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자핸드볼, '어게인 우생순' 어려워진 이유

이준목 2024. 8. 5.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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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감독 선임에도 파리 올림픽 8강 진출 실패... 냉정한 현실 진단 필요

[이준목 기자]

 3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사우스파리 아레나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핸드볼 여자 예선 덴마크와의 경기에서 패배한 한국 선수들이 서로를 격려하고 있다.
ⓒ 연합뉴스
 
2024 파리 올림픽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의 유일한 단체 구기종목으로 출전한 여자핸드볼 대표팀마저 세계의 벽을 넘지못하고 조별리그에서 일찍 탈락했다. 

한국 여자핸드볼 대표팀은 지난 4일(한국시간) 여자핸드볼 조별리그 A조 최종전에서 덴마크에 20-28로 패했다. 이로써 한국은 1승 4패를 기록하며 골 득실에서 밀려 8강행에 실패했다.  

여자핸드볼은 한때 국제무대에서 한국 구기종목의 '자존심'이었다. 첫 출전한 1984년 LA 대회를 시작으로 지난 1984년 LA 대회부터 이번 파리 대회까지 무려 40년간 11회 연속 올림픽 본선에 오르는 역사를 썼다. 여자핸드볼로는 세계 최초이자, 현재 대한민국의 모든 올림픽 단체 구기종목을 통틀어도 최장 기간 연속 출전 기록이다. 

또한 여자핸드볼은 1988년 서울 대회에서 한국 올림픽 구기 최초의 금메달을 획득했고, 1992년 바르셀로나 대회에서는 2연패를 달성했으며, 은메달 3개와 동메달 1개까지 총 6개의 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밖에도 세계선수권 우승 1회, 아시아선수권 우승 16회, 아시안게임 금메달 7회 등을 달성했다.

이러한 여자핸드볼의 저력이 더욱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대한민국 인기 4대 프로스포츠(야구, 축구, 농구, 배구)에 비해 열악한 인프라와 비인기 종목 이미지로 인해 '한데볼(춥고 힘든 종목)'이라는 오명 속에서 이룬 성과였기 때문이다. 2004년 아테네 대회에서 감동적인 은메달을 따낸 일화는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으로 제작돼 흥행에 성공하며 '우생순 신드롬을 불러오기도 했다.

투자·지원 늘었지만, 성적은 역주행

하지만 2010년대 이후 여자핸드볼의 '화양연화'는 서서히 내리막길을 걸었다. 2008년 베이징 대회 동메달을 끝으로 한국은 더 이상 올림픽 메달을 추가하지 못했다. 2012 런던 대회 4강→ 2016 리우 대회 10위→ 2020 도쿄 대회 8위에 이어 8년 만에 다시 조별리그 탈락의 아픔을 피하지 못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과거에 비해 핸드볼에 대한 투자와 지원은 늘었음에도 오히려 성적은 역주행했다. 

2008년 '우생순 신화' 이후 국내 굴지의 대기업인 SK그룹이 대한핸드볼협회 회장사를 맡으면서 대대적인 투자가 이뤄졌다. 대한핸드볼협회는 지난해 사단법인 한국핸드볼연맹(KOHA)을 출범시키고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초대 총재를 맡았다. 실업리그로 운영하던 핸드볼 코리아리그는 '핸드볼 H리그'로 개편하며 3년 내에 완전한 프로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밖에 해외 심판 도입과 체계적인 경기 데이터 축적 등 사실상 프로리그에 준하는 다양한 지원과 시스템 구축이 이루어졌다. 파리 올림픽에서 선수단 분위기를 끌어 올리기 위해 승리 수당 제도를 추가하며 올림픽 포상 기준도 강화했다.

핸드볼 국가대표팀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남녀 모두 파리 올림픽을 앞두고 국제경쟁력 강화를 목표로 외국인 감독 선임을 단행했다. 남자 대표팀은 홀란도 프레이타스(포르투갈), 여자 대표팀은 킴 라스무센(덴마크)과 헨릭 시그넬(스웨덴) 등 유럽 감독들을 연이어 선임했으며, 해외 전지훈련과 평가전을 통해 경기력을 끌어올리고자 노력했다.

그럼에도 성과는 미미했다. 라스무센 여자 대표팀 감독은 2022 아시아선수권 우승과 선수들의 신뢰에도 불구하고 핸드볼협회와의 불화로 8개월만에 석연치 않게 경질됐다. 후임으로 지난해 4월 선임된 시그넬 감독은 8월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파리 올림픽 아시아예선에서 일본을 꺾고 파리 올림픽 본선 티켓을 따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한 달 뒤 열린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결승에서 일본에 10골차로 완패하며 금메달 3연패를 놓쳤다. 2023 세계선수권에서는 22위라는 충격적인 성적을 기록하며 한국 여자핸드볼 역대 최악의 성적을 경신하는 수모를 당했다. 프레이타스 감독이 이끈 남자 대표팀도 아시아 예선에서 한 수 아래로 꼽히던 중동 국가와 일본에게 고전하다가 2012년 런던 대회 이후 3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8강 진출 실패가 보여준 여자핸드볼의 현주소
 
 1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사우스 파리 아레나6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핸드볼 여자 조별리그 A조 한국과 스웨덴의 경기. 한국 신은주가 슛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번 파리 올림픽을 앞두고 여자핸드볼 대표팀에 쏟아진 관심과 기대는 남달랐다. 여자핸드볼을 제외하고 축구, 농구, 배구, 하키 등 한국의 단체 구기종목들의 올림픽 본선 출전이 모조리 좌절되며 외롭게 홀로 남은 탓이다. 아시아 팀 중에서 파리 올림픽 출전권을 따낸 여자핸드볼팀도 한국이 유일했다. 선수들에게는 부담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상대적으로 인기 구기종목들에 비해 늘 소외받던 관심을 돌리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도 있었다.

냉정히 말하면 처음부터 전망은 밝지 않았다. 한국은 본선 조 추첨에서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독일, 슬로베니아 등과 A조에 편성되며 유럽 강팀들에 둘러싸이는 험난한 대진운 속에 최약체로 꼽혔다. 현실적으로 한국은 특유의 끈질긴 핸드볼과 영리한 움직임을 바탕으로 2승 이상을 거두어 8강 진출을 노린다는 목표를 세웠다. 

한국은 1차전에서 예상을 깨고 독일을 잡는 이변을 일으키며 8강행에 대한 희망에 가까이 다가가는 듯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돌풍은 거기까지였다. 한국은 슬로베니아,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에 차례로 무너지며 4연패 수렁에 빠졌다. 특히 유력한 1승 제물이었던 슬로베니아에게 7점차로 덜미를 잡힌 게 뼈 아픈 치명타로 돌아왔다. 슬로베니아가 이번 대회에서 유일하게 승리한 팀이 한국이었다.

한국은 독일, 슬로베니아와 나란히 물고 물리며 1승 4패 동률을 이뤄 골 득실로 4위를 가려야 했다. 독일은 한국에 패하고도 골득실에서 +2를 기록하며 8강행 막차를 탔다. 한국은 -26, 슬로베니아는 -31로 조 5위와 6위에 그쳤다. 8강 진출에 실패하면서 한국의 최종 순위는 전체 출전국 12개국 중 10위로 2016년 리우 대회와 동일했다.

지난 세계선수권에 이어 현재 한국 여자핸드볼이 세계 무대와의 격차가 더 벌어졌다는 것을 확인한 대회였다. 한국 핸드볼은 200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유럽 팀들에 비해 체격 조건은 밀려도 스피드와 조직력, 활동량, 전술 등으로 약점을 커버하며 대등하게 맞설수 있었다. 

하지만 2010년대 이후로 유럽 강호들이 파워에 스피드를 겸비하기 시작하면서 국제무대에서 한국의 비교 우위는 점점 사라졌다. 유럽파 외국인 감독을 영입하며 이런 약점을 보완하려고 했지만, 시그넬 감독은 선수 선발과 전술 면에서 여러모로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평가다. 

더 넓게 보면 핸드볼이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유럽과 달리, 한국에서는 여전히 비인기 종목으로 선수 저변을 넓히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게 가장 근본적인 문제다. 이번 대회에서 한국 대표팀의 해외파는 34세의 노장인 류은희(헝가리 교리) 한 명에 불과했다. 우빛나(서울시청), 전지연(삼척시청), 김다영(부산시설공단) 등이 이번 대회에서 세대교체의 가능성을 보여줬지만, 개인기량에서 유럽 선수들에 비해 특출한 선수는 보이지 않았다. 

김연경(배구), 박지수(농구)처럼 국제무대에서도 인정받을 만한 세계적인 선수가 부족하다는 것, 신체 조건과 경험에서 유럽 선수와 격차가 더 벌어지고 있다는 것은 한국 여자핸드볼의 고민거리다. 체력, 힘, 기술의 삼박자에서 더 이상 유럽팀들을 따라잡지 못하는 현재의 한국 여자핸드볼에게 '우생순 신화'의 재현이란 그저 흘러간 추억일 뿐이다. 

아시아 무대에서도 라이벌 일본의 성장세가 매섭다는 것을 고려하면 4년 뒤에는 올림픽 본선 진출조차 장담할 수 없다는 게 한국 여자핸드볼의 현주소다. 불운한 대진운과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졌잘싸'로 선전한 선수들의 투혼에는 박수를 보내야 하지만, 한편으로 이번 대회의 실패를 냉정하게 진단하고 혁신하려는 노력도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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