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철의 시시각각] 6년의 실험, 다시 원점에 선 대법원
2000년대 이후 대법원 구성을 다양화 하라는 목소리가 커졌다. 한마디로 남성 엘리트 판사 외에 여성·재야 변호사도 대법관에 기용하라는 요구다. 2004년 여성 최초 대법관이 탄생하고(김영란 대법관) 가끔 판검사 출신 변호사나 법대 교수도 임명됐지만, 재조 경력 없는 재야 변호사에게 대법원 문턱은 높았다.
김선수 변호사는 다소 독특한 이력을 가졌다. 윤석열 대통령과 동기(서울대 법대 79학번)인 김 변호사는 학생운동 중 검거돼 강제징집됐다. 제대 후 고시를 준비해 2년 만에 사법시험(27회)에 수석 합격했다. 연수원을 마친 뒤 곧장 인권변호사인 조영래 변호사 사무실에 취업했다. 이후 30년간 노동과 시국 사건에 매진하며 민변 회장도 역임했다. 그를 법정에서 자주 상대한 변호사는 “점잖게 사나웠다”고 회고했다. 언성을 높이지 않으면서도 법리와 팩트로 매섭게 상대를 몰아붙였다고 한다. 최초로 경찰이 불허한 집회에 대해 법원에서 집행정지를 받아냈고, 서울대병원 근로자 1000명의 법정수당을 받아내는 등 새로운 판례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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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야 출신 김선수 대법관 1일 퇴임
극단 주장 vs 신선 자극…평가 교차
후임은 다시 현직, 다양성 아쉬워
」
대한변협은 2015년 순수 재야 변호사로는 처음으로 김 변호사를 대법관 후보로 천거했다. 임용되면 홀로 대법원에 들어가 엘리트 법관들을 설득할 실력과 강단을 갖춰야 하는데, 김 변호사가 제격이라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대법원은 완강하게 외면했다. 변협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김 변호사를 천거했다. ‘선수는 상수’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결국 2018년이 돼서야 대법원이 문을 열었다.
그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시선을 의식해야 했다. 취임사에서 “정치적 고려를 일절 하지 않고 다른 견해에 대해 열린 자세로 경청하고 공정한 결론에 이르도록 노력하겠다”고 선언했다. 경조사도 챙기지 않을 만큼 스스로를 외부와 차단했다. 동료 대법관들이 수긍할 논리를 만들기 위해 밤을 새웠다. 사건 처리도 뒤처지지 않아야 했다. 자연스럽게 심리불속행 기각으로 종결하는 사건이 많아졌다. 그에게 기대가 컸던 진보 진영에선 실망스럽다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다.
그래도 주류 법관들 사이에선 극단적 주장이 강하다는 시선이 많다. 특히 재판이나 징계가 진행 중이어도 사표를 내면 선거에 출마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준 ‘황운하 판결’은 두고두고 논란거리다. 법조문상 다른 방도가 없고 입법적으로 풀어야 한다는 설명에도 그 혜택을 황 전 의원과 이성윤 민주당 의원, 이규원 조국혁신당 대변인 등이 누렸으니 뒷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반면에 신선한 자극이었다는 평가도 있다. 재판연구관 출신 중견 판사는 “(그가) 가끔 엉뚱한 질문을 했다”고 기억했다. 엘리트 법관들이 당연하다며 넘어가는 법리에 대해 일반인 시선에서 이유를 물었다는 것이다. 그걸 설명하는 과정에서 전혀 새로운 논점이 나오고, 결국 판례가 바뀌기도 했다고 한다.
6년의 실험이 끝나고 김 전 대법관은 지난 1일 퇴임했다. 그는 퇴임사에서 “한 사회의 포용력 수준은 가장 취약한 계층에 속한 사람들이 받는 대우의 수준에 비례하고, 그 수준을 높이는 것이 법원의 핵심 역할”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역할에 대해선 “평생 법대 위에서 사회 현실을 간접 체험한 동료 대법관들에게 법대 아래에서 전개되는 구체적 사회 현실, 특히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가 겪는 차별과 소외를 잘 전달해 올바른 판단에 도움을 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후임은 다시 현직 법관으로 채워졌다. 재판 지연 문제를 해결하려면 엘리트 법관이 필요하다는 현실론이 다양성 요구를 압도한다. 입법권력을 휘두르는 야당의 횡포에 대비해 기존 질서를 옹호할 대법관이 절실하다는 정치적 필요성도 커졌다. 하지만 어렵게 만든 대법원 구성 다양화의 경험을 다시 무로 돌리는 점은 여전히 아쉽다. “가장 취약한 계층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사람이 각 부당 1명씩 있으면 좋겠다”는 그의 바람에 대해 다시 한번 사회적 숙의가 이뤄졌으면 좋겠다.
최현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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