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민의 이코노믹스] 최저임금, 공익위원의 논의·투표로 결정하도록 바꿔야
미룰 수 없는 최저임금 결정 구조 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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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대한 구조로 비효율적인 논의
진영 논리 따른 힘겨루기만 반복
노사, 심의 기초자료 논의만 참여
전문가 중심의 결정 구조가 대안
‘임금 최저 수준 보장’ 목적 맞게
경제적 분석으로 정치 배제해야
」
물론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 강력한 의사 표현 수단의 하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 최저임금위원회(최임위)에서 나타나는 투표 거부 행위를 예외적인 상황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상습적으로 발생해 실제로는 현행 제도 내에서는 노사가 스스로 합의를 할 수 없다는 제도적 한계를 그대로 드러낸 현상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게다가 최임위의 이와 같은 파행적 운영은 위원회 내부에서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최저임금을 둘러싼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까지 만들어 내고 있다. 매년 6월 ‘최저 임금 결정 시즌’이 시작되면 최저임금에 대한 극단적인 견해가 난무하고, 여기에 근거 없는 주장을 마구잡이로 보도하는 언론까지 합세해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이 극대화된다.
그렇다면 최임위의 운영이 이처럼 파행을 거듭하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제도를 개선할 여지는 없는 것인가.
최임위 제도 개편은 다운사이징부터
첫째, 현행 최임위는 위원 사이의 간단한 의사소통조차 어려울 정도로 비대하다. 어떤 형태로 제도 개편을 하더라도 위원회의 다운사이징이 선행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최임위는 사용자위원 9명과 근로자위원 9명, 공익위원 9명 등 총 27명으로 이뤄져 있다. 27명이 하는 회의에서 깊이 있는 논의를 통해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최저임금 연구자로 명성이 있는 앨런 매닝(Alan Manning) 런던정경대 교수가 몇 년 전 방한했을 때 한국의 최임위가 27명으로 구성돼있다고 하니 깜짝 놀라며 서로 대화는 가능하냐고 질문한 적이 있었다. 영국의 최저임금 결정 기구인 저임금위원회(Low Pay Commission)의 위원 수는 위원장을 제외하고 7명이다.
27명이 참여하는 최임위에서 밀도 있는 논의를 바라는 것은 허황한 기대다. 회의 참여자 수와 회의의 효율성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우리의 최임위는 회의의 진행과 성과에 있어서 매우 비효율적이라고 예측된다. 예를 들어 해크만과 비드마르(Hackman & Vidmar, 1970)는 집단의 참여자 수를 달리하며 집단의 문제 해결 성과를 측정했다. 집단의 크기에 대한 참여자의 평가 점수를 보여준 데 따르면 집단의 크기가 5명이 넘으면 참여자는 자신들이 속한 집단이 주어진 문제 해결을 하기에 너무 크다고 주로 응답한 반면, 집단의 크기가 4명 아래로 가면 이제는 참여자 수가 너무 작다고 응답한 경우가 더 많게 나타났다. 즉, 참여자의 평가에 따르면 최적의 집단 규모는 4~5명 수준이라는 것이다.
참여자의 수가 많으면 왜 집단적으로 문제 해결이 어려울까. 확률과 통계 공식을 이용해 보자. 27명이 2명씩 짝을 지어 대화한다고 할 때 모든 대화가 이뤄지려면 총 351번이 필요하다. 351번의 대화에는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게다가 2명 끼리 하는 간단한 대화가 아니라 27명이 할 수 있는 가능한 모든 조합의 상호 작용은 1년 내내 회의만 해도 끝이 나지 않을 정도로 많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협상력에 따라 결정되는 최저임금
둘째, 현재 최임위는 마치 일정한 크기의 떡을 사용자와 근로자가 어떻게 나눌 것인가를 결정하는 협상의 테이블처럼 운영되고 있다. 떡의 크기가 고정된 제로섬 게임에서 협상 주체에게 합의할 근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떡을 어떻게 나누는가는 온전히 협상력, 즉 힘의 논리에 의해 결정될 수밖에 없다.
일개 회사의 임금 협상도 이런 식으로 오로지 힘겨루기로만 진행되지는 않는다. 임금 협상에서 사용자는 근로자의 임금을 무조건 낮추려고 하지는 않는다. 임금이 너무 낮으면 근로자가 다른 회사로 이직하는 일이 발생할 것이고, 특히 뛰어난 근로자가 먼저 떠나갈 것이기 때문에 회사는 그만큼 손해를 보게 될 것이다. 또 사용자는 근로 유인을 강화하고 생산성을 올리기 위해 임금을 올리는 때도 있다. 근로자의 경우에도 임금을 무한정 올리려고만 할 수는 없다. 회사가 생존해야 자신의 일자리도 보전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재의 임금이 낮더라도 회사가 성장하며 그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도 임금 협상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즉, 기업의 임금 협상에서는 떡의 크기가 고정돼 있다고 전제돼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노사가 협력을 모색해야만 하는 이유가 분명히 존재한다.
반면 최임위에서 사용자위원과 근로자위원은 이러한 공통의 이해를 공유하고 있지 않다. 이처럼 합의의 근거를 찾을 수 없는 상태에서는 진영과 조직의 원리에 따라 사용자위원은 최저임금의 최소화를, 근로자위원은 최저임금의 최대화를 추구할 수밖에 없다. 매년 최저임금 동결과 대폭 인상으로 시작해 힘겨루기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최임위가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근로자위원과 사용자위원이 서로 다른 이해를 가지고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스스로 공익위원이라고 규정하고 행동해야만 한다. 근로자위원은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추천에 의해 선정되지만 자신을 추천한 단체의 이익만을 추구해서는 사회적 합의의 주체가 될 수 없다. 사용자위원 역시 경영자총협회와 중소기업중앙회의 이익만을 대변해서는 근로자위원의 의견을 진정성 있게 고려하기 어렵다. 최임위는 임금 협상 자리가 아니다. 최저임금 제도는 노사의 자율적인 임금 결정에 국가가 개입해 임금의 최저 수준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이며, 최임위는 이러한 국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최저임금을 의결하는 기구다. 따라서 최임위 위원은 자신이 속한 조직의 목적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목적을 추구해야만 한다.
최임위 위원, 국가의 목적 추구해야
기업의 임금 협상에서 노사가 기업이라는 공동체를 전제하듯이 최저임금 결정에서 노동자와 사용자, 공익 위원은 국가라는 공동체를 전제해야만 한다. 이러한 취지를 반영하듯이 영국의 저임금위원회에서는 노·사·공 3자가 참여하지만 근로자위원과 사용자위원, 공익위원으로 따로 명칭을 구분하지 않고 모든 위원의 명칭을 동등하게 저임금위원회 위원이라고 한 뒤 개별 위원의 위원회 참여 배경이 사용자인지 근로자인지만 표시해 둔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최임위 조직 구성에서부터 공식적으로 노·사·공이 서로 다르게 분류돼 있다.
현실적으로 근로자위원과 사용자위원이 자신이 속한 조직으로부터 완전히 독립적으로 행동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하나의 대안으로 노사는 심의 기간 전반부에만 참여해 임금 실태 분석과 생계비 분석 등 심의 기초자료를 논의하며 노사의 입장에서 최저임금 안을 제출하고, 최종적으로는 공익위원만 남아 이들의 논의와 투표로 결정하는 방식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최저임금의 결정이 실질적으로 공익위원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을 오히려 제도화하고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하는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공익위원의 역할이 커진 만큼 공익위원의 전문성을 현재보다 높은 수준으로 규정하고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공익위원 선임 과정에 노사의 추천을 받는 방식도 충분히 생각할 수 있다.
최저임금은 국가 정책이고 따라서 결정 과정에서 정부의 역할도 그만큼 강화돼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최저임금은 실업급여와 육아휴직급여 등 26개의 법령과 48개의 제도와 연동돼 있다. 또한 근로장려세제나 기초생활보장제도와 같이 간접적으로 연관된 경우도 많다. 즉, 최저임금 결정은 고용노동부만의 일이 아니다. 오히려 기획재정부와 중소기업벤처부, 보건복지부가 더 신경 써야 하는 것일 수 있다. 새로운 최저임금 제도에서는 공익위원의 심의과정에서 관련 부처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
노사 갈등 극대화하는 제도 개편해야
공익위원 위주의 최임위는 공익위원의 전문성을 100% 살릴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영국의 리차드 디킨스 교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다양한 최저임금제도를 비교 검토하면서 전문가가 데이터 분석과 실증적 근거에 기반해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것이 최선의 제도라고 주장했다(Dickens, 2023). 특히 경제의 불확실성과 예상치 못한 경제적 충격에 대해서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전문가 중심 최임위의 가장 큰 장점으로 꼽은 바 있다.
최저임금은 전적으로 경제적 논리와 실증적 근거에 의해서 결정돼야 한다. 최저임금을 노동 시장의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고자 한다면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과 소득 분배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 최저임금을 통해 내수를 진작하려면 최저임금 인상이 소비와 물가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야만 한다. 최저임금은 엄연히 경제 정책이며 경제적 분석이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최저임금 결정에서 가장 배제돼야 할 것은 정치적 영향력일 것이다. 안타깝게도 현재 우리나라의 최저임금 제도는 노사의 갈등을 극대화하고 정치적 영향력에 취약한 구조다. 정치가 혼잡하고 불안하다. 하루빨리 제도 개편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다.
이정민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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