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민철·이강원 등…일본 사로잡은 한예종 발레 무용수들
지난 3~4일 일본 도쿄 신국립극장 오페라 팰리스에서 발레 갈라 공연 ‘발레 아스테라스 2024’가 열렸다. 1814석의 오페라 및 발레 전용극장인 오페라 팰리스에서 열린 이 공연은 신국립극장이 전 세계 발레단에서 활약하는 일본인 무용수들을 자국에 소개하기 위해 2009년 시작해 매년 8월 초 열린다. ‘아스테라스(asteras)’는 라틴어와 그리스어의 조어(造語)로 ‘별들’이란 뜻을 담고 있다. 일본인 무용수 외에 세계적인 발레 스타와 발레학교도 종종 초청된다.
14회째인 올해 ‘발레 아스테라스’는 이다 가츠히로가 지휘하는 도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라이브 연주와 함께 신국립극장 발레단 수석무용수 2명, 발레연수소 학생 10명과 함께 6개국 9개 발레단의 일본인 무용수과 그 파트너 등 16명 그리고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이하 한예종)이 초청됐다.
한예종은 김용걸 교수가 안무한 ‘산책(Une Promenade)’ ‘선입견(The Prejudice)’과 ‘라이몬다’ 3막 중 장 드 브리엔 바리에이션 등 3개 작품을 선보였다. ‘산책’에는 최근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 입단이 결정된 전민철(한예종 3학년)과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출신 김지영이 출연했고, ‘선입견’에는 한예종을 졸업하고 독일 아우구스부르크 발레단에서 활동하다 돌아온 안세원이 나왔다. 그리고 ‘라이몬다’ 3막 중 장 드 브리엔 바리에이션은 지난해 잭슨 국제발레콩쿠르 주니어 남자 부문 은상을 차지한 이강원(한예종 2학년)이 연기했다.
‘발레 아스테라스’에 발레학교가 초청되는 것은 신국립극장 발레연수소 때문이다. 2001년 설립된 신국립극장 발레연수소는 일본에서 유일한 국립극장 부속 발레 무용수 육성기관이다. 그동안 러시아 바가노바 발레 아카데미, 캐나다 국립발레학교, 이탈리아 라 스칼라 발레학교 등이 초청받은 바 있다. 신국립극장은 근래 뛰어난 무용수를 많이 배출한다는 평가를 받는 한예종 무용원을 초청하기 위해 지난해 직접 방문하기도 했다.
그런데, 김용걸 교수가 이끄는 한예종 팀은 ‘발레 아스테라스’ 개막을 열흘도 채 남지 않았을 때 난관에 부딪혔다. 오는 9월부터 파리오페라발레 단원으로 활동하는 이예은과 파리오페라발레 주니어발레단에 입단하는 이준수가 프랑스 취업비자 수속 문제로 공연 기간 일본에 갈 수 없게 된 것이다. 여기에 지난해 잭슨 국제발레콩쿠르 시니어 여자 부문 동상을 받은 이윤주(한예종 3학년)가 부상을 당했다. 결국 예정했던 4개 작품 가운데 이준수가 출연하는 ‘그랑파 클래식’ 중 바리에이션이 취소되는 한편 ‘산책’ ‘선입견’에 각각 해당 작품 참여 경험이 있는 김지영과 안세원이 급하게 이름을 올리게 됐다.
전민철은 이틀간의 공연이 끝난 뒤 “김지영 교수님과 이번에 처음으로 함께 춤을 췄다. 김 교수님 덕분에 두 무용수가 호흡을 맞추며 춤춘다는 느낌을 경험한 것이 개인적으로 일본 공연의 소득이었다”고 밝혔다. 또 이강원은 “신국립극장의 연습실과 공연장 환경이 너무 훌륭해서 부러웠다. 특히 국내에서와 달리 갈라 공연에 (MR이 아니라) 실력있는 오케스트라의 라이브 연주와 함께한다는 게 정말 좋았다”고 덧붙였다.
프로그램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지만 한예종의 공연은 이틀 내내 일본 관객의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첫날 공연이 끝난 뒤 한국 무용수들의 사인을 받기 위해 극장 앞에서 기다리는 관객도 있었다. 전민철은 “일본 관객은 한국 관객처럼 열광적인 환호를 보내지는 않지만 무용수를 존중하며 공연에 집중하는 게 느껴졌다”고 소감을 밝혔다. 또 둘째날 공연에 온 무용학자 가와시마 교코 아토미대학 교수는 “첫날 공연을 본 발레 팬들 사이에서 한국 무용수들의 기량과 작품을 칭찬하는 내용이 SNS에 많이 올라와서 궁금했었다. 실제로 보니 기대보다 훨씬 좋았다”고 말했다.
이틀간 신국립극장에서 만난 일본 발레계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한국 무용수들을 칭찬했다. 오쿠라 사치코 신국립극장 발레연수소장은 “프로 발레단에서 활동한 두 발레리나는 물론이고 아직 학생인 두 발레리노의 테크닉과 표현력이 프로 못지 않게 훌륭하다”고 말했고, 영국 로열발레단 수석무용수 출신으로 현재 신국립극장 발레단 예술감독인 요시다 미야코는 “최근 뛰어난 한국 무용수들이 많이 나오는 이유가 궁금하다. 한예종을 비롯해 한국의 발레 교육은 엄격한가?”라며 되물었다.
‘발레 아스테라스’ 공연 내내 김용걸 교수의 안무에 대해서도 호평이 이어졌다. 일본 무용수들이 모두 외국 안무가의 유명 레퍼토리를 선보인 것과 달리 한예종은 3편 가운데 2편을 김용걸 안무작으로 구성했다. 이번에 게스트로 초청된 세계적 발레리나 알리나 코조카루(현 함부르크 발레단 객원 수석)는 “‘산책’이란 작품이 인상적이었다. 정교하고 아름다운 움직임과 함께 예상을 깨는 전개와 유머가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가와시마 교코 교수는 “발레의 발전을 위해 좋은 무용수뿐만 아니라 좋은 안무가가 많이 나와야 한다. 이런 갈라 공연에서 한국 안무가의 작품을 선보일 만큼 한국에서는 일본에 비해 발레 안무가가 많이 나오는 것 같다”고 밝혔다.
한예종이 ‘발레 아스테라스’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한국과 일본의 발레 교류 활성화를 바란다는 목소리가 많이 나왔다. 1967년 일본 안무가 고마키 마사히데 안무로 ‘백조의 호수’의 한국 첫 전막공연이 이뤄졌을 때 주인공으로 참여해 임성남 당시 국립발레단장과 춤췄던 오카모토 가쓰코 일본발레협회 회장은 이날 한국과 일본 발레의 깊은 인연을 강조했다. 오카모토 회장은 한국 출신으로 제2대 일본발레협회장과 신국립극장 초대 예술감독을 지낸 시마다 히로시(한국명 백성규)의 발레단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그는 “반세기도 전에 서울에서 ‘백조의 호수’ 공연에 오딜로 출연했었다. 당시 한국에서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셨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회고했다. 또 김용걸 교수는 “한국에게 일본은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한다. 이웃 나라지만 많은 것이 다르며, 불편한 과거사도 있다”면서도 “하지만 예술은 두 나라를 하나로 이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발레는 그런 역할을 하기에 제격이다. 앞으로 양국간 발레 교류를 이어가고 싶다”고 밝혔다.
특히 이틀간의 공연이 끝난 뒤 열린 친목 모임에서 후지와라 아키오 일본 문부성 사무차관, 이나다 토모미 발레문화진흥추진의원연맹 회장 등 정·관계 인사들과 오카모토 가쓰코 일본발레협회 회장, 아다치 에츠코 도쿄시티발레단 예술감독 등 일본 발레계 인사 그리고 한국에서 온 최태지 전 국립발레단장 등은 하나같이 내년 한·일 수교 정상화 60주년을 맞아 발레를 필두로 예술 분야의 교류를 기대했다. 후지노 다다유키 신국립극장 상무이사는 “‘발레 아스트라스’에 한예종을 초청한 것은 내년 한·일 수교 정상화 60주년 앞두고 먼저 양국간 교류를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면서 “지금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지만 신국립극장은 내년에 한국의 예술의전당, 국립극장 등과 교류하기 위한 준비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내년만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양국의 주요 공연장 사이에 교류가 이어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도쿄=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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