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대선 앞두고 '대화' 꺼낸 김정은…"대 이어 상대할 적" 핵도 흔들었다

박현주 2024. 8. 5.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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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3년여만에 직접 "대화"를 언급했다. "대화도 대결도 우리의 선택으로 될 수 있다", "대화를 하든 대결을 하든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해야 한다"면서다. 지난 2일(현지시간) 미국에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간 대진표가 확정되자 11월 대선을 앞두고 본격적인 '판 흔들기'에 나서겠다는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지난 4일 평양에서 열린 신형 전술탄도미사일 무기체계 인계인수기념식에서 연설하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노동신문. 뉴스1.


3년만에 '대화' 언급 왜


5일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정은은 전날 평양에서 진행된 신형 전술탄도미사일 발사대 인계인수식 연설에서 "대화도 대결도 우리의 선택으로 될 수 있지만, 우리가 보다 철저히 준비되어있어야 할 것은 대결이라는 것이 30여년간의 조미(북·미)관계를 통해 내린 총화"라고 말했다. 또 "대화를 하든 대결을 하든 강력한 군사력 보유는 주권국가가 한시도 놓치지 말고 또 단 한걸음도 양보하지 말아야 할 의무이며 권리"라고 말했다.

앞서 김정은이 미국과 대화를 직접 언급한 건 2021년 6월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미국과 대화와 대결에도 다 준비돼 있어야 하며 특히 대결에는 더욱 빈틈 없이 준비돼야 한다"는 게 마지막이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5일 "신형 전술탄도미사일 무기체계 인계인수기념식이 지난 4일에 진행됐다"면서 "중요군수기업소들에서 생산된 250대의 신형 전술탄도미사일 발사대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경제1선부대들에 인도되는 의식이 수도 평양에서 거행됐다"라고 보도했다. 노동신문. 뉴스1.


김정은이 대결에 방점을 찍으면서도 3년만에 다시 '대화'를 수면 위로 띄운 건 트럼프 당선 가능성까지 포함, 미 대선 국면에서 몸값을 올리기에 적기라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는 "미국 대선 구도가 해리스 대 트럼프로 잡히면서 김정은 입장에선 이제는 움직일 때라고 판단한 것"이라며 "과거에 그랬듯이 이번에도 미국 대선이 다가올수록 다달이 존재감을 키워나가기 위한 로드맵을 이미 마련해뒀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그러면서도 김정은이 대화를 하더라도 "강력한 군사력 보유"는 양보할 수 없다는 취지로 말한 건 핵 보유, 즉 비핵화 문제는 협상 테이블에 올릴 수 없다는 기존 입장을 다시 확인한 것으로 보인다. 혹여 트럼프가 당선돼 다시 정상회담 등 대화의 문이 열리더라도 비핵화 협상이 아닌 핵군축 협상을 하겠다는 취지다.

북한은 지난달 23일 조선중앙통신 논평에서도 트럼프를 향해 "공은 공이고 사는 사"라며 "미국은 조미 대결사의 득과 실에 대해 고민해보고 옳은 선택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우리 후손도 상대할 적대국"


동시에 김정은은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미국이 결코 몇 년 동안 집권하고 물러나는 어느 한 행정부가 아니라 바로 우리의 후손들도 대를 이어 상대하게 될 적대적 국가"라고도 지적했다. 김정은이 이날 '미래 세대의 아이콘'인 딸 주애를 데리고 나온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김주애가 관영 매체에서 식별된 건 지난 5월 평양 전위거리 준공식 참석 이후 83일만이다. 그러면서도 북한 매체들은 주애에 대한 내용을 따로 보도하지는 않았다.
5일 조선중앙통신이 공개한 신형 전술탄도미사일 무기체계 인계인수식 행사 사진에 나타난 김주애.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미국과의 대화에 미련과 여지를 보이면서도 핵은 포기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대대손손 미국을 '적대국'으로 인식하겠다는 김정은의 발언은 그 자체로 대미 협상과 관련한 그의 복잡한 심경을 드러낸다. 오바마-트럼프-바이든 행정부를 거치며 자신이 직접 겪은 북·미 대화 실패의 트라우마를 여전히 되새기고 있다는 점을 드러낸 것으로도 풀이된다.

김정은도 꺼낸 '힘에 의한 평화'


김정은은 또 이날 "강력한 힘의 구축으로 담보되는 것이 바로 진정한 평화"이라며 "우리의 힘은 지속적으로 진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트럼프 측에서 앞세웠던 문구인 '힘에 의한 평화'는 윤석열 정부의 대표적인 대외 기조이기도 하다.

이런 가운데 김정은까지 '힘에 의한 평화'를 꺼내든 건 최근 한·미가 핵협의그룹(NCG) 가이드라인을 완성하자 이를 불법 핵 개발의 명분으로 삼는 동시에 한국 내 여론을 갈라치기하려는 목적으로 풀이된다.

김정은은 2023년 공개한 자체적인 국가 핵무기 종합 관리 체계인 '핵방아쇠' 체계를 기반으로 각종 핵무기 운용 훈련을 하고 있는데, 이런 공세도 더욱 노골화할 수 있다. 김정은은 이날 연설에서도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는 보다 완비되고 보다 향상된 수준의 핵역량태세 구비" 등을 주문했다. 미 대선을 전후로 7차 핵실험을 실시할 가능성도 있다.


수해에도 끄떡없다 과시


전문가들은 기념식이 열린 타이밍도 주목한다. 최근 큰 수해가 있었고, 아직 복구에 한창이기 때문이다. 미 대선 스케줄을 의식하는 동시에 이달 예정된 한·미 '을지 자유의 방패'(UFS) 연습을 앞두고 기선 제압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김정은이 지난달 28일 SUV를 타고 평안북도의 침수된 도로를 지나며 피해 상황을 살피는 모습. 노동신문. 뉴스1.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8월 UFS에 맞서 북한도 상대를 초토화시킬 수 있는 무기를 대량 생산해서 완전히 배치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카드로 이번 행사를 준비한 듯 하다"며 "이후 예기치 못한 대규모 수해가 났지만, 그래도 강행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북한이 과거 코로나19 기간에도 미사일 도발을 이어갔듯 이번에도 수해에 개의치 않는 의연한 모양새를 연출하며 내부 결속을 도모할 거란 관측이 나온다. 신무기를 내세워 민심 이반을 막으려는 의도로도 읽힌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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