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 공격” “폭발물 설치” 하마스 지도자 암살에 이란·서방 다른 목소리

박현준 2024. 8. 4. 16:59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하마스 정치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야. 로이터=연합뉴스


이란혁명수비대(IRCG)가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정치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야(62)는 단거리 발사체(short-range projectile) 공격을 받아 사망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의 사주를 받은 혁명수비대원들이 숙소에 폭발물을 설치하는 수법으로 하니야를 암살했다는 서방 언론들의 보도를 사실상 반박하는 성격이다.

혁명수비대는 3일(현지시간) “지난달 31일 하니야에 대한 테러는 약 7㎏ 무게의 탄두를 실은 단거리 발사체를 숙소 밖에서 발사해 벌어진 일”이라고 발표했다. 혁명수비대는 “시오니스트 정부가 계획해 실행하고, 미국의 범죄 정부가 방조한 것”이라며 이스라엘과 미국을 모두 비난했다.

‘공중 공격’이라는 이란의 공식 발표는 이미 설치된 폭발물을 통해 하니야가 암살됐다는 서방 언론 보도와는 차이가 크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2일(현지시간) 암살 과정에서 혁명수비대 부대원 2명이 모사드 공작원으로 동원됐다고 보도했다. 이들이 이란 수도 테헤란의 북쪽에 위치한 혁명수비대 건물 내의 방 세 곳에 폭발물을 설치했다는 것이다.

관련 폐쇄회로(CC)TV를 확보한 이란 당국자는 “부대원들이 몇 분만에 여러 방을 몰래 드나들었다”고 텔레그래프에 말했다. 혁명수비대 관계자는 “이스라엘이 혁명수비대 소속의 안사르 알-마흐디 경호부대원을 사주했다”며 “건물 조사과정에서 (터지지 않은) 폭발물 2개도 추가로 발견했다”고 말했다.

안사르 알-마흐디 경호부대는 이란 고위층의 경호를 맡는 조직이다. 폭발물을 설치한 부대원들은 이후 국외로 달아났다고 텔레그래프는 전했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악시오스는 “숙소에 미리 설치된 폭탄에는 인공지능(AI) 기술이 사용된 첨단기술 장치가 장착돼 있었고, 하니야가 방에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모사드 요원이 원격으로 폭파했다”고 했다. 뉴욕 타임스(NYT)는 “거의 두 달 전에 하니야의 숙소에 폭탄이 설치됐다”며 “하니야는 테헤란 방문시 이 숙소에 몇 차례 묵었다”고 했다.

텔레그래프는 이스라엘이 당초 지난 5월 헬기 추락 사고로 사망한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의 장례식에서 하니야를 암살하려 했지만, 장례식에 사람이 너무 많이 모여 계획을 취소했다고도 전했다.

이스마일 하니야가 사망한 장소로 추정되는 곳. 뉴욕타임스는 ″텔레그램에 유포되고 있는 이 사진 속 손상된 건물이 하니야가 살해된 장소라고 이미지를 공유한 이란 관리가 밝혔다″고 전했다. 사진 클래쉬리포트 X 캡처


이란은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귀빈의 안전을 지키지 못해 체면이 크게 구겨진 상황이다. 게다가 서방 언론의 보도대로라면 하니야의 동선이 몇 달에 걸쳐 노출됐고, 암살 순간에는 어느 방이 디코이(유인용 물체)이고, 어느 방에 하니야가 실제 묵는지 이스라엘 정보 당국이 정확하게 식별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 과정에서 이란 내에서 가장 충성심이 높은 최정예 조직인 혁명수비대원들이 내부 첩자이자 공작원으로 이스라엘에 포섭됐다면, 이는 방위 체제 자체에 구멍이 뚫렸다는 뜻일 수 있다.

이 때문에 이란이 차라리 단거리 발사체에 따른 공중 공격으로 정리하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외부에서 미사일이 날아온 것이라면 여전히 표적 식별의 허점은 있더라도 안방에서 눈뜨고 당했다는 비판은 피할 여지가 있어서다. 텔레그래프는 혁명수비대 관계자를 인용해 “굴욕적인 안보 침해”로 보이는 걸 희석하려는 대책반이 이란 내부에 마련됐다고 설명했다.

이란 내부에서는 개혁파인 마수드 페제시키안 신임 대통령을 망신주려는 혁명수비대의 음모라는 주장도 고개를 들고 있다. “이런 일이 우연히, 하필 페제시키안 대통령의 취임 첫날에 일어났다. 혁명수비대 때문에 취임하자마자 이스라엘과 전쟁을 치러야 한다”고 페제시키안 대통령의 측근은 말했다고 텔레그래프는 전했다.

이란은 공식적으로는 공중 공격을 암살 수법으로 발표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이스라엘 협력자 색출에 혈안이 된 분위기다. 혁명수비대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정보 및 군 당국자 20여명을 체포했다. 앞서 이란의 정보부장 출신인 알리 요네시는 2021년 “이란 최고위층에 이스라엘 모사드가 침투해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독일의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이란은 (정보관련) 비밀기관만 12개에 달한다”며 기관 간 경쟁과 불통에 따른 정보 실패 가능성도 지적했다.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에서 이란 시민들이 암살당한 하마스 최고 정치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의 사진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EPA=연합뉴스


이스라엘은 여전히 하니야의 암살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있다. 다만 다니엘 하가리 이스라엘군 수석대변인은 지난 1일 기자회견에서 하니야가 암살된 당일 이스라엘이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를 공습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날 밤 중동 지역에서 미사일이나 이스라엘 드론에 의한 다른 공습은 없었다”고 말했다. 이란이 이스라엘을 암살 배후로 지목한 가운데 이스라엘에 의한 공중 공격 자체가 없었다는 것처럼 들릴 여지가 있는 발언이다.

박현준 기자 park.hyeonjun@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