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계절의 흐름 속에서

2024. 8. 5.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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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가 그치고 맑은 날이 이어진다.

장마는 여름의 기상 현상이지만 한국어는 장마 곁에 계절을 뜻하는 접미어 '철'을 붙여 장마를 하나의 작은 계절로 간주한다.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영원할 것 같던 더위를 견디다 보면 추운 날씨가 어느새 도래하며 한 해가 간다.

이런 날씨를 더는 인간의 몸으로 감각할 수 없는 날이 찾아온다는 것은 봄이 가면 여름이 온다는 사실만큼이나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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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오 시인


장마가 그치고 맑은 날이 이어진다. 장마는 여름의 기상 현상이지만 한국어는 장마 곁에 계절을 뜻하는 접미어 ‘철’을 붙여 장마를 하나의 작은 계절로 간주한다. 그래서인지 장마가 여름에 속한다기보다 장마라는 껍질이 여름을 한 겹 덮고 있는 것 같다.

어느덧 8월이다. 계절의 변화라는 것이 매번 놀랍다.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영원할 것 같던 더위를 견디다 보면 추운 날씨가 어느새 도래하며 한 해가 간다. 여름의 하루하루를 정신없이 살아가다 보면 어느 아침 현관문을 열었을 때 코끝을 스치는 찬 공기의 촉감에 놀라게 될 것이다. 예측할 수 없는 삶의 모든 풍경들 가운데 계절의 변화는 잔인할 만큼 확실하고 그것은 마치 모든 이에게 죽음이 찾아오는 것처럼 공평하다. 기후위기로 인해 2080년부터 지구는 인류가 살기 어려운 날씨가 될 것이라고 한다. 환경을 위해 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을 해나가고 있지만 겪어보지 않은 세계의 모습이 아직은 상상하기 어렵다.

장마철의 습도 속에서 괴로워하다 마주한 맑은 하늘과 구름이 아름다워 요 며칠 오래 걸었다. 앞으로 몇 번이나 이렇게 찬란한 하늘을 마주할 수 있을까. 삶이라는 것이 너무나 유한하다는 생각을 하다 보면 흐린 날씨조차 제대로 느끼지 않고 흘려보내기 어렵다. 특히 요즘처럼 좋은 날씨 속에서는 생의 마지막 순간을 떠올리게 된다. 이런 날씨를 더는 인간의 몸으로 감각할 수 없는 날이 찾아온다는 것은 봄이 가면 여름이 온다는 사실만큼이나 분명하다. 사랑하는 가족들, 친구들의 얼굴 하나씩 잃어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때가 되면 우리는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 우리 자신이 계절의 흐름에 속하게 될 것이다. 나와 가족과 친구가 더 이상 구별되지 않는 몸으로 날씨의 일부가 될 것이다. 그 역시 아름다운 일일 테지만 겪어보지 않은 날씨처럼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인간의 몸을 가진 지금 하루하루의 날씨를 아끼며 살아가기로 한다.

김선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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