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에 대한 새로운 정의'에 딱 맞는 책

박은선 2024. 8. 5.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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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우 도서평론가가 추천한 김승섭 교수의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

국민들의 독서력 향상을 위해 기획한 대한민국 독서 캠페인 2024리딩코리아(CJB청주방송)를제작하면서 선정한 도서 11권을 한 권씩소개합니다. <기자말>

[박은선 기자]

 
- 이전 기사 정재승, 김겨울 외 5인이 추천한 11권의 책에서 이어집니다. 

김승섭 교수의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 는 이권우 도서평론가가 추천한 책입니다. 김 교수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공중보건학자로 사회역학을 연구합니다. 사회역학은 질병의 '원인의 원인'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지요. 질병의 사회적 원인을 찾아내고 질병이 생기게 만드는 부조리한 사회구조를 바꿔 사람들이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길을 고민합니다.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
ⓒ 동아시아
김 교수에 대해 여러가지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김 교수는 왜 타인의 고통을 공부하는 길을 선택했을까요.임상의사가 아닌 보건학자의 삶을 선택했던 것은 답답했기 때문입니다. 

'환자를 만나고 차트에 적힌 병력을 읽어보면 가난과 가정폭력으로 인해 우울증이 발생한 게 분명한데, 병원에서는 약으로 이들의 증상을 치료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환자가 돌아가야 할 가정은 과거와 다름없이 폭력적인 공간이었고,병원 사람들은 모두 그녀가 다시 입원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현대의학은 큰 힘을 갖고 있습니다. 우울증 환자도 치료제로 증상을 호전시킬 수 있지요. 그런데 만일 우울증 환자가 증상이 나아져 퇴원할 때, 다시 돌아가야 할 집이 우울증을 생겨나게 했던 과거의 폭력적인 공간 그대로라면 환자는 어떻게 될까요.
김 교수는 이런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질병의 '원인의 원인'을 찾아 나섰고 임상의를 마다하고 보건학자의 길을 개척했습니다.

김 교수가 말하는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는 책상 앞에서만 할 수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침몰하는 배에서 친구를 잃은 생존 학생과 동료를 잃은 생존 장병의 이야기를 들어야 했고, 화재 진압 과정에서 동료를 잃고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로 인해 고통받는 소방공무원의 목소리를 기록했습니다. 

비과학적 낙인으로 삶을 부정당하는 성소수자들의 집회에 함께하는 일도 계속해야 했지요. 김 교수는 그렇게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며 공부해온 기록을 책으로 썼습니다. 지금까지 <아픔이 길이 되려면>과 <우리 몸이 세계라면>,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를 썼고,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는 한국 사회에서 대중을 상대로 지금의 자신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책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책을 읽는 내내 두 가지 문장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차별은 공기처럼 존재한다...
지워진 존재.
 
하루에도 몇 번씩 사용하던 '정상'이라는 단어를 얼마나 조심스럽게 써야 하는 말인지 한참 생각해보게 되더라고요. 내가 그동안 당연하게 '정상'이라고 생각해왔던 제도나 인식같은 것들이 장애인이나 성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들에게는 거꾸로 심각한 차별로 작동하는 일들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사례들이 넘쳐납니다. 김 교수 스스로도 장애인과 관련한 연구 과정에서 장애인의 현실을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경우가 있었다고 할 정도였지요. 설문조사에 응해준 장애인들에게 감사의 마음으로 편의점 기프티콘을 제공했답니다. 그런데 막상 기프티콘을 받은 휠체어 장애인은 편의점에 있는 문턱 때문에 편의점에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이 뒤늦게서야 생각났다고 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차별이 공기처럼 존재하는 삶을 살고 있었네요.

애초부터 응답받지 못하는 고통도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지워진 존재였으니까요. 성소수자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고 건강 상태가 어떠한지를 연구하려면 연구자가 탐구할 수 있는 자료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성소수자와 관련된 공공 데이터가 없다고 하지요. 외국의 연구자들은 공공 데이터를 이용해 성소수자가 살아가는 환경과 건강을 분석하고 그들에게 필요한 정책과 법을 제시하는 근거로 사용하는데, 한국에는 그런 데이터가 없다는 겁니다.

성소수자 인권운동을 하는 활동가가 중앙 부처의 공무원에게 들었다는 질문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성소수자가 진짜로 차별을 받아요? 차별을 받는다는 근거가 있나요?"

측정 되지 않아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 우리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응답 받지 못하는 고통, 지워진 존재들입니다.

그렇다면 이권우 도서평론가는 왜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를 추천했을까요. 저는 그 답이 <책읽기의 달인, 호모 부커스>에 있다는 것을 알았지요. 이권우 평론가는 <책읽기의 달인, 호모 부커스>에서 서경식 교수 이야기를 꺼냅니다. 

서경식 교수는 재일조선인으로 <나의 서양미술순례>, <디아스포라 기행> 등을 통해 이 땅의 지식인들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디아스포라의 시선을 알게 하셨지요. CJB 라디오가 <디아스포라 기행>을 이 달의 책으로 정해 정독한 덕분에 제 마음의 스승으로 모시는 분입니다.

이권우 평론가는 '고통을 공감하는 상상력의 힘'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서경식 교수가 쓴 칼럼 덕분에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합니다. 책을 그렇게 많이 읽고 사람들에게 매일같이 책 이야기를 하는 이권우가 큰 깨달음을 얻었다니, 야단스럽게 왜 이러실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속으로 피식 웃음도 났지요. 대체 이권우 평론가에게 큰 깨달음을 준 대목이 뭘까 궁금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서경식 교수는 '현대인에게 요구되는 교양은 타자에 대한 상상력이다'라며 상상력을 발휘해야 하는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상상력'은 이권우 평론가도 그동안 숱하게 이야기해 온 단어였지요. 디지털 혁명 시대에는 상상력이 중요하다, 상상력을 키우려면 책을 읽어야 한다는 말은 너무 당연했고, 그 누구도 딴지 거는 일 없이 무난했던 독서론이었지요. 

그런데 바로 이 '타자에 대한 상상력'이란 문장이 사고를 일으켰습니다.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까지 했으니 사고가 났다 할 만도 하지요. 이권우 평론가는 '우리가 만약 폭탄 공격을 당하는 쪽의 고뇌와 아픔을 상상할 수 있다면 전쟁에 저항하고 평화를 쌓는 첫 걸음을 뗄 수 있을 것'이라는 대목에 이르러서 '아, 나는 참된 사람이 되려면 멀었구나. 고작 현실 법칙에서 벗어나는 것을 상상력이라 여겼으니, 내 지적 능력이란 고작 대학 교양 과목의 문학개론 수준에 멈춘 것이 아닌가' 하셨다는군요. 한 마디로 대오각성했다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내 생각은 바뀌었다. 디지털 혁명의 시대에도 책은 읽어야 한다. 상상력을 익히고 키우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그 상상력이란 무엇인가. 바로 겪어보지 않고도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이다. - 책읽기의 달인, 호모 부커스
 
강연장에서 만나는 사람들마다 한결같이 물어오는 게 독서의 좋은 점,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 같은 질문이었을텐데, 대한민국 1세대 도서평론가답게 단번에 깨우침을 주는 답변을 내놓아야 했겠지요. 

그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디지털 혁명의 시대에도 상상력을 키우려면 책은 읽어야 한다고 강변해왔겠습니까. 그러면서도 내심 탐탁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서경식 교수의 '현대인에게 요구되는 교양은 타자에 대한 상상력이다'는 문장이 새로운 답을 찾는 열쇠가 되었던 거죠. 그래서 평론가는 왜 이 시대에도 여전히 책을 읽어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합니다. "타인의 고통을 상상하는 힘을 키우기 위해서"라고요.

왜 이 시대에도 여전히 책을 읽어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나는 너무 늦게 새로운 답을 얻었다. 굳이 정리하자면, 타인의 고통을 상상하는 힘을 키우기 위해서이다... 그렇다면 이제 좋은 책의 개념이 바뀌어야 한다. 고통받는 이의 눈물에 공감하고 함께하도록 이끄는 책이라고 말이다. 아, 우리는 너무 쉽게 둔감해졌다. 소통하고 공감하려는 의지를 너무 일찍 버렸다. ...다시 우리는 상상하는 사람이 되려고 애써야 한다. -  책읽기의 달인, 호모 부커스
 
어떠세요. 김 교수의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가 우리에게 전해주는 느낌과 너무 비슷하게 느껴지지 않으십니까?

이권우 도서평론가는 '디지털 혁명의 시대에도 책을 읽어야 한다. 상상력을 익히고 키우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그 상상력이란 무엇인가. 바로 겪어보지 않고도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이다'라고 독서를 새롭게 정의했지요. 도서평론가 이권우가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를 추천한 것은 당연했습니다.

이권우 도서평론가를 만난 지는 꽤 오래되었습니다. 청주방송 라디오가 개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책 프로그램을 기획하다가 <어느 게으름뱅이의 책읽기>가 출간된 것을 알고 작가를 찾았는데, 바로 이권우 도서평론가였지요.

퇴근 시간 대에 책 이야기를 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책 제목을 그대로 따와서 <어느 게으름뱅이의 책읽기>로 프로그램 제목을 붙였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인연은 시작되었지요. 책 읽는청주 캠페인 기획에도 큰 도움을 받았고, 2022년에는 대한민국 독서캠페인 리딩코리아를 함께 시작했습니다.

리딩코리아를 시작한 2022년 노명우 교수가 <라이더가 출발했습니다>를 추천했습니다. 이 책은 청년 배달 노동자들의 잇따른 죽음에 의문을 가진 두 기자가 배달 노동 현장에 직접 뛰어들어 현장의 사정을 들여다보고 체험한 기록입니다. 배달 분야 외에도 우리의 일상 곳곳에 자리한 플랫폼 기업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전해주었죠. 

노명우 교수는 이 책을 읽어주는 게 이 분들이 계속 취재와 연구를 할 수 있게 해주는 힘이라고 강조하며 책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김 교수도 비슷한 이야기를 합니다. 한 인터뷰에서 김 교수는 "독자들이 저를 지켜주셨어요. 책을 많이 읽어주신 덕분에, 그를 통해 이웃들을 지켜낸 이야기도 많았어요. 그래서 더 노력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깊이 감사합니다"라고요. 타인의 고통을 내 것처럼 느낄 순 없지만 공감하고 싶은 사람은 이 책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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