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미미 “파리서 진짜 한국인 됐다”
“에펠탑 아래에서 올림픽 메달이라니, 꿈만 같아요.” 프랑스 파리 샹드마르스 경기장에서 4일(한국시간) 만난 재일동포 유도 국가대표 허미미(22·경북체육회·세계 3위)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는 지난달 30일 이곳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유도 여자 57㎏급 결승에서 금메달 못지않게 값진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가 메달 물꼬를 트면서 한국 유도는 21세기 들어 가장 많은 5개의 메달(은 2·동 3)을 수확했다. 한국은 특히 지난 3일 혼성 단체전 3~4위 결정전에서 독일을 4-3으로 꺾고 동메달로 대미를 장식했다.
허미미는 “개인전 은메달 땐 메달을 놓친 언니·오빠들 눈치가 보여 맘껏 기뻐하지 못했다”며 “단체전에서 우리 대표팀 전원이 시상대에 오를 수 있어 참으로 다행”이라고 말했다. 이어 “생애 첫 올림픽에서 메달 2개(은·동)를 목에 걸어 너무 행복하다”며 “한국행을 만류했던 아빠·엄마, 한국에서 함께 운동하는 여동생(허미오·20)도 ‘태극마크 달길 정말 잘했다’고 축하해 줬다”고 전했다.
2002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6세 때 유도를 시작했고, 일본 전국대회까지 제패했던 허미미는 “손녀가 꼭 한국 대표가 돼 올림픽에 나갔으면 좋겠다”는 할머니(2021년 별세)의 유언을 따르기 위해 한국에 왔다. 그해 현 소속팀에 입단했고, 2022년 2월 태극마크를 달았다. 당시 일본 와세다대 스포츠과학부 1학년이던 그는 한국·일본을 오가며 운동과 학업을 병행했다. 당시 한국말을 거의 못했는데, 일각에선 “일본인인지 한국인인지 모르겠다” “(진천선수촌) 입촌 중에 수시로 해외를 오가는 건 특혜 아니냐” 등 비판도 나왔다.
허미미는 “태어나고 20년간 자란 일본을 떠나 한국에서 적응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며 “스스로 한국 사람인지, 일본 사람인지 정체성에 혼란이 오기도 했지만 나를 편견 없이 받아준 여자 대표팀 김미정 감독님, 소속팀 김정훈 감독님, 대표팀 언니들 덕분에 다행히 적응할 수 있었다”고 털어놨다. 지금은 한국말도 유창해졌고, 한글도 손편지를 쓸 만큼 늘었다. 이중국적자였던 그는 지난해 12월 일본 국적을 포기했다.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일본에서 나고 자랐고 지금은 태극마크를 달고 유도하는 한국인”으로 정의했다.
‘파리에서 파스타 먹기’가 올림픽 전 소원이었는데, 최근 한 레스토랑에서 두 접시나 비웠다는 허미미는 “은메달도 좋지만 역시 금메달이 아니면 만족 못 할 것 같다”고 했다.
이어 “귀국하는 대로 경북 군위의 할아버지(허석 선생) 순국비를 찾아 메달을 걸어드리고 ‘4년 뒤 LA 올림픽에선 꼭 금메달을 따겠다’고 말씀드리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독립운동가 허석(1857~1920) 선생의 5대손이다.
파리=피주영 기자 akap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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