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문제를 생각하며 김민기 선생을 기리다 [세상읽기]
이철희 |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국가미래전략원 인구클러스터장
지난 7월21일 김민기 선생이 세상을 떠났다. 그저 그의 노래에 빚진 팬의 한 사람으로서 선생의 예술과 생애를 기리는 긴 대열에 별로 보탤 것은 없다. 그러나 청년 예술인에게 아낌없이 기회를 주어 그들의 재능을 꽃피우게 했던 선생의 헌신은 인구 문제를 연구하는 필자에게도 큰 울림을 주어 주제넘은 글을 쓰게 한다.
대학로 학전블루소극장이 올해 3월15일 문을 닫게 되면서, 김민기 대표가 지난 33년 동안 어떻게 수많은 젊은 예술인을 길러냈는지 상세히 조명된 바 있다. 과거 단원들은 학연이나 지연 없이 잠재력을 인정받아 선발되고, 경험과 준비가 부족했음에도 세심하고 체계적인 훈련을 통해 성장했으며, 투명하고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극단에서 “매달 통장에 급여가 들어오는 기적”을 경험했던 시절을 추억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젊은 예술인은 자신의 재능을 확인하고, 키우고, 인정받을 때까지 힘들고 배고프고 앞날이 보이지 않는 시기를 견디어 내야 한다. 김민기라는 거목의 서늘한 그늘 속에서 이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젊은 연극 지망생들은 이제 대한민국의 대중문화를 대표하는 나무로 우뚝 서 있다. 그러지 못했던 단원들도 선생과의 만남을 통해 본인의 적성과 능력을 확인하고 더 잘 맞는 인생길을 찾아 떠날 힘을 얻었으리라 짐작한다.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길을 찾고 가진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청년에게 주는 일은 오늘날 한국 사회의 중요한 과업이다. 오래전부터 진행된 가파른 출생아 수 감소로 한국의 청년인구는 빠르게 줄어, 25년 안에 35살 미만 노동인구가 현재의 절반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청년에게 의존하는 업종은 큰 타격을 받을 것이고, 학습 능력과 이동성이 높은 인력이 줄어들면서 노동시장의 기능과 산업 경쟁력도 떨어질 것으로 우려된다.
문화예술 분야가 받을 충격도 클 것이다. 필자의 최근 연구 결과를 보면 인구변화로 인해 2042년까지 스포츠·오락 관련 서비스업과 방송통신업의 35살 미만 노동 공급이 각각 36%, 47% 감소하리라 전망된다. 이는 최근 5년 기간 관찰된 각 산업의 사정이 유지된다는 가정에 기초한 결과이다. 만약 근래의 경향처럼 이 분야 젊은 인력의 처우, 근로 여건, 장래 전망이 악화된다면 청년 인력이 사라지는 속도는 더 빨라질 것이다. 세계적인 수준으로 도약한 한국의 문화예술 산업은 가까운 장래에 ‘우수한 젊은 인력’이라는 핵심 인프라의 붕괴에 직면할 수 있다.
젊은이가 빠르게 줄어드는 충격을 줄이기 위해서는 이들의 역량이 낭비됨 없이 활용될 수 있어야 한다. 그 중요한 조건은 젊은이에게 거듭 기회를 주는 너그러운 사회로의 전환이다. 수많은 젊은이가 자기의 적성과 재능을 알기도 전에 전공·진로 선택에 내몰리고, 잘못된 것으로 확인된 선택을 되돌리기 어려운 사회에서는 아까운 역량과 노력이 낭비될 수밖에 없다. 좋아하지도 잘하지도 않는 공부나 일을 억지로 계속해야 하는 국가의 개인은 불행하고 사회는 비효율적이다.
교육, 훈련, 작업 등의 과정에서 청년에게 다양한 기회를 줌으로써 각 분야가 필요로 하는 재능과 적성을 갖춘 인재를 선별하고 육성하는 일은 인구변화 대응에 꼭 필요한 공공재이다. 그런데 근래에 단행된 과학기술과 문화예술 분야의 대규모 예산 삭감은 정부가 이 역할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지 의심하게 한다. 예컨대 정부는 올해 영화발전기금을 작년 대비 40% 넘게 삭감했다. 이로 인해 독립예술영화 제작 지원이 축소되고, 과거 봉준호, 최동훈 감독을 포함한 한국 영화 발전의 주역들을 배출한 한국영화아카데미의 예산도 감액되었다. 젊은 영화인들은 그만큼 기회를 잃을 것이고 한국 영화산업의 기반도 흔들리게 될 것이다.
김민기 선생의 노래가 주는 위안과 성찰도, 그를 자양분으로 성장한 배우들이 출연한 영화와 드라마를 보면서 팍팍한 세상살이를 잠시 잊을 수 있는 여유도, 한국의 국민소득에 제대로 반영되기 어렵다. 문화예술의 산업적인 가치를 떠나서 시민들의 소박한 행복을 위해서라도 젊은 예술인을 키워내기 위한 선생의 노력은 계승되어야 할 것이다. 선생의 유일한 정규음반에 수록된 노래의 마지막 구절이 필자에게는 청년의 삶을 꽃피우라는 그의 조용한 외침으로 들린다.
누가 망쳤을까 아가의 꽃밭/ 누가 다시 또 꽃 피우겠나/ 무궁화 꽃 피워 꽃밭 가득히/ 가난한 아이의 손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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