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증시 덮친 검은 월요일…한‧일‧대만 나란히 낙폭 최대
미국의 경기침체 공포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증시를 덮쳤다. 증권시장이 열리지 않은 주말 사이 몸집을 불린 공포와 우려는 월요일 개장하자마자 주식 시장을 내리눌렀다. 한국‧일본‧대만 등 아시아 주요 증시는 5일 일제히 급락하면서 모두 역대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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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보다 더한 ‘검은 월요일’ 왔다
5일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234.64포인트(8.77%) 하락한 2441.55에 거래를 마쳤다. 2600선과 2500선이 연달아 무너지면서 거래를 일시 중단하는 서킷브레이커까지 발동됐지만 한때 2400선까지 내려가기도 했다. 종가 기준으로 비교해 코스피는 역대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이날 코스닥 지수도 88.09포인트(-11.3%) 하락하면서 691.24로 마감했다.
2일 하루에만 나스닥 지수가 2.43% 급락하는 등 ‘검은 금요일’ 이후 주말이 지났지만, 미국보다 먼저 개장한 아시아 증시에선 급락이 이어졌다. 일본에 덮친 ‘검은 월요일’의 그림자는 한국보다 어두웠다. 이날 일본 증시 대표 주가지수인 닛케이225 평균주가(닛케이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4451.28포인트(12.4%) 급락한 3만1458.42에 마쳤다.
1987년 ‘블랙 먼데이’보다 낙폭 커
닛케이지수의 낙폭은 1987년 10월 20일 이른바 ‘블랙 먼데이’ 때의 낙폭(3836)을 뛰어넘는 사상 최대다. 하락률로 따지면 블랙 먼데이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닛케이지수 선물매매를 일시 중단하는 서킷브레이커까지 발동됐지만, 코스피와 마찬가지로 사상 최대 폭의 하락을 막지 못 했다.
대만 증시도 역대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대만 가권지수는 이날 전 거래일보다 1807.21포인트(8.35%) 하락한 1만9830.88로 장을 마쳤다. 가권지수를 처음 산출한 1967년 이후 가장 큰 낙폭이다. 특히 가권지수의 30%가량을 차지하는 대만반도제조유한공사(TSMC)가 9.7% 하락하는 등 대만 경제를 지탱해온 반도체주를 중심으로 매도세가 커지면서 증시가 흔들렸다.
유로존의 600개 대형주로 구성된 유로스톡 600은 이날 개장과 동시에 2.3% 하락으로 출발하는 등 유럽도 미국발 경기침체 우려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아스트리스 어드바이저리의 닐 뉴먼 투자전략 헤드는 “1987년 대폭락의 분위기가 재현되고 있다. 무자비한 날”이라고 평했다. 블룸버그도 “투자자들이 보유 주식을 무자비하게 내던지고 있다”며 “증시가 자유낙하를 했다”고 전했다.
미국 경기침체 우려가 발단
원인은 복합적이다. 일차적으로 미국 경기침체 우려로 시장엔 주식 등 위험자산에 대한 불안감이 커졌다. 2일 발표된 고용통계에서 지난달 미국의 실업률은 4.3%로 전월 대비 0.2%포인트 치솟아 2021년 10월(4.5%)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취업자 수도 예상치를 크게 하회하는 등 고용 지표가 줄줄이 악화하면서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한 금리 인하가 늦었다는 지적이 나왔다.
엔화 가치의 상승도 일본을 비롯한 전 세계 증권시장의 낙폭 확대를 불러왔다. 미국의 금리 인하가 예고된 상황에서 일본 중앙은행인 BOJ는 지난달 31일 정책금리를 0.25%로 올렸다. 일본의 나홀로 금리 인상에 지난달 중순까지만 해도 달러당 160엔대를 오가던 엔화 가격은 이날 달러당 142엔대까지 올랐다.
엔화 강세에 아시아 증권시장 불안
미국과 일본의 금리 격차가 축소한 데 따라 엔캐리트레이드 청산(엔화로 사들인 해외 자산을 되파는 현상)이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는 점이 증시의 변동성을 높이는 요인으로 꼽힌다. 해외에 투자한 일본 자금이 이제 해외 주식 등 투자자산을 팔고 본국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엔화 강세로 인해 일본의 수출 실적이 하락할 것이라는 우려에 더해 엔화 강세 때 팔고 나가 차익을 보겠다는 매도세까지 더해졌다”며 “기본적으로 미국 경기침체 우려가 해소돼야 세계 증시가 안정을 찾을 것으로 보이는데 향후 미국 경제 관련 지표에서 긍정적인 시그널이 나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그동안 글로벌 증시를 이끌어온 엔비디아·애플 등 미국 인공지능(AI) 빅테크 기업의 실적에 대한 우려와 ‘AI 거품론’도 하락의 빌미로 작용했다. AI는 올해 미국의 경제 성장을 견인했지만, 뚜렷한 수익 모델이 자리 잡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중동 내 지정학적 긴장감도 시장의 불확실성을 키우는 재료로 꼽힌다.
외국인 매도세에 원화 하락
한편 미국의 금리 인하 전망으로 상승했던 달러 대비 원화 가격은 하락(환율은 상승) 전환했다. 이날 오후 3시30분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당 원화 가격은 1374.8원을 기록했다. 이날 개장 때까지만 해도 달러 약세 영향으로 1359원대에 시작했는데 주식 시장에서 외국인 매도세가 거세게 나타나면서 원화 가격이 내려간 영향이다. 이날 외국인은 코스피에서 1조5282억원을 순매도했다.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자 중동 정세 불안에도 불구하고 국제유가는 하락했다. 영국 런던 ICE선물거래소에서 브렌트유 10월 선물은 장중 배럴당 75.4달러대까지 떨어지면서 1% 이상 하락했다. 지난해 12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정진호 기자 jeong.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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