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증시 ‘최악의 날’… 역대 최대 낙폭에 시총 235兆 증발

이광수,이의재 2024. 8. 5.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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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경기침체 우려 등에 亞증시 동반 폭락
권현구 기자


미국발 경기침체 공포에 한국 증시의 코스피와 코스닥지수가 5일 역사상 가장 큰 폭으로 하락했다. 급격한 매도세를 진정시키기 위해 코스피와 코스닥 모두 약 4년5개월 만에 ‘서킷브레이커’(주식 매매 일시 중단)가 발동됐지만 기계적 반등도 없는 폭락장이 종일 지속됐다. 이날 하루에만 양 시장에서 시가총액 235조원이 증발했다. 예상치 못한 급격한 폭락에 투자자들은 망연자실해하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는 이날 전 거래일보다 8.77%(234.64포인트) 하락한 2441.55에 거래를 마쳤다. 국내 증시가 개장한 이후 가장 큰 낙폭이다.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2.42%(64.89포인트) 내린 2611.30으로 출발해 낙폭을 키우며 한때 2400선이 붕괴되기도 했다. 코스닥지수도 힘없이 700선을 내줬다. 이날 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11.30%(88.05포인트) 내린 691.28에 마감했다.


코스피는 오전 11시14분쯤 변동성 완화 장치인 ‘매도 사이드카’(프로그램매매 호가 효력 정지)가 발동됐지만 시장을 진정시키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지수가 오후 2시14분쯤 8% 넘게 하락하자 주식 매매가 20분간 일시 중단되는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됐다.

코스피 전체 상장 종목 937개 가운데 924개의 주가가 내렸다. 전체 상장 종목의 98.6%가 내린 것이다. 주가가 오른 종목은 11개뿐이었다.

외국인과 기관이 코스피 주식을 대거 팔아치웠다. 외국인은 1조5281억원어치 코스피 주식을 내다팔았고 기관도 2735억원을 순매도했다. 개인은 1조6961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이날 증시 폭락은 미국 경기침체에 대한 공포감이 글로벌 자산시장의 투자심리를 얼어붙게 만들고 있는 영향이다. 지난 2일(현지시간) 발표된 7월 실업률이 4.3%로 3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하면서 월가에서는 경기침체에 진입했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기 시작했다. 이란의 이스라엘 공격 임박 관측 등 중동의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부각된 것도 투자심리 악화에 영향을 미쳤다. 그동안 글로벌 증시를 이끌어온 엔비디아와 애플 등 미국 인공지능(AI) 빅테크 기업의 실적에 대한 우려와 ‘AI 거품론’도 하락의 빌미로 작용했다.

아시아 증시도 폭락했다. 일본 닛케이225지수는 이날 12.40% 내리며 플라자합의 여파가 있었던 1987년 10월 20일 이후 가장 큰 하락 폭을 기록했다. 일본 증시의 경우 엔 캐리 트레이드(금리가 낮은 엔화를 빌려 투자하는 현상) 청산에 따른 엔화 강세도 하락 이유로 작용했다. 대만 가권지수도 8.35% 급락해 사상 최대 하락률을 경신했다.

증시 전문가들은 이날 증시 급락이 미국 경기침체 우려를 과도하게 반영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수석연구위원은 “투자심리가 위축될수록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빅컷’(0.50%포인트 인하) 단행 기대가 높아질 것”이라며 “코스피 2500선 아래에서 기술적인 반등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빅컷 단행이 경기침체를 기정사실화한 것으로 받아들여져 시장은 본격적인 하락장으로 접어들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금융 당국도 이날 긴급 시장점검회의를 개최하고 “한국의 실물경제·금융시장 여건에 비해 낙폭이 과도한 측면이 있다”고 평가했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우리 경제가 안정적인 성장 기조를 유지하고 있고, 대외 악재에 대응할 충분한 역량을 갖추고 있는 만큼 시장 참여자들의 냉정하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앞서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정부세종청사에서 확대간부회의를 열고 “24시간 모니터링 체계를 유지하면서 필요시 컨틴전시 플랜(상황별 대응계획)에 따라 긴밀히 공조·대응해 달라”고 지시했다.

이광수 이의재 기자 g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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