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왜 학교 계세요? 사교육 가면 대박인데"
[서부원 기자]
▲ '1타 강사'들은 아이돌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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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수업 시간에 우연히 알게 된 사실 하나. 요즘 아이들은 독립운동가 이봉창과 김규식은 몰라도 현우진과 정승제는 안다. 학교에서 인터넷 강의가 보편화하면서 이른바 '1타 강사'는 아이돌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장래 희망을 버젓이 '1타 강사'라고 적는 경우마저 드물지 않다.
비유컨대, 이봉창과 김규식을 알기 위해 현우진과 정승제의 도움을 받는 건데, 정작 주객이 전도된 셈이다. 인터넷 강의를 통해 공부한다기보다 마치 그들을 주연 배우로 한 예능 프로그램을 즐기는 모양새다. 그들의 옷차림과 말투까지 따라 하려는 '찐팬'들도 여럿이다.
바야흐로 사교육 강사들의 전성시대다. 강고한 학벌 구조에다 나날이 복잡다단해지는 대입 전형은 그들의 사회적 영향력을 강화하는 기반이다. 게다가 초고속 인터넷과 유튜브라는 플랫폼은 그들의 손에 꽃놀이패를 쥐여준 셈이 됐다. 어느새 공교육은 동네북 신세로 전락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학원 강사는 임용 시험에서 떨어진 예비 교사들의 '임시직'처럼 여겨졌지만, 이젠 옛말이다. 요즘 아이들은 사교육 강사를 공교육 교사보다 훨씬 신뢰한다. 학부모들조차 가세해 교사를 두고 '자질은커녕 열정마저 사라진 철밥통'이라 조롱하는 지경이다.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는 것만큼이나 힘들다는 임용 시험에 합격하고도 불과 몇 년 만에 교직을 떠나는 이들이 적지 않은 이유다. 그들은 하나같이 수업만 잘하면 될 줄 알았는데 막상 당면한 현실은 너무나 달랐다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비전도 없고, 노력에 대한 대가도 턱없다고 토로하지만, 기실 공교육 붕괴의 징후적 현상일 뿐이다.
천방지축 날뛰는 아이들의 생활지도와 상담, 하루가 멀다 하고 걸려 오는 학부모들의 민원, 수업 준비보다 몇 배는 더 손이 가는 행정 업무까지 청년 교사의 자존감은 추락을 거듭한다. '이러려고 교사가 됐나' 싶은 생각이 드는 순간, 시선은 학교 바깥을 향하게 된다. 자연스럽게 학원 강사와 비교가 시작된다.
수업만 잘하면 되는 사교육, 수업도 잘해야 하는 공교육
'사교육의 창궐은 부실한 공교육 탓이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이야기라 새삼스러울 건 없지만, 교사로선 억울하다. 부박한 여론은 공교육의 목표를 오로지 대학 입시에 둔 게 옳으냐는 것과 '수업만 잘하면 되는' 사교육과 '수업도 잘해야 하는' 공교육과의 수업의 질 비교가 온당하냐는 반론엔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공교육이 '정상화'하면 사교육은 저절로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납작한 인식은, 우리 사회에서 일종의 '종교적 믿음'이다.
기존 서열화한 학벌 구조에다 서울과 지방의 교육 격차까지 더해져, 이제 사교육은 공교육의 보완재를 넘어 대체재로 굳건하게 자리를 잡았다. 초등학생은 물론, 코흘리개 유치원생부터 대입을 목표로 사교육에 첫발을 내딛고, 단지 과목 수의 문제일 뿐 중고등학생이 사교육을 받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다.
지금껏 학원에 다녀본 적이 없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아이조차 인터넷 강의는 거르지 않고 수강한다. 인터넷 강의가 사교육은 아니지 않으냐고 엉뚱하게 반문할 정도로 일상화한 현실이다. 방과 후 자습 시간의 교실은 누구 하나 예외 없이 태블릿피시를 꺼내 놓고 인터넷 강의를 듣는 시간이다.
급기야 학교의 정규 수업 시간에 인터넷 강의를 보게 해달라고 떼쓰는 아이들마저 나오고 있다. 학교 수업을 듣느니 인터넷 강의로 공부하는 게 더 낫다는 '합리적' 판단에서다. 그나마 국영수 등 수능 출제 과목의 경우엔 눈치라도 보지만, 예체능 교과 등 '기타 과목'은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이마저도 새삼스럽진 않다. 대입에 교육과정이 철저히 종속된 현실에서 어제오늘 일도 아닐뿐더러 전국의 모든 고등학교에서 변화의 이유조차 묻지 않는 관행이 돼버렸다. 수능에 응시하는 과목만 공부하고 나머지는 과감하게 포기하는 '학생 선택 중심 교육과정'의 민낯이다.
인터넷 강의가 학교 수업을 빠르게 대체하면서, 예전에 없던 기현상이 여럿 나타나고 있다. 우선, 아이들이 문제를 스스로 '푸는' 대신, 문제 해결 과정을 '보는' 걸 공부로 여기는 분위기가 팽배해졌다. 난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친구들과 머리를 맞대거나 교사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일방향의 인터넷 강의에 의존해 즉자적인 해결만 도모할 뿐이다.
그러다 보니, 연습장도 사라졌다. 아이들의 가방에서 종이로 된 공책이 사라진 건 이미 오래지만, 태블릿피시 위에 전자펜으로 직접 문제를 풀거나 요약 정리를 하는 모습 또한 찾아보기 힘들다. 태블릿피시 앞에 멍하니 앉아 '1타 강사'의 수업을 TV의 쇼 프로그램처럼 시청할 뿐이다.
각자 수능 선택 과목이 다르듯 수강하는 인터넷 강의의 내용도 수준도 다 다르다. 종일 에어팟을 귀에 꽂은 채 생활하는 이유다. 친구들과의 대화는 점심시간이나 쉬는 시간, 일주일에 고작 한두 시간뿐인 체육 수업 시간에나 가능할 따름이다. 언제부턴가 학교에서 에어팟은 학습의 필수 도구이면서도, 아이들끼리의 대면 소통의 단절을 보여주는 상징이 됐다.
또, 인터넷 강의가 보편화하면서 멀쩡한 교과서가 직격탄을 맞았다. 인터넷 강의는 사교육 업체가 자체 제작한 교재를 사용하기에 학교의 교과서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 교과서는 오로지 '내신용'이라는 인식이 뿌리 깊어, 교과서 수업에 의존했다간 수능은 '폭망'이라는 이야기가 공공연하다.
아이들의 학습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부러 수업 시간에 교과서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교사들도 적지 않다. 내신과 수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도록 채근했다간 다른 학교 아이들과의 대입 경쟁에서 불리할 수 있다는 '제자 사랑'의 발로다. 학교마다 수능 과목 수업에 부교재를 채택하지 않는 경우가 드문 이유다.
▲ 바야흐로 사교육 강사들의 전성시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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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학교 수업이 인터넷 강의를 그대로 흉내 내는 양상이다. 오래전부터 인접 교과의 동료 교사들끼리 수업 공개와 장학을 통해 수업 개선을 도모하고 있지만, 실효성이 없다는 자평에 급격히 형식화하는 추세다. 새내기 교사가 선배 동료 교사로부터 수업 방법을 보고 배우던 시절은 이미 지났다. 새내기 교사들의 롤모델은 '1타 강사'다.
"선생님 수업은 현우진과 정승제의 인터넷 강의 못지않아요."
"선생님, 왜 학교에 남아계세요? 사교육에 가면 대박 날 텐데."
자괴감을 불러일으킬지언정, 이는 요즘 아이들이 교사에게 건네는 최고의 찬사다. 내용과 형식에서 인터넷 강의와 비슷할수록 좋은 수업으로 평가받는다. 학교 수업을 인터넷 강의처럼 재미있게 해달라는 요구는 학생회장 선거의 공약에 등장할 정도가 됐다. 이는 공교육에 대한 아이들의 불신이 얼마나 심각한가를 보여주는 사례다.
이쯤 되니 정녕 교육의 본령과 교사의 역할이 무엇인지 자문해 보게 된다. 학교 수업 대신 인터넷 강의를 듣겠다고 하고, 교과서를 내팽개친 채 주야장천 실전 모의고사와 기출 문제 풀이만 반복하는 곳이라면, 굳이 학교가 필요한가 싶다. '공부는 학원에서 하고, 학교에선 시험만 본다'는 조롱을 넘어, 이젠 아이들 사이에서 스스럼없이 '학교 수업 무용론'까지 제기되는 실정이다.
정작 두려운 건, 사교육의 창궐과 '1타 강사'에 대한 아이들의 선망이 교육의 본령마저 뒤흔들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어릴 적부터 대입을 결승점 삼아 곁눈질 한 번 하지 않고 죽을힘을 다해 달려왔다. 그들에게 교육의 본령은 오로지 대입을 철저히 준비하는 것뿐, 나머지는 모두 껍데기다. 학교를 '각자도생의 전쟁터'로 비유하는 아이들의 천연덕스러운 답변에 오늘도 교사는 죄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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