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곡에 사는 가재를 꼬시는 엉뚱한 노래
[강등학 기자]
▲ 계곡이 아이들-우리는 전투 중이에요 계곡에서 아이들이 한창 물싸움을 즐기고 있다. 유튜브 <브로웍스> 캡처 |
ⓒ 유튜브 <브로웍스> |
그러나 가재를 그리 쉽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혹 도망갈까 하는 마음에, 또는 물이 흐려지면 보이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조심스레 돌을 들추지만, 그때마다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기 일쑤다. 그래도 아이들은 기대를 놓지 않는다. 아이들이 가재잡이에 부르는 '털털이 가재야'도 이런 마음의 노래다.
털털이 가재야
느그 엄마 죽었다
머리 풀고 나오너라
- <한국민요대전 – 경상북도민요해설집>, MBC, 1996, 경북 경주
가재를 잡을 양으로 돌을 들춰보며 부른다. 가재를 '털털이 가재'라고 했다. 털털이는 성격이나 행동이 까다롭지 않고 수더분한 사람을 말한다. 가재에게 수더분하다고 한 것은 성격이 좋다고 하며 가재를 어르고 구슬린 말이다. 자신의 말을 잘 따르게 하기 위함이다.
노래는 가재를 어르고 난 뒤 바라는 바를 말했다. 가재 더러 나오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노래는 가재에게 우격다짐으로 다짜고짜 나오라고 하지 않았다. 네 엄마가 죽었다고 전하며 머리 풀고 나오라고 했다. 가재가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을 설정한 것이다. 나름 꾀를 낸 것인데, 논리와 발상이 엉뚱하다.
▲ 잡은 가재가 손 위에 한 어린이가 잡은 가재를 손위에 올려놓고 살펴보고 있다. 유튜브 <초등생활 고은TV> 화면 캡처. |
ⓒ 유튜브 <초등생활 고은TV> |
가재는 춤추고
게는 장구치고
- 김소운, <조선구전민요집>, 1933, 황해북도 평산.
가재의 긴 수염을 잡고 부른다. 수염 잡힌 가재가 다리를 꼬불거리는 모습을 보려는 것이다. 다리 꼬불거림을 춤추는 것으로 설정하고, 그에 걸맞게 게에게 장구를 치라고 했다. 계곡에는 가재뿐 아니라 게도 살기에 자연스레 둘을 연계한 것이다. 춤에는 장단이 필요한데, 동심의 정황적 논리가 그럴듯하다.
아이들이 가재를 놀리는 노래는 다른 것도 있다. 가재를 잡아 바닥에 뒤집어 놓으면 가재는 발을 허우적거리다가 입에서 흰 거품을 낸다. 이런 모습을 보려고 할 때 아이들은 '나그네 왔다 밥해라'를 부른다.
중 왔다 죽 쒀라
나그네 왔다 밥해라
- 김소운, <조선구전민요집>, 1933, 함경남도 안변
가재가 내는 흰 거품을 밥물, 또는 죽물이 끓어 오르는 것으로 보았다. 이런 설정으로 중에게 죽을 쒀주고, 나그네에게 밥을 해주라고 했다. 과거로 보면 집에 문득 찾아오는 손님은 보통 중 아니면 나그네다. 예전에는 이런 뜨내기 길손에게도 밥 때가 되면 식사를 대접했다. 여기서 중과 나그네를 끌어들인 것은 가재가 거품을 내야 하는 나름의 이유를 대기 위함이다.
아이들은 모친상, 춤판, 손님 접대 등의 신(scene)을 설정하고, 가재가 해당 역할을 수행토록 했다. 바라는 바는 따로 있지만, 그것을 직설적으로 말하지 않고 가재에게 극성을 부여해 노래로 표현한 것이다. 소박하지만 상황극과 다름없다. 이로써 아이는 캐릭터가 된 가재와 소통을 이룬다. 가재와 함께 하는 놀이판을 마련한 것이다.
여름방학이 되면 이러저러한 단체들이 캠프를 운영한다. 캠프 프로그램 중에는 거의 대부분 '도랑치고 가재잡기' 하는 식으로 가재잡이가 들어있다. 그런가하면 가족캠핑장의 홍보에도 함께 즐기기의 아이템으로 가재잡이를 내세우는 곳이 많다.
올여름에도 계곡의 아이들은 가재잡이를 체험놀이로 즐길 것이다. 그러나 근래 가재잡이는 대부분 잡고 관찰하는 실용적 체험에 치중되어 있다. 어쩐지 무언가 건조해진 느낌이다. 문화가 빠지고 기능만 남은 셈이다.
어른들의 관심이 필요하다. 요즘 아이들은 감성이 발랄한 만큼 올여름 가재는 새로운 캐릭터로 변신할 수도 있지 않을까? 가재를 '춘식이' 친구로 삼는다면 아이들은 어떤 서사를 만들어낼까? 문득 떠오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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