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지원금 25만원 받고 전세금 1억원 오르면?
분수효과 논쟁이 다시 가열되고 있다. ‘전 국민 25만원 지원’을 골자로 한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위한 특별조치법안’이 지난 3일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다. 법안에 반대해온 국민의힘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고,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은 반대표를 행사했다.
이번에 통과한 법안은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지역사랑상품권을 소득 수준에 따라 25만~35만원어치 지급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재명 전 민주당 대표가 대표발의한 민주당 ‘당론 1호’ 법안이다. 지급액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했고, 소요 예산은 13조원가량으로 추산된다.
모든 국민에게 1인당 25만원 이상의 지원금을 지급해 저소득층의 생계를 돕고, 이들이 소비를 늘리도록 해 내수 경기에도 활기를 불어넣겠다는 것이 야당의 주장이다. 경제학자 케인스의 이론대로 불황 극복을 위해 민간소비를 끌어올려야 한다는 분수효과를 염두에 둔 셈이다. 케인스는 총수요의 구성요소인 민간소비, 민간투자, 정부지출, 순수출 등 가운데 비중이 가장 큰 민간소비를 끌어올려야 불황을 이겨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소득이 낮은 계층일수록 세금 감면이나 정부 지원금을 받으면 곧바로 소비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저소득층과 중산층의 소득을 늘리면 소비증대→생산증가→투자 확대 등의 선순환을 이끌 수 있다는 논리다. 민주당이 "민생회복지원금은 현금이 아니라 지역사랑상품권으로 지급되고, 내수를 진작해 민생회복은 물론 정부가 펑크 낸 세수도 회복할 수 있는 경제정책"이라고 주장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저소득층·중산층에 대한 감세·지원금으로 발생하는 정부 세수 결손은 법인세, 누진소득세, 주택보유세 등 부유층에 대한 증세로 메우려는 것도 민주당의 기본적인 경제정책 방향이다. 분수효과를 노린 정책은 경제가 부진하거나 불황일 때 긴요하게 쓰인다.
그러나 분수효과를 꾀했던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은 실패했다. 부자증세, 정부 주도 일자리 창출, 급격한 임금 인상은 단기적인 수요 창출 효과가 있었지만 심각한 부작용을 가져왔다. 세계적인 물가 상승 흐름과 맞물려 인플레이션을 부추겼고, 종합부동산세를 비롯한 주택보유세 인상은 집값 상승에 기름을 부었다. 문재인 정부 시기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6억4000만원에서 5년 만에 13억1000만원으로 2배나 뛰었다. 경기 대응 정책을 성장정책으로 접근한 것이 문제라는 비판도 많았다.
이 사이 정부 재정적자는 많이 늘어났다. 2017년 660조원이었던 국가채무는 2022년 1067조원으로 400조원 넘게 늘어났다. 지난해와 올해도 세수 부족으로 재정 상황은 더 악화했다. 앞으로 더 심각해질 저출생고령화를 고려하면 미래세대가 짊어져야 할 나랏빚을 무턱대고 쓸 때는 아니다.
이번 ‘전 국민 25만원 지원’을 위해 13조원의 정부 예산을 편성하려면 결국 대규모 국채 발행을 해야 한다. 지역사랑상품권을 몇십만원 받게 된다면 이 돈으로 집에 필요한 생활필수품을 사는 등 긴요하게 쓰겠지만, 결국 미래세대가 갚아야 할 돈이다. 몇 개월 내수를 살릴 수 있더라도 이것은 잠깐이다. 저출생 문제, 잠재성장률 저하 등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언 발에 오줌 누기와 다름없다.
정치권이 민생을 위해 머리를 맞대고 해야 할 일은 다시 뜨거워진 아파트값부터 잡는 일이다. 가계의 가장 큰 부담이 되는 주거비 문제를 줄이지 못한 채 단기적인 가계 지원책만 내놓는다면 우리 경제는 선순환으로 돌아서지 못한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전세제도를 품고 있는 한국 주택 시장 문제는 다른 국가보다 복잡하다. 지금까지 역대 정부가 나서서 부동산 안정 대책을 내놓아도 시장은 반대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았다. 어떤 정부가 정권을 잡더라도 한쪽으로 편향된 시각과 처방으로는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기 힘들다.
여야가 국회에 ‘부동산 특별위원회’라도 만들어 단기·중장기 계획을 마련하는 등 협치를 해보면 어떨까. 아무리 감세를 하고 지원금을 푼다고 해도 집값, 전셋값이 몇 달 만에 1억~2억원씩 오르면 무슨 소용이 있나. 다른 한편으로는 고령화 여파로 머지않아 집값이 폭락한다면 그나마 집 한 채로 버텼던 중산층은 어떻게 되겠나. 부동산시장이 중장기적으로 일본의 전철을 밟을 것이란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공급대책, 수요관리대책 등을 종합적이고 지속적인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치권이 부동산정책만큼은 서로의 간극이 크더라도 허심탄회하게 머리를 맞대보면 어떨까.
조영주 세종중부취재본부장 yjch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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