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 플라스틱은 공공의 적인가?
이제 인류 생존 위협하기 시작
오염문제 해법 나라마다 달라
파리기후협약 답보상태 빠져
한국은 11월 부산 INC 주최국
이상·현실 균형잡을 책임 있어
2008년 7월 핵무기를 능가하는 초자력무기가 세계의 절반을 소멸시켰다는 설정에서 시작하는 1970년대 일본 만화영화 ‘미래소년 코난’에는 충격적인 장면이 나온다. 지각변동에서 겨우 살아남은 도시국가 인더스트리아에서는 식량 문제 해결을 위해 플라스틱을 가공해 빵을 만든다. 덕분에 폐플라스틱을 수집하는 일이 초반 줄거리 전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실제로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한 제빵 기술은 아직 개발되지 않았다.
1968년작 미국 영화 ‘졸업’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주인공 벤(더스틴 호프먼 분)의 대학 졸업 축하 파티에 초대받은 한 사업가가 사회 초년생 벤에게 충고를 한다.
“네게 딱 한 마디만 하마. 플라스틱! 플라스틱산업에 엄청난 미래가 있어. 잘 생각해 보거라. 꼭 그럴 거지?” 요즘 인공지능이 그렇듯 당시 플라스틱은 물질문명의 새로운 아이콘이었고, 물질 만능주의가 만연한 미국 사회에서 돈을 벌고 싶다면 플라스틱 사업에 뛰어들라는 진심 어린 조언이었다.
그런 플라스틱이 공공의 적이 됐다. 특히 코로나19를 거치며 급증한 플라스틱 쓰레기가 기후변화 못지않게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폐플라스틱으로 인한 환경 오염을 막기 위해 유엔(UN)도 발 벗고 나섰다.
2022년 3월 유엔 환경총회는 2024년 타결을 목표로 플라스틱의 생산에서부터 소비와 폐기까지 전 생애주기에 걸친 구속력 있는 국제협약 추진을 위해 정부간협상위원회(INC)를 출범시켰다. 지난해 9월 1차 초안(Zero Draft)이 나온 데 이어 12월 1차 초안 수정안이 나왔다. 5차 INC가 올해 11월 말 부산에서 개최된다.
INC 안팎에서의 논의를 살펴보면 백가쟁명이 따로 없다. 주요국들은 INC에 참가하면서도 장외에 별도의 국가 간 협의체를 만들어 자국 입장 관철을 위해 애쓴다. 최대 쟁점은 협약의 구속력 여부다. 유럽연합(EU)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교토의정서에서 시도된 국가별 감축의무 할당제와 같은 강력한 이행 방식 도입을 원한다.
미국과 일본은 물론 사우디아라비아 등 주요 산유국도 파리기후협약에서 시도된 국가별 자발적 감축 목표제와 같은 유연한 방식을 선호한다.
구속력 여부가 쟁점이 되는 이유는 플라스틱의 생산 감축 문제 때문이다. 플라스틱의 원료인 석유와 천연가스를 생산하는 산유국은 플라스틱 제품의 직전 단계인 고분자 화합물 합성 폴리머 생산 규제에 강하게 반대한다. 최대 플라스틱 생산국이자 소비국인 미국과 중국도 비슷한 입장이다.
EU는 폴리머 생산 감축, 우려 화학물질 생산 제한, 문제성 플라스틱 제품 사용 제한, 미세플라스틱 배출 제한, 무역제한 조치 도입, 바이오 플라스틱 활성화 등 가장 적극적으로 의제를 제시한다. 폐플라스틱으로 인한 오염 문제와 씨름하는 저개발국, 특히 쓰레기 섬 문제로 고통받는 여러 도서국은 해양 오염 문제 해결에 필요한 돈과 기술 이전을 바란다.
이런 동상이몽 속에서 올해 안에 플라스틱 협약이 타결될지는 불투명하다. 그럼에도 의미 있는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협상 참여국들은 온실가스 ‘감축’에만 초점을 맞췄던 교토의정서가 실질적으로 폐기되고, 그 후속인 파리기후협약의 국가별 이행이 답보 상태에 빠진 현실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플라스틱 제품의 감축(reduce), 재사용(reuse), 재충전(refill), 수리(repair)에 국제사회가 공동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맞다. 동시에 과연 플라스틱 재사용품, 재활용품, 대체품은 다른 공해나 폐기물을 만들어내지 않는지, 일회용 플라스틱 제품 사용을 줄이고 다회용품을 사용하는 것이 능사인지 차분히 따져봐야 한다.
폐플라스틱 공해는 인류의 실존적 문제다. 그렇다고 플라스틱이 주는 편의성과 범용성의 가치를 깎아내려서도 안 된다. 대체 물질이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플라스틱 감축을 무리하게 추진하다 더 큰 부작용과 맞닥뜨릴 수 있다. 전 생애주기에 걸쳐 플라스틱과 헤어질 결심을 섣불리 하기에 앞서 현재의 과학기술로 무엇을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지 냉정히 따져보자. 세계 4위 플라스틱 수출국이자 세계 3위 1인당 플라스틱 소비국인 우리나라는 플라스틱 오염 종식 노력의 분수령이 될 이번 유엔 회의 주최국으로서 어깨가 무겁다.
구민교(서울대 교수·행정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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