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 음식 금지, 화장 금지.... 2박 3일 환경호르몬 없이 살아봤더니
[유지영 기자]
▲ '환경호르몬 FREE 가족 캠프'에 참여한 108명의 부모와 자녀들은 열의를 갖고 캠프에서 활동했다. |
ⓒ 유지영 |
"저희 집에서 옥수수를 조금 갖고 왔는데...."
2일 '환경호르몬 프리(FREE) 가족 캠프'(아래 캠프)가 시작되는 당일, 서울 지역 집결 장소인 서울 중랑구의 한 공원에서 버스에 오르던 한 가족은 가방에서 조심스럽게 옥수수를 꺼내 들었다.
"아이고, 저희 일전에 말씀드렸는데... 외부 음식 반입은 따로 안 되세요."
캠프 관계자가 손을 내젓자, 가족들은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버스에 올라탔다. 아니, 옥수수도 먹을 수 없다고?
▲ 캠프에서는 반드시 개인 텀블러만 사용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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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휴가철을 맞아 서울, 남원, 여수를 비롯해 각지에서 모인 부모와 아동·청소년 자녀들로 구성된 32가족 총 108명이 캠프가 열리는 충남 공주시의 한 연수원으로 떠났다.
2박 3일 환경호르몬 없는 생활, 가능할까
최근 중국의 온라인 쇼핑몰 알리익스프레스나 테무 등을 통한 '해외 직구'로 한국에 유입된 일부 어린이용 장난감이나 반지 같은 액세서리 등에서 기준치의 몇십 배에서 무려 몇천 배에 달하는 환경호르몬이 검출돼 큰 논란이 됐다. 그럼에도 이들의 성장세는 무섭다. 특히 '해외 직구' 규모는 2조 원을 돌파했으며, 그중 중국이 압도적 1위로 64.8%(2024년 2분기, 통계청)를 차지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로는 플라스틱 사용량이 급증해 2024년 한국에서 환경호르몬 물질은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의 삶과 떼려야 뗄 수 없게 됐다. 이런 열악한 상황 속에서 환경호르몬으로부터 최대한 자유로운 캠프를 기획(노동환경건강연구소 주관, 브라이언임팩트재단 후원)해 '바이오 모니터링(몸속에 노출된 유해 물질을 분석하는 일)'을 시도했다.
▲ '환경호르몬 FREE 가족 캠프'에서 사용될 생활화학제품에는 대부분 향이 포함돼 있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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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소변에서 어느 정도의 환경호르몬이 나오는지는 두 달의 기간을 거쳐서 분석돼, 그 데이터는 각 가정에 전달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데이터는 시민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가이드를 개발하는 데 사용된다.
캠프에 온 사람이면 모두 예외는 없다. 취재를 위해 방문한 기자를 포함해 운영 및 진행 관계자들 역시 매일 아침 소변을 제출하고, 정해진 식단에 맞춰 식사를 하며, 정해진 샴푸와 로션을 사용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2박 3일간 화장 역시 금지된다.
▲ 매 끼니 정해진 식단에 맞춰 먹어야 하고 외부 음식은 반입이 금지된다. '환경호르몬 FREE 가족 캠프' 2일 첫날 점심 식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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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나 환경호르몬의 90%는 음식물을 통해 몸속으로 들어오는 만큼 캠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식사였다. 캠프를 위해 공수한 식재료는 생협, 지역 마트 등에서 구한 총 364가지로 이 중 대표적 환경호르몬인 비스페놀류, 파라벤류가 검출되지 않고, 프탈레이트류가 최소 함유된 식재료 총 60종이 살아남아 "소수정예"만이 캠프 밥상에 오를 수 있었다. "생산과 가공, 유통 과정에서 환경호르몬에 많이 노출되기 때문에 되도록 그 과정을 줄여 가까운 지역에서 구할 수 있는 식재료를 우선적으로"(최인자 박사) 택했다.
캠프 기간 "텀블러를 들고 다니는 게 제일 쉬워요. 배달 음식을 못 먹는 게 힘들어요"라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당초 캠프에서 계획됐던 식단은 60종이 아닌 90종이었으나 환경호르몬 분석 검사에서 통과하지 못했다. 한국인이면 가장 흔하게 접하는 식품인 김치 또한 백김치로만 제공됐다. 꼬마김밥을 만들어서 먹는 점심시간에도 가공식품인 햄을 대신해 사각어묵과 한우설도가 들어갔다.
"캠프의 기준이 너무 높았던 게 아니냐"는 물음에 김원 박사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반대로 우리 식재료가 너무 많이 오염돼 있었다."
▲ 이날 캠프 운동회에서 사용된 볼풀공은 환경호르몬 검사를 통과한 제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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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이나 일회용품은 캠프가 진행되는 3일 내내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플라스틱이나 일회용품은 지구에만 좋지 않은 줄 알았는데, 결국 지구에서 태어난 인간의 몸에도 좋지 않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래도 숙소에 들어오면 몰래 먹고 쓸 수 있지 않을까? 이곳 연수원에 원래 설치됐던 샴푸 통에는 "제공된 생활화학제품을 사용해 주세요"라는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 "제공된 생활화학제품을 사용해 주세요." '환경호르몬 FREE 가족 캠프' 숙소에 비치된 안내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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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보다 한국 성인의 환경호르몬 수치가 더 나쁜 이유
이들 108명, 32가족은 모두 3일간의 빡빡한 일정을 소화했다. 오전 7시부터 오후 9시까지 정해진 식사를 시간 맞춰 먹는 것만이 아니라 여러 프로그램을 소화해야 했다. 환경호르몬 관련 강의를 듣기도 하고, 팀으로 모여 환경호르몬 수치를 낮출 수 있는 방법이 있을지 토의를 하면서도 부모와 자녀 대다수가 손을 들고 질문과 답변을 꺼리지 않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들 대부분이 이미 4월 첫째주에 각 가정에서 5일간 '바이오 모니터링 위크(일주일)'를 진행하는 등 이른바 '환경 리터러시(문해력)'가 높았기 때문이다.
▲ 캠프에서는 '환경 리터러시' 능력을 가진 아이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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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씨는 평소에도 샴푸나 바디워시가 아닌 물로만 몸을 씻는 '노푸'를 실천 중이다. 몇 년 전 순해서 아이들도 쓸 수 있다는 바디워시를 한 차례 사용했더니 피부가 붉게 달아올라 사용을 그만두었다. 그렇게 8년간 화장품을 비롯해 생활화학제품을 사용하지 않았다. 과일이나 야채를 씻을 때도 식초를 사용하는 등 주의를 기울였다.
▲ 부모와 자녀가 나누어져서 진행하는 캠프 프로그램 중 일부. 부모들이 환경호르몬을 일상에서 어떻게 줄일 수 있을지 논의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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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 국립환경과학원에서는 3년 주기로 국민환경보건 기초조사를 시행한다. 캠프에서 진행하는 것처럼 국민 5천~6천 명을 대상으로 혈액과 소변을 취합해 환경유해인자 영향과 건강 상태를 파악하는 국가 단위의 대규모 조사다. 지난 조사 결과(2020년)에 따르면 한국 성인 남녀의 평균 환경호르몬 수치는 미국인보다 좋지 않다. 이는 "미국의 경우 1970년대부터 관련 물질의 규제와 관리를 시작했기 때문"(최인자 박사)이다.
캠프를 찾은 가족들이 한목소리로 "환경호르몬 관련 검사 결과들이 자주 공표가 되고 더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다"라고 한 이유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는 이 프로젝트를 2025년 12월까지 진행하며 앞으로 환경호르몬의 위험성을 널리 알릴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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