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경 칼럼] 민심은 법불아귀를 원한다
이원석 검찰총장은 휴일에도 출근해 후배 검사들이 작성한 공소장을 고쳐준 선배였다. 혹사한 오른손 엄지손가락 연골은 닳아 없어졌다. 골프 대신 산책을 하고, 술자리와 호텔 식사는 피한다. 염결(廉潔)한 수도승처럼 살았다. 다음 달 15일 퇴임하는 그는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를 특별대우한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을 질책했다. 그가 인용한 법불아귀(法不阿貴), “법이 권력에 아부하면 안 된다”는 한비자의 서늘한 경구(警句)가 회자되고 있다.
김 여사는 온 세상을 시끄럽게 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으로 고발된 지 4년3개월, 명품백 수수 사건으로는 5개월 만에야 검찰 조사를 받았다. 소환 장소도 피의자인 자신이 지정한 대통령경호처 부속 청사였다. 검사들은 휴대폰을 맡겨놓고 들어가 조사했다. “여사가 검사를 소환했다”는 조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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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 여사 소환 조사 방식 특혜 비판
제2부속실 최종 해결책 될 수 없어
한동훈 “국민 눈높이” 올바른 방향
법에 앞서 상대 인정하는 정치를
」
윤 대통령은 ‘용산’에 협조적인 인물로 중앙지검장을 바꿨고, 박성재 법무부 장관은 이 총장의 정당한 수사지휘권 회복 요청을 거부했다. 이 총장은 중앙지검장으로부터 사후보고를 받는 패싱을 당했고, ‘용산’의 심기를 건드린 죄로 “배신자” 소리까지 들었다. 지금이 어떤 상황인가. 거대야당은 검수완박에 나섰고 검찰을 공소청으로 격하시킬 태세다. 이 판에 검찰이 ‘법불아귀’의 원칙을 허물고 민심을 성나게 하는 건 스스로 무덤을 파는 일이다. “법 위에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민주공화국이 무너진다”고 한 이 총장의 고언을 경청해야 한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도 ‘검사 소환’ 조사에 대해 “국민 눈높이를 더 고려했어야 했다”고 비판했다. ‘법불아귀’의 입장에 선 것이다.
윤 대통령이 제2부속실을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권력의 무게중심이 한 대표로 이동했기에 벌어진 지각변동이다. 하지만 김 여사발(發) 논란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비선 측근들이 건재하기 때문이다. 김 여사의 진정한 사과와 반성이 변화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김 여사는 명품백 사건으로 한 번은 한 대표에게, 한 번은 검사에게 사과했다. 이건 ‘황제 사과’다. 국민을 상대로 직접 사과해야 한다. 김 여사는 대선 전에 자신에게 비판적인 언론을 상대로 “내가 정권 잡으면 (거기는) 완전히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권력이란 게 잡으면 수사기관이 알아서 입건하고 수사한다. 그래서 무섭다”라고 했다. 그런 심리 상태였기에 소환 장소를 스스로 결정한 것이 아닐까. 그 마음이 변하지 않는다면 제2부속실은 ‘6상시(常侍)’의 소굴이 될 것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은 1997년 초 한보 사태의 배후로 지목돼 검찰 수사를 받았지만 무혐의로 풀려났다. 당시 대통령-민정수석-법무장관-검찰총장-대검중수부장은 PK 일색이었다. 민심은 “봐주기 수사 아니냐”고 들끓었다. 정권은 최병국 중수부장을 ‘국민검사’ 심재륜으로 교체했다. 적당히 수사하는 척하면서 민심을 달래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심재륜은 타협하지 않았다. “고시 합격 전에 동거하던 여자의 협박을 받고 있다”는 마터도어, 돈다발 매수 유혹을 받았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마침내 서울대 교수들이 대통령 하야 성명을 발표하고 거리로 나온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정권은 “김현철을 빨리 구속시키자”는 쪽으로 급선회했다. 검찰은 별건수사를 통해 현직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을 알선수재와 조세포탈 혐의로 구속했다. 천하의 김영삼도 두 손을 든 법불아귀였다. 분노한 민심의 뇌관(雷管)을 건드리면 어느 정권도 무사할 수 없다. 여소야대의 어려움 속에서도 민심 수습과 국정 운영에 올인하는 윤 대통령은 이 위험천만한 고비를 국민 눈높이에 맞춰 지혜롭게 넘겨야 한다.
위구르족은 법률을 “문자로 기록해 놓은 경전(經典)”이라며 숭배했다. 그들의 종교인 마니교는 신(神)을 “모든 법률의 왕”이라고 했다. “그가 부르칸의 법률을 확정했으므로 우리는 슬픔과 비탄으로부터 면제된다”는 찬송가를 불렀다. 많은 피를 흘린 끝에 체득한 유목민의 경험칙이다. 그런데 법이 사람을 차별했다면 과연 ‘경전’의 지위를 획득할 수 있었을까.
지금 이 나라는 법조인 천하다. 대통령과 여야 대표, 유력 대권주자, 61명의 국회의원이 법률가다. 이들은 정치를 수사로, 송사(訟事)로 둔갑시키고 있다. 정치적 의도를 품고 “법대로 하자”고 들이대면 세상은 난장판이 되고, 법불아귀는 공염불이 된다. 싸움판이 된 국회 법사위가 그 증거다.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라고 했다. 최후의 수단인 법을 동원하기에 앞서 양심과 윤리로 파국을 막고, 상대를 인정하는 타협의 정치가 회복돼야 한다. 한 대표가 법의 언어, 법의 논리가 아닌 “국민 눈높이”를 내세운 것은 백번 잘한 일이다. 이로써 한동훈은 ‘조선제일 검(劍)’에서 정치인으로 거듭났다. 다만 가혹하게 칼을 휘둘렀던 업보를 씻고 민생을 위한 포용력을 보여줘야 한다. 성공한다면 이재명 방탄 수렁에 빠져 민심과 멀어진 야당을 압도할 수 있다.
이하경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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