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세영 '셔틀콕 여제' 대관식…한국 28년 만에 단식 금메달

피주영 2024. 8. 5.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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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메달을 확정하고 포효하는 안세영. 뉴스1

배드민턴 여자 단식 세계 1위 안세영(22·삼성생명)이 2024 파리올림픽에서 '셔틀콕 여제'의 대관식을 치렀다.

안세영은 5일(한국시간) 프랑스 파리 포르트드라샤펠 아레나에서 열린 대회 여자 단식 결승에서 세계 9위 허빙자오(중국)를 2-0(21-13 21-16 )으로 완파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경기 중 위기는 단 한 차례도 없었다. 한국 배드민턴의 올림픽 단식 종목 우승은 남녀를 통틀어 1996 애틀랜타 대회 방수현 이후 역대 두 번째이자 28년 만이다.

이로써 한국 배드민턴은 2008 베이징 대회 혼합복식 이용대-이효정 이후 끊겼던 올림픽 금맥을 16년 만에 되살렸다. 배드민턴이 1992년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이래 한국의 7번째 금메달이다. 당초 그의 최대 라이벌인 천위페이(세계 2위·중국)와 결승에서 맞붙을 것이 유력했는데, 천위페이가 8강에서 허빙자오에 패배해 조기 탈락했다.

안세영 '금메달!' (파리=연합뉴스) 김인철 기자 = 5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포르트드 라 샤펠 아레나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배드민턴 여자 단식 결승전에서 한국 안세영이 중국 허빙자오를 이기고 우승을 확정한 뒤 환호하고 있다. 2024.8.5 yatoya@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2세에 왕좌에 오른 안세영은 자신의 시대를 활짝 열어젖혔다. 4년 뒤 2028 로스앤젤레스올림픽까지 탄탄대로를 달릴 전망이다. 목표인 '커리어 그랜드슬램(올림픽·세계선수권·아시안게임·아시아선수권 석권)'도 어렵지 않게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아시아선수권 우승만 남겨뒀다.

이날 8000석 규모의 포르트드라샤펠 아레나 대부분은 중국 응원단이 점령하고 일방적인 응원을 펼쳤다. 중국 홈경기를 방불케 했다. 그 속에서 희미하게 한국 관중의 "대한민국"이 들리는 정도였다. 그러나 '강철 멘털' 안세영은 압도적 경기력으로 두 게임을 내리 따냈다. 2게임이 끝난 무렵 경기장엔 더는 "허빙자오"의 이름은 들리지 않았다. "안세영"의 이름만 울려 퍼졌다.

안세영은 금메달이 확정되자 코트에 엎드려 감격스러워했다. 잠시 뒤 일어난 그는 관중석을 향해 포효하며 두 팔을 벌렸다. 어퍼컷 세리머니를 펼친 뒤, 태극기를 펼치고 달리는 '걸크러시(girl crush·여자가 봐도 멋진 여성)'를 선보였다. "(낭만의 도시) 파리에서 낭만 있게 끝냈겠다"던 안세영의 입버릇처럼 낭만 넘치는 엔딩이었다. 이날 승리로 안세영은 허빙자오와의 상대 전적에서 9승5패의 우위를 지켰다. 최근 2년만 따지면 9승1패로 압도했다.

안세영은 이번이 두 번째 올림픽 무대다. 2021년 열린 2020 도쿄올림픽이 첫 당시 19세의 안세영은 배드민턴 종목 출전자 중 최연소로 기량이 만개하기 전이었다. 8강전에서 당시 1번 시드 천위페이(중국)에게 진 그는 눈물을 흘리며 "후회 없이 준비했는데 이 정도 성과가 나왔다. 더 열심히 준비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이후 고속성장한 그는 지난해 세계배드민턴연맹(BWF) 세계선수권 여자 단식 우승과 올해의 여자 선수상을 차지했다. 같은 해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여자 단식과 단체전 등 2관왕에 올랐다. 아시안게임이 끝나자마자 그에겐 각종 인터뷰와 광고 제안, TV 프로그램 출연 요청이 빗발쳤지만, 올림픽을 준비하기 위해 모두 거절하고 훈련에만 집중했다.

안세영이 5일(현지시간) 파리 라 샤펠 아레나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배드민턴 여자 단식 결승전에서 중국 허빙자오와 경기에서 승리한 뒤 기뻐하고 있다. 2024.8.5 파리=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위기도 있었다. 항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 결승 도중 다쳤던 무릎이 안세영을 내내 괴롭혔다. 올림픽에서도 통증을 안고 뛰어야 한다는 진단이 나왔다. 고질적인 통증에 재활 기간 체력이 떨어진 안세영은 올해 롤러코스터를 탄 듯한 기복을 보였다. 지난 1월 말레이시아오픈에서 우승한 뒤 그다음 주 인도오픈 8강전에서 허벅지 근육 부상이 겹쳐 기권했고, 3월 프랑스오픈을 제패하고 출전한 전영오픈에선 체력 난조를 보이며 준결승전에서 탈락했다.

하지만 부상도 '승부사 안세영'을 막지 못했다. 그는 고비 때마다 불굴의 투지로 '역전의 명수'다운 면모를 과시했다. 1게임을 내줘도 2, 3게임을 이겨 승부를 뒤집었다. 그레고리아마리스카툰중(인도네시아)과의 준결승(4일)과 야마구치 아카네(일본)와의 8강전(3일)에서 모두 1게임을 내줬지만, 내리 두 게임을 따내는 저력을 발휘하며 승리했다. 안세영은 "(첫판을 지면) 엄청 부담스럽지만, 정신은 더 번쩍 든다. 오히려 저를 계속 몰아붙이는 힘"이라며 "'나는 할 수 있다' '한 점씩 하다 보면 언젠가 따라잡을 것이다'라는 생각을 계속한다"고 비결을 밝혔다.

안세영은 털털하고 강한 이미지다. 하지만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었다. MBTI(성격유형검사)가 안세영은 직관과 영감을 중시하는 'N'답게 시상대 위에서 할 세리머니에 대한 상상을 많이 한다. 그는 허빙자오와의 결승전을 앞두고는 "상상을 정말 많이 하는 편이다. 상상 때문에 잠도 못 자고 몸이 굳기도 한다. 낭만 가득한 엔딩을 꿈꾸느라 들뜬 마음을 내려놓기가 힘들다"고 고충을 털어놓기도 했다.

파리=피주영 기자 akap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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