다 다르다는 건 당연하면서도 신기한 일이다. 내게는 그 일이 물론 그림을 그리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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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에 대한 평가 저마다 달라
눈앞의 것만 보는 판단은 문제
모르는 것투성이인 게 인생
」
이 더운 여름에 그림 창고를 정리하다가 내 오래된 그림들을 몇십 년 만에 다시 만나니 감회가 새로웠다. 이십 대 중반 나의 초기 그림은 추상화다. 용암이 흘러내리는 듯 삶의 열정을 표현하고 있다. 어쩌면 그 뜨거운 추상을 버리고 나만의 표현 양식을 구현하기 시작한 건 내 추상화가 너무 빨리 완성되기 때문이었다. 하루에 백호를 두세 점 그리곤 했다. 시간은 적게 걸려도 물감값은 더 많이 들었다. 이러다가는 그림 속에 갇혀 버릴 것 같은 공포감이 엄습했다. 그리하여 나는 시간 많이 걸리는 쪽으로 작업 방향을 바꾸었다.
그림 창고 정리를 하면서 세월을 그림과 바꾸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십 대에 그린 나의 그림들은 십 미터가 넘는 것들도 많다. 죽음이 아직 한참 멀리 있다고 느꼈을 때, 죽음은 내게 받지도 않은 훈장이거나 겉멋이었다. 살아있음을 느끼기 위하여, 아니 그렇게 그릴 수밖에는 없는 절실함으로 거대한 그림을 마구 그려대었나 보다. 졸작은 없애자는 생각을 현실로 옮기기 시작한 올해는 내게 기념비적인 해이다. 그림을 찢는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일단 찢어버릴 그림 후보들을 고르기 시작했다.
문득 며칠 전 본 뭉크의 전람회 벽에 씌어있던 문구가 생각났다. “나는 내 그림들 외에는 자식이 없다.” 나도 그렇다. 고개를 끄덕이며 뭉크의 그림들을 감상했다. 1990년대 중반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보았던 뭉크의 그림들은 나이 든 내게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 자신 유난히 사랑한 그림은 어떤 걸지 궁금했다. 다섯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어머니들의 말은 어느 정도 거짓말일지 모른다. 내 자식 중 버리고 싶은 그림들을 골라내기 시작했다. 신나게 칼로 북북 찢어버리고 싶은 그림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을 것 같았다.
그 순간 엉뚱하게도 나는 스웨덴 연안 170년 전 난파선에서 발견된, 보관이 놀랍게 잘 되어있다는 질 좋은 샴페인 한 병을 따서 한 모금 마시고 싶어졌다. 그리고 내 오래된 그림들이 마치 그 샴페인 병들처럼 귀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언젠가 들었던 말이 귀에 울려왔다. 이를테면 “당신은 당신 안의 가장 깊은 소망이다.” 힌두교 경전 우파니샤드 속의 한 구절인 것도 같았다. 그리고 내 깊은 소망인 나의 자식들이 그 어느 한 놈도 귀하지 않은 것이 없는 것만 같았다. 그중에서 한 다섯 점을 골라 찢으려는데 옆에서 일을 거들어주던 친한 후배가 말렸다. 말려도 찢으려는데 때마침 다른 친구가 우연히 찾아와 그림을 보더니 “네 그림 중에 제일 좋다”며 사진을 찍는 것이다. 문득 어디선가 들은 다른 말이 떠올랐다. “나는 나를 찾는 것보다 잃어버리는 게 좋다.” 어디서 들은 건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어쩌면 우리는 버릴 건 안 버리고 버리지 않아야 할 걸 버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모든 존재가 다 그렇지만 특히 예술가는 타인의 말에 너무 흔들리면 안 된다. 예술가란 늘 멀리 보며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어야 한다. 눈앞의 것만 보며 함부로 판단하는 세상 사람들의 잣대는 그리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 그럼에도 찢어버리자는 생각에 불붙던 나의 의지는 말리는 친구 덕에 꺾이고 말았다.
사람마다 보는 눈은 다 다르며, 아니 나의 눈조차도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쁜 그림은 없을지 모른다. 1848년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공동 집필한 지구상 가장 이상적인 이론인 공산당 선언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 “모든 확실한 것들은 공기 중으로 사라진다.” 누가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 말 한마디가 또 하나 떠오른다. 모르는 것 투성이인데 아무것도 모르는 채 떠나는 게 인생이라는.
황주리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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