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 정당' 국민의힘, '주말 정당' 민주당 [기자수첩-정치]
합동연설회 일정을 주중 평일에 치러
평일 마음대로 연차 낼 수 없는 계층의
국민들에 과연 국민의힘은 열려 있는가
정치권이 전당대회로 여름 폭염만큼이나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한동훈 대표와 나경원 의원,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 사이의 '사생결단'식 당권 경쟁으로 눈길을 끌었던 국민의힘 7·23 전당대회는 얼마전 막을 내렸고, 지금은 김민석·강선우·김병주·민형배·이언주·전현희·한준호·정봉주 최고위원 후보 간의 각축전이 치열한 더불어민주당 8·18 전당대회의 시간이다.
여야 양당의 전당대회를 지켜보다보면 주목할만한 차이점이 눈에 띈다. 양당 모두 권역별 순회 합동연설회를 하는 것은 같다. 다만 국민의힘은 모든 일정이 평일에 진행된다. 민주당은 반대로 모든 일정이 주말·휴일에 진행된다.
국민의힘은 첫 권역별 합동연설회를 광주·전남북에서 지난달 8일 월요일에 시작했다. 이어 부산·울산·경남 합동연설회를 10일 수요일에, 대구·경북 합동연설회를 12일 금요일에 가졌다. 주말·휴일은 건너뛴 뒤, 15일 월요일에 대전·세종·충남북에서 합동연설회를 했고, 서울·인천·경기에서는 17일 수요일에 합동연설회를 열었다. 전당대회 본 대회도 평일인 23일 화요일에 거행됐다.
반면 민주당은 첫 권역별 합동연설회를 제주·인천에서 지난달 20일 토요일에 열었다. 이튿날인 21일 일요일에는 강원과 대구·경북에서 연설회를 했다. 주중 평일은 건너뛰고 다시 돌아온 주말인 27일 토요일에 부산·울산·경남, 28일 일요일에 충남북에서 연설회를 가졌다. 이후 역시 주중 평일엔 연설회 일정을 잡지 않았고, 주말인 3일 토요일에 전북에서, 4일 일요일에 광주·전남에서 연설회를 했다. 전당대회 본 대회도 오는 18일 일요일이다.
평일 대낮에 정당 합동연설회에 참석할 수 있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국민의힘 대구·경북 합동연설회가 열린 엑스코에서 만난 분들은 남녀 공히 은퇴자가 많았다. 그외 여성은 전업주부, 남성은 상공인과 자영업자가 많았다. "가게 잠시 보라고 하고 왔다" "공장이 창원에 있는데 부산 연설회날은 다른 일정이 있어 오늘 보러 왔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정당의 주된 지지 기반이 상공인과 자영업자, 연금생활자와 주부여서 안된다는 말은 아니다. 이들은 어느 나라에서나 보수 정당의 주된 지지층이다. 독일의 자유주의적 보수 정당인 자유민주당(FDP)도 상공인과 자영업자가 핵심 지지층이다.
다만 지지층이 이에 국한돼서는 곤란하다. 독일 자민당은 다당제·의원내각제·연동형 비례대표제가 결합한 독일 정치의 특수한 환경에서 10% 초반의 득표만 확실히 올린 뒤 기민당·사민당과의 연립을 통해 집권을 노리는 정당이라, 상공인·자영업자 등 특정 계층의 지지만 굳건히 지키면 된다. 양당제와 대통령제인 우리나라 정치 여건에서 국민의힘은 그럴 수 있는 정당이 아니고 그래서도 안된다.
양당제인 미국·영국에서 보수 정당은 상공인·자영업자·연금생활자·주부를 주된 지지층으로 삼으면서도 끊임없이 지지층의 외연 확장을 노리고 있다. 특히 산업구조 변화로 소외되고 있는 비정규직·임시직·일용직 근로자는 보수 정당의 주된 타깃이다.
미국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대선후보는 부통령 후보로 J. D. 밴스를 지명했다. 밴스는 몰락한 오대호 공업 지대(러스트 벨트)의 파탄난 백인 근로자 가정 출신이다. 고졸로 일단 미군에 모병 입대해 5년간 복무했다가 전역한 뒤에나 제대군인 혜택으로 주립대에 진학한 전형적인 '자수성가 흙수저'다.
영국 보수당의 보리스 존슨 전 수상은 정치적 승부수였던 2019년 서민원 해산과 조기 총선 때 산업구조 변화로 몰락한 잉글랜드 북중부의 근로계층에 주목해 이른바 '레드 월'을 때려부쉈다. 1차대전 종전 이후 100여 년만에 처음으로 보수당 후보가 당선된 지역구가 30여 곳에 달했다.
지금 우리나라의 밴스, 우리나라의 '레드 월' 근로자가 있어 국민의힘 책임당원으로 입당해 전당대회, 합동연설회에 가보려 한다고 해도 모든 일정이 주중 평일에 진행되는 것을 본다면 어떤 느낌일까. 주중 평일에 마음대로 연차를 낼 수 없는 계층의 국민들에게 국민의힘 전당대회 일정은 과연 열려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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